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3.영지주의

안영혁 | 2003.06.29 01:08
3. 영지주의

교회의 본래적 영성은 한편 종말론적이고 한편 역사적이다. 이것은 한편 본체론적이고 한편 현상학적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극단적으로 본체론에 기울어지고, 그것도 황당한 신비에 근거하는 본체론이었다. 그것은 플라톤주의 혹은 신플라톤주의에 가까운 경향이었으며, 그렇게 되면 이 땅은 없는 일원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론 또한 양성론이 아니라 단성론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오늘에 이르러 마치 영지주의가 분서갱유를 당하여 정당한 기독교가 압박이나 당한 것처럼 운위되는 것은 기독교의 본모습을 모르는 소치이다. 아니면 단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실증주의에 발을 디디고 기독교 신학의 심오한 영성과 그 실제를 조롱하려는 잘못된 논의에 불과한 것이다. 기독교 초기의 굵질한 학자들이 영지주의가 가진 영성적 깊이에 깊은 인상을 받고 혹은 개종까지 했다고 해서 기독교의 원래의 진리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초기 수백년 동안의 양대 논쟁인 삼위일체 논쟁과 기독론 논쟁은 매우 의미있는 논쟁이었으며, 오늘 신학을 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마음 가운데 새겨두어야 하는 논쟁이다. 이 논쟁들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억울한 사람도 있고, 정치적으로 교활한 타협을 해서 살아남은 사람도 있고, 잔인한 인물도 있지만, 우리가 최종적으로 눈을 모아야 하는 것은 역시 그 논쟁들의 마지막 결론이다. 교회는 오늘까지도 그 논쟁의 결론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논지가 투철하여 그런 것은 아니다. 바로 그 결론이 우리의 구원을 바로 이야기하고 있고, 예수를 바로 이야기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의 영성의 길을 올바로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지주의는 우리가 넘어가야 할 산이다. 그들은 무엇을 말했는가? 오늘도 다시 새겨보아야 할 영지주의의 논의는 무엇인가? 우리는 영지주의와 어떻게 맞설 것인가?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영지주의 탐구에로 들어가자.

우선 우리는 성찬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영지주의가 얼마나 다른 것인지 인지해야겠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예식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가졌다. 그리고 그 성찬의 떡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상징한다고 좁혀서 말하더라도, 그것을 떡으로 피로 상징하는 것은 이 땅의 것을 빌어서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양성적이며, 다시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 양면을 기억하는 것이며, 거기 사용되는 떡과 잔은 영원하신 성자를 상징한다 하더라도 그 상징물은 이 땅의 떡과 잔이다. 거기에는 아무리 찾아도 이 땅의 것에 대한 부정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땅과 하늘의 만남이다. 그리고 천상적 실재는 땅의 현상을 통해서 상징된다. 알렉산드리아의 이그나티우스가 성찬을 일컬어 불멸의 약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무슨 천상적인 약효를 드러내는 마술적인 것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거기에서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이 일어나고 우리의 구원이 드러난다는 의미이지, 그 자체를 천상적인 것으로 띄워 올리는 것은 아니다. 성찬을 나누면서 장차 다가올 파루시아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를 가지고 모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었고, 한 장소에 두 명의 감독이 용납되지 않을만큼 성찬 공동체의 의미는 강력하였다. 그리고 거기 일어나는 성찬은 참으로 구별이 없었는데, 이것은 종말론적으로 궁극적으로 차별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고, 그것이 당장 성찬 행위로 일어나는 만큼 기독교 영성이 실제적인 연합을 의미하였음을 보여준다.

