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설교자 100% vs 청중 100%

신성욱 | 2022.02.23 08:34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바이올린 명품 스트라디바리우스 에피소드가 나온다. “여기 스트라디바리우스 한 대가 있다. 누구에게 주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가?”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는 사람인가? 바이올린을 가장 잘 연주하는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부자가 경매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낙찰받아 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대신 가장 잘 연주하는 사람이 갖는 게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다고 치자.

 

그럼 최고 연주자는 누가 그리고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샌델은 묻는다. 정부가 선정위원회를 꾸리면 될까? 선정위원회는 또 어떻게 꾸려야 할까? 하지만 권력자가 입김을 행사할 수 있다. “A에게 주지!” 연주를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기가 경매보다 더 정의롭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경매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선한 부자는 자신이 가진 악기를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이에게 빌려줄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악기 후원은 적지 않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교수가 소장하고 사용하는 1735에 제작된 페트루스 (Petrus) 과르네리 (Guarneri del Gesu)는 한 대에 10~50억을 호가한다. ‘영구 임대라지만 결국은 자기 소유가 된 거나 다름없는 관계로 보험료는 매년 자신이 전액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혜 교수는 전액 장학생으로 인디애나주립대를 졸업했다. 이 학교에서 제이미 라레도(Jaime Laredo)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제이미 라레도는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비롯한 세계적 권위의 경연 심사위원장으로 활약한 인물이다. 오디션 차 바흐 샤콘느(BWV.1004)’를 연주하는 박지혜를 본 라레도는 즉석에서 탁월한 연주라며 전액 장학생으로 추천했다.

박 교수는 인디애나주립대에 이어 독일 카를스루헤 국립음대 및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칼스루헤 음대에서 울프 호엘셔(Wolf Hoelscher)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울프 호엘셔는 박지혜 교수가 지금도 존경하는 선생 중 하나다. 한번은 박 교수가 스승에게 천재성이 많은 연주자와 천재성 보단 노력을 더 많이 하는 연주자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울프 교수는 천재성도 중요하지만 결국 노력형이 끝까지 살아 남는다고 답했다 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발명왕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한 말이다. ‘1% vs 99%’라 하니 영감보다는 노력을 더 강조한 걸로 이해해왔다. 하지만 이게 잘못 전달된 것임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에디슨이 한 말을 신문 기자가 잘못 이해하여 1퍼센트의 영감에 대한 중요성이 아니라 99퍼센트의 노력에 중점을 두고, 그를 노력하는 사람으로 미화하여 진실을 잘못 전달한 것이었다. 그렇게 신문에 오보가 나간 바람에 우리 역시 이 명언을 노력이 영감보다 중요하다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천재성이 없으면 많은 노력을 한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라는 사실이 에디슨의 자서전엔 나와 있다. ‘1%의 영감 없이는 99%나 되는 엄청난 노력을 해봐야 성공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력을 강조한 것이 아니고 1% 영감을 강조한 것이란 말이다.

나는 유튜브에 나오는 박지혜 교수의 연주 영상을 자주 시청한다.

 

평소엔 우울해 보이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타입이지만 바이올린을 잡고 연기를 하는 순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뜨거운 열정과 강한 에너지가 폭발하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고 또 보곤 한다. 청순가련형의 가냘픈 몸매로 연주하는 그녀의 연기를 보노라면 속에서 터져 나오는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나 역시 느낄 수 있다. 설교를 가르치는 설교학자로서 그 미친 듯이 발산되는 폭발력을 배우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신들린 듯한 경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연습에 또 연습을 했을 런지. 하지만 아무리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다 하더라도 바이올린에 대한 천재성이 그녀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런 재능이 터져 나올 리가 없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 에디슨의 명언처럼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한 가지만으로 승부를 걸려 해선 안 된다. 두 가지가 접목 되었을 때 놀라운 위력이 발휘될 수 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가 한 말 또한 황금률처럼 내게 다가왔다.

제게 있어 음악의 완성은 연주자 20%, 그리고 듣는 이의 교감이 80%입니다. 이처럼 사람들과의 교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친숙한 작품을 통해 대중과 더욱 적극적으로 교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의 완성은 연주자 20%, 그리고 듣는 이의 교감 80%.’

 

그렇다면 설교의 완성은 어떻게 될까? ‘설교자 20% vs 청중 80%’쯤 될까? ‘설교자 80% vs 청중 20%’일까? 내 생각은 설교자 100% vs 청중 100%’이다.

청중을 무시하고 자신의 본문 분석과 원고작성에만 올인하는 설교자들이 너무 많다. 보수적인 성향의 설교자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본다. 청중을 도외시하는 설교는 처음부터 생명력이 없다. 청중에게 들리지 않는 설교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고객을 무시하는 가게나 손님에게 신경 쓰지 않는 식당이 문 닫을 수밖에 없듯이, 청중과의 소통에 관심 갖지 않는 설교자는 강단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식당 벽에서 가끔씩 보는 글귀가 생각난다. ‘손님은 왕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성도들을 왕처럼 배려하는 설교자라야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청중들에게 어필되는 설교자가 될 수 있다.

 

설교자의 열정 100%+청중과의 교감 100%.’

설교자들이여, 위대한 설교는 설교자의 100% 열정이 청중과의 교감 100%와 합해졌을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지어다(Don't forget that great sermons are complete when 100% of the preacher's passion is combined with 100% of the communication with the aud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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