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교회는 더 작아져야 합니다

이성호 | 2017.10.10 17:52


교회는 더 작아져야 합니다. 

"개인에서 우리로"

 


1. 추석 연휴동안 운전한 거리가 어림잡아도 굉장합니다. 포항에서 서울까지 서울에서 남양주로, 남양주에서 양주군의 부모님 묘소, 다시 가족 모임 장소인 부평으로, 부평에서 남양주로 그리고 예정에도 없던 연 이틀 수유리 회의를 마치고 보니 토요일 새벽 1시입니다. 서둘러 눈을 부치고 다시 포항으로 귀가할 때가 토요일 밤입니다.

 

돌아보면 더 분주한 일정이지만 하나도 고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반가움설렘입니다. 마음에 간직하고도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 가족들과 오롯이 함께 하는 순간들이 주는 희열 같은 것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만남은 지나가도 다시 생각나게 됩니다.

 

이곳저곳을 운전을 하다보면 과거에 살았던 지역이나 동네골목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비록 달리는 차장 너머지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은 자신들이 몇 살 때였는지를 기억해 내고 무용담 같은 당시로 돌아가곤 합니다.

 

2. 어느 거리를 지나가다 불현 듯 떠오른 얼굴이 있었습니다. 주일학교 고등부 교사이던 시기에 만났던 한 남학생입니다. 1이면 예배 빼먹기 일쑤고 지각 하거나 뒷자리에 앉는 것에 태연하지만, 이 학생은 항상 앞자리에 질문까지 하는, 교사라면 누구나 좋아할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어느 날, 그 녀석이 저희 집을 찾았습니다. 모양새를 보아 우산도 없이 걸은 듯해 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하러 왔다며 그 동안 잘해주셔서 고마웠다는 말을 지금 전하지 못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합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가출하는 길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았던 모양입니다. 문제는 맞는 그 자체보다 '맞은 이유'에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고1 반에는 담임목사의 아들도 있었습니다. 몇 번이고 잘 부탁한다는 당부를 받았을 정도로 개구쟁이입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는 그 녀석의 미국행을 결정한 모양입니다. 사실이지 유학이 아니라 도피입니다. 신앙도 공부도 엉터리인 아들을 차라리 미국 학교로 보내자는 방안이었습니다. 본인은 신났겠지만 교회아이들은 달랐습니다. 부러움입니다.

 

3. 그래도 몇몇은 공항까지 배웅을 약속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그날입니다. 아버지께 공항가는 차비를 구하는 순간 따귀를 맞은 겁니다. 아버지는 치명적인 비수를 꽂았습니다. “야 이놈아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 찢어지는 거야. 니 주제를 알아야지. 어디 부자 목사 아들과 너를 비교해 이 놈아 가지 마!”

 

평소에도 술을 자주 드시는 아버지와 식당 일을 나가시는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 사이에서 반듯한 아이였는데...가슴이 찢어졌습니다. 그냥 꼭 부등켜안았습니다. 녀석의 어깨가 들썩이더니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를 재우고 그 아이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눈이 퉁퉁 부으신 걸 보니 밤새 뒤척이신듯했습니다. “아드님은 제가 만난 어떤 학생보다도 우수하고 총명한 아이입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잘 돌봐 주시면 스스로 커갈 겁니다.” 녀석에게도 같은 말을 전했던 기억입니다.

 

유학이란 더 배울 것이 없어 떠나는 것이지만, 목사님 아들은 유학이 아니라 도망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최고의 학생은 너다. 그래서 나는 니가 너무 고맙다. 이깟 일에 주저앉지 않았으면 한다. 최고의 인생을 준비하고 극복하기 바란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저희는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그 지역을 떠났습니다. 벌써 15년도 훌쩍 지난 일인데 그 동네를 지나가다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지금쯤 청년이 되었을 텐데. 부디 가난에 시들지 않았기를...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4. 살면서 확인 되는 것이 있습니다. 미성숙할수록 보이는 것이 다 인줄 안다는 겁니다. 보이는 것이 얼마나 별 것 아닌지, 그 이면을 구분하지 못할수록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는 면에만 치중하고 치장한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사랑 공동체라는 것 불의와 악에 민감하고, 선에 대해 기뻐할 줄 아는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살리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 안고 손을 잡는 겁니다. 그게 교회입니다.

 

우리는 꿈을 꿉니다. 개인이 아닌 우리가 되는 교회, 규모나 크기보다 신앙고백이 먼저인 교회, 목사가정 장로 가정이 아니라 모든 가정이 존중되고 우선이 되는, 우리의 모든 자녀들이 사랑받고 세워져서 튼실한 나무가 되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한 교회입니다. 그러니 교회는 작아져야 합니다.

 

근사한 계절에 더 넓어지고 깊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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