영지주의는 이와는 현격히 다른 것이었다. 그들의 경향을 현격히 드러내는 두 가지 주장은 이런 것이다. 첫째는 세상 창조를 하나님이 아닌 조물주(데미우르고스)에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세상의 비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신이 아닌 존재인 조물주가 한 일이며 그런만큼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을 비하하고 보니 금욕주의도 나온다. 반대 방향으로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보는 만큼 정반대의 쾌락주의도 가능하였다. 두 번째의 특징은 지식(그노시스)이다. 신적 세계를 볼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은밀한 신비적 지식이었다. 이 또한 세상을 배격하고 오직 천상만을 높이는 태도였다. 그러나 영지주의라고 해서 모든 경우가 다 이런 내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조물주가 최고의 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기독교적 영지주의는 가능하다고 하겠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215卒)와 오리겐 같은 경우가 바로 그들이다. 클레멘트는 참지식인이면서 완전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식(영지)과 믿음이 공존해야한다 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지식보다 더 훌륭한 것으로서 믿음은 지식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보았다. 이 믿음은 성육하신 그리스도 안에 완전히 계시된 로고스에 대한 믿음인데, 이 믿음은 다른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하나님을 계시해주는 로고스이다. 하나님의 이성이 곧 로고스이다. 이는 희랍철학에서 정신이란 이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해온 누스(nous)와 같은 것이며, 희랍 신화로 말하자면 제우스의 뜻을 알리는 헤르메스와 같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클레멘트는 이 로고스는 다름 아니라 사랑을 통하여 구현된다 하였다. 어떤 면에서 이단적인 요소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한편으로는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지키는 나름의 논리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리겐은 클레멘트보다는 교회 전통에 입각하여 자신의 논지를 펼치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철학을 신학보다 우위에 두고 있었다. 그도 클레멘트처럼 영적 완전성이 하나님의 로고스가 인간 영혼에게 주시는 참된 계시 및 지식과 동일시했다. 그는 이 로고스를 설명함에 있어서 보다 신비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 로고스는 영혼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모든 감추인 일들’을 설명해준다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아가서를 빌어서 로고스의 이런 발현은 연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연인인 순수하고 완전한 영혼에게 주는 참되고 친밀하고 거룩한 입맞춤이라 하였다. 로고스와 합일할 수 있는 영혼은 아파테이아(무정욕 상태=평정심)에 이르러야 했고, 그래서 그는 금욕을 강조했고, 따라서 몸의 순결을 동정을 여기에 포함하였다. 그리고 금욕을 위해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를 할 것을 권하였다. 그가 보기에 금욕은 물질과 몸의 영향력으로부터 영혼이 해방되는 것이었다. 그는 한갓된 기독교인과 조명된 기독교인을 구별하여 전자는 그리스도를 만났으나 비밀에는 접근하지 못한 사람이고 후자는 그 비밀을 깨달은 사람이라 하였다. 그 내용의 신비적 경도가 어떠하든지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그로하여 첫째 정욕과 죄에서 깨끗게 된 인간이라는 관념이 명확히 소개되었고, 둘째 완전에 거룩이라는 개념을 부여하고 그 거룩을 이루는 영적 엘리트가 있다는 관념이 기독교 안에 생기게 되었으며, 셋째 종말론을 역사적인 장에서 인간학적인 장으로 이동시킨 바 있다. 이것은 초대 교회에서 그리도 갈망하였던 파루시아를 일단은 영성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제쳐놓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오늘의 기독교도 이런 영향 바깥에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리겐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참으로 스캔들이다. 그를 통째로 긍정할 수는 없으나 그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는 없다. 초대 교회의 질곡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줄곧 교리 논쟁이 있었으나 권위적으로 교리가 완전히 정착된 것은 아니었고,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기독교와는 다를지라도 강한 인상을 가질 때 오히려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던 것이다. 오리겐은 그런 초대교회적 상황과 개인적 천재성 및 열심이 뒤범벅이 된 영성 지도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크게 말해서 초대 교회의 영성은 성찬공동체에 기초를 둔 영성과 로고스와의 신비적 합일에 기초를 둔 영성으로 분류할 수 있겠다. 전자는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로 대표되고 후자는 오리겐으로 대표된다. 오리겐파의 영성은 553년 제5차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정죄되었다. 그러기 전까지 오리겐의 영성은 에바그리우스등으로 전수된 바 있다. 그런데 이들과 양립하여 내려온 영성의 흐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마카리우스의 영성이다. 그는 영성의 중심을 자연주의적 정신인 누스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로 이끌어 왔다. 이것이 오리겐 영성의 폐단을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 영성에서도 영적 금욕은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는 그의 수도원 운동에서 죄인을 멸시하지 않는 것, 지식이나 영적 완전을 자랑하지 않는 사랑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았다. 이리하여 오리겐의 일탈을 초기 기독교의 양성적 성격에로 되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수도적 영성의 건전한 길은 바로 그것이었다. 7세기에 활동한 막시무스는 인간 실존 자체가 성찬적인 것이라 보고 수도의 목표는 바로 이 성찬적 실존에 도달하기 위함이라 보았다. 막시무스의 이런 접근은 말하자면 성찬적 영성과 수도적 영성을 합일시키는 것이었다. 이런 기초 위에서 우리는 영지주의를 비판할 수도 있고, 중세를 위한 출발점도 잡을 수 있다고 하겠다.

