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설교 사역의 영광과 책무

송광택 | 2003.10.05 23:18
복음적 설교
서철원 지음
총신대학출판부


저자에 의하면 교회의 문제는 설교의 문제이다. 교회는 말씀의 선포로 발생하였고, 유지 존속되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설교에서 발생하고 그 해결도 선포에서 귀결된다. 개신교회에 있어서 설교는 교회의 시작과 마지막 점이다. 선포가 교회의 성질을 결정하고 교회활동을 한정짓는다. 설교가 교회를 사람들의 모임이나 그리스도의 교회로 규정짓는다. 그러므로 설교만큼 중요하고,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교회에 없다.

"선포의 내용은 복음이어야 한다. 교회에서 복음 선포를 듣지 못하면 도대체 어디서 복음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교회가 복음 선포를 빼면 교회로 남을 수 있을 것인가? 교회의 선포는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시여야 한다...  신약 전체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의 구원사역을 선포해야 한다"(6-7쪽).

본서에 따르면 설교자가 권세를 얻는 길은 복음의 선포를 통해서이고 다른 길로는 전혀 아니다. 전령은 자체로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를 보낸 자 때문에 권위가 있다. 설교자는 목사이기 때문에 권위를 갖는 것이 결코 아니다. 목사의 권위는 설교자로서의 권위이다.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의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면 자기의 소임을 다한다. 그의 선포의 내용 때문에 설교자는 권위를 가지고 생명을 누린다. 설교자가 설교자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선포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에게 위임된 사항을 선포해야 한다"(저자 서문, 8쪽).

복음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롬 1:16). 복음의 선포로만이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복음의 선포외의 어떠한 것도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한다(15쪽). 복음이 선포되면 성령이 역사하므로 사람들이 변화된다. 이처럼 복음 선포에 기적이 발생한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큰 기적은 바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이어서, 선포되면 능력으로 역사한다. 이 복음외에 다른 어떤 길로도 하나님의 구원이 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언제든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16쪽).

본서에 따르면 복음의 선포는 사람들 마음에 기쁨을 생산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자기의 바른 양식을 받으므로 생명이 풍성해져서 생명의 기쁨이 산출된다. 뿐만 아니라 복음이 선포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기쁨과 함께 평화가 우세하게 된다."

복음은 하나님이 마련하셨다(행 24:12, 요 3:16, 요 1:14). 복음은 하나님이 마련하셨기 때문에 복음이다.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작정하시고 구원의 길을 마련해 오셨다. 인류 역사는 죄를 극복하기 위해서 구원을 마련해온 역사이다. 하나님의 경륜에서 인류 구원이 작정되고 인류 역사에서 구원의 길이 예비되고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신이 세상의 구원자가 되기로 하신 것이다.

설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선포해야 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로 선포해야 한다. 구약은 신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고. 신구약은 기독론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성경해석은 본문이 말하려고 하는 뜻을 말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본서는 작은 책이지만 설교자의 위치를 재확인시켜주고, 설교 사역의 영광과 책무를 상기시켜주고 있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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