영지주의는 그 문서의 운명과 관한 한 분서갱유의 역사를 맞았던 것이 분명하다. 전혀 잊혀지다시피 했던 영지주의의 문서들이 낙함마디에서 발견되자 학자들은 경악했던 것 같다. 교회에 알려진 영지주의는 근본적으로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희화화되어 알려졌다. 그러나 로버트 그랜터의 말대로 세상의 실체와 세상의 역사를 부인하는 그들을 향하여 세상은 또 그들을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분서갱유의 현상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교권주의적 발단이었다고만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시대 일반의 사람들이 원치 않는 그들만의 엘리트의식과 미신적인 신비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그들은 비난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영지주의에 대한 긍정적 연구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들은 어쨌든 기독교 초기에 가장 영성적인 특징이 진한 집단이었고, 아직 이단과 정통이 구별되지 않는 가운데 진지한 많은 기독교인들이 소위 영지주의의 그늘 아래서 신앙을 닦으려고 노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은 다음으로 미루어 놓고라도 우리는 그래서 좀 편파적일 수도 있는 교회의 영지주의에 대한 지식이라도 일단 접근해보아야 한다.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나, 그리고 그들에게서는 어떤 가능성이 발생할 수 있었겠나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접근해볼 일이다. 특히 영지주의는 당대의 교회의 특출한 지도자이자 교회의 수호자였던 이레니우스의 「이단 논박」에서 그 일말이 발견된다. 물론 이레니우스는 이들에게 부정적이다.

교회의 저술가들은 일반적으로 시몬 마구스의 추종자들을 최초의 영지주의자들로 취급한다.(행8장) 이레니우스도 그랬다. 이것에 대하여는 영지주의를 일소할 하나의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시몬 마구스가 영지주의의 시초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다소 의심이 가지만, 그러나 시몬 마구스의 이름에 기대어 소개된 영지주의의 경향은 또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다 하겠다. 시몬은 하나의 대리인인 「첫 번째 생각」(first thought)을 통하여 세상을 지었는데, 반역한 천사들이 그녀를 붙잡고 모욕을 가했다. 그 와중에 그녀는 몸과 몸을 거쳐가고 있었고, 두로에서 창녀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 시몬이 그녀를 찾아왔다. 그녀는 두로의 헬렌이며 동시에 트로이의 헬렌이었다. 시몬은 우주의 천사들의 간계를 피하기 위해 변장을 하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마치 그런 것처럼 영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와 같은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레니우스는 시몬 마구스의 계승자로 메난더를 말한다. 메난더는 시몬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구주라 하였으니, 경향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선생과 제자가 같이 구주라고 주장한다면, 실제의 연결성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는 어렵게 된다. 그는 제자들에게 천사들을 능가할 만한 ‘지식’을 준다고 하였고, 세례를 통하여 부활을 얻고 이로 하여 ‘더 이상은 죽지도 않고 불멸하는 삶을 살게’된다고 가르쳤다. 다소 부적절하기는 하지만, 교회의 조상으로서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가 성찬을 두고 ‘불멸의 약’이라고 불렀던 은혜의 개념을 일탈의 빌미로 삼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영지주의자들이 모두 자신을 구주로 표현한 것은 아니었다. 이레니우스가 소개하는 세 번째의 영지주의자 사투르니누스는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구주로 여겼으며 창세기와 기독교 복음을 자기의 구원의 메시지로 재해석했다. 그러나 한편 기독교와 내용이 같은 것도 아니었다. 미지의 아버지가 천사들을 만들었고, 천사는 세상을 만들었는데, 그들은 능력이 부족하여 인간들을 똑바로 서는 존재로 만들지 못했다. 생명의 불꽃(혹은 섬광 spark of life: sprit)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천사들을 멸하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보내기를 원하셨으며, 그는 인간처럼 보였지만 비물질적인 존재였다. 그는 제자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삼가라고 가르쳤다. 여기에서도 우리는 가현설적인 요소들을 보는데,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가능하다. 세상은 항상 충족하리만치 아름답지 않고 언제나 욕심들은 뒤죽박죽이 되어서 흘러간다. 과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으면서 정말 기독교인다운 기독교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런 물음이 그들에게 던져졌음이 분명하다. 마침내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중요 조류로 자리잡지 못한 것은 이들의 이런 금욕주의에도 기인한다. 그들은 도저히 세상을 긍정할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자식도 없다. 그렇다면 그러 집단이 갈 길은 뻔하다. 그런 집단에 새로운 성원들이 쉽게 들어올 리도 없는 데다 자녀까지 없다면 그들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카포크라테스는 예수에 대하여 남다른 해석을 하였던 영지주의자이다. 예수는 요셉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는 성육하기 이전의 자신을 기억했는데, 그는 말하자면 세상을 만든 천사들을 피하여 이 땅에 태어난 것이다. 그것이 그의 예수에 대한 전언이다. 카포크라테스는 그의 제자들이 예수를 닮고 어떤 경우는 사도들보다 낫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이 사후에 다른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일’을 경험해야 하였으며, 예수는 말하자면 그 길을 가르쳐주는 분이었던 것이다.

말시온은 요컨대 구약 성경과 예수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이다. 즉 예수의 아버지이신 지고의 하나님과 구약 성경에 묘사된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다르다고 하였다. 야훼라는 이름과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발렌티누스는 대략 이런 경향을 가졌다. 그도 지고의 아버지와 조물주를 구별하였으며, 따라서 구약 성경의 율법은 완전한 하나님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발렌티누스파는 침묵 안에 존재하는 깊음이라는 주요 원리를 설정하고 일에서 다, 본질에서 실존, 선한 것에서 악한 것으로의 움직임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하였다. 다분히 플로티누스의 일원론적 경향을 가졌던 것이다. 바실리데스는 이 유출의 설과 함께 무에서 비존재적 세계를 만든 비존재적 하나님을 말한다. 우리가 느끼는 바대로 영지주의의 논설들은 깊고 어두운 자리에 원리가 존재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빛으로부터 세계가 시작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인상이다. 이것이 영지주의에 대한 하나의 인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무엇인가 비의적인 데가 있었고 어둡고 은밀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영지라는 것도 그래서 밝은 지혜라기 보다는 아는 사람만 아는 불투명한 지식이었다.

그들은 「도마복음」에서 보는 대로 금식도 기도도 구제도 기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세상은 환상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그리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으로 나쁜 경우라 할 것이다. 이런 예전에 있어서도 사람에 따라서는 긍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영지주의자들이 상대적으로 예전을 적게 행하였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들은 의식을 행하고 묵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영적 세계를 찾아서 순례했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그들의 금욕적이고 타계적이고 그래서 포기적인 영적 투쟁은 그 자체로서는 높이 살 만한 데가 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것은 그들이 복음을 지키려고 하였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복음의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지 못하였다. 우리의 수많은 수행, 고통스런 수행이 우리를 특별한 자리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몰각하였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그리스도로 인한 일치라는 것에 그들은 어두웠다. 그리고 세상의 실체적 현상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부정하였기 때문에 이 땅 가운데서 그런 사조가 지속될 수가 없었다. 영지주의 문서가 말살되고 훼손되었던 것은 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만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그들은 다른 기독교인들로부터 그렇게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낙함마디의 발굴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고통스런 토의 끝에 마침내 기독교 교회의 정당성과 복음의 간결성을 증명하는 일이 될 것이다. 기독교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해서는 안되는 것인지 영지주의는 알려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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