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

송광택 | 2003.06.29 00:34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

영화묵상
켄 가이어 지음
두란노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

최근에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영화 보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무 살 청년 시절 주일학교 전도사님께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영화를 보러 가도 되나요?" 전도사님은 빙긋 웃으시더니 "그럴 시간과 돈이 있어서 영화구경을 가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겠어요?"라고 답하셨다. 그 당시에 필자는 그 대답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충분한 답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많은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마음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작품들을 떠올릴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노량진 어느 극장에서 본 <맨발의 청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무렵 아버지의 실직으로 궁핍한 살림살이를 꾸려가야 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그 영화의 몇몇 장면이 만졌을 것이다. 역시 초등학교 강당에서 많은 학생들과 함께 본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영화도 인상적이었다. 아마 그 제목이 <왕중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후 영화관에서 본 영화 가운데 기억나는 것들은 <벤허>, <쿼바디스>, <사운드 오브 뮤직>과 여러 편의 서부극, 한 두 편의 프랑스 영화, 그리고 여러 편의 한국영화들이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본 영화는 알게 모르게 나의 생각과 삶에 어떤 형태로든 자취를 남겼을 것이다.
<영화묵상>의 저자 켄 가이어는 영화를 무턱대고 흡수하지도 않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는 분석하고 토론하고 정직하게 묵상한 후, 이제 우리들에게 그 이야기의 의미를 나누어주고 있다. 그는 영화에 대한 금욕적 삶을 거절하고 또한 영화에 중독된 삶도 거부한다.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이야기를 알았다. 하나님도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우리는 알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어두운 극장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으시고 만지시며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다.
저자는 1부에서 영화의 역사와 그 영향력, 영화의 진실과 영화비평 등을 이야기한다. 그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할뿐만 아니라 많은 참신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영화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오리엔테이션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정보가 많다.
"영화의 역사"에서 켄 가이어는 먼저 개인적인 영화 체험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영화의 근원적 뿌리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모든 예술의 뿌리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빠져 딴 세계로 휩쓰려 가고 싶은 욕망은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할만큼 보편적인 것이다"(22쪽).
이야기를 전하는 기법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다. 우선 15세기에 활자를 통한 인쇄술이 유럽에 등장하였다. 그로부터 400여년 후 사진이 발명되었다. 영화의 발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사진술(寫眞術)의 발명이었다.
다음 단계의 기술은 토머스 에디슨의 공로이다. 영화 저작권 소유자 1호가 바로 그였다. 영화의 제목은 <프레드 오트의 재채기>였다. 이것은 한 사람의 재채기 장면을 활동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도 활동사진을 개발했으나. 루이와 오퀴스트 뤼미에르 형제는 그 발명품을 하나의 새로운 물건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다르게 보았다. 미국인들은 활동사진을 보여주는 가게로 몰려들었다. 기계에 1센트 동전을 넣으면 치아를 뽑는 장면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저자에 의하면, 인생의 모든 수수께끼는 영화에 해답의 모색이 있다. "인간관계의 수수께끼, 낭만의 수수께끼, 사춘기의 수수께끼"(31쪽). 1920년대에 들어 영화는 미국을 바꾸어 놓았다. 영화는 개인의 습관을 바꿀 뿐만 아니라 사회의 흐름을 주도했다. 영화 속의 여자들은 담배를 피웠고 화장을 했고 스타킹을 신었다. 그 결과 담배, 화장품, 스타킹 산업이 특수를 누렸다. 작가 샐먼 러시디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때문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영화에 대한 짧은 책을 쓰기도 했다. 영화 <아기 사슴 밤비>는 사슴 관련 소비를 반 이상 줄어들게 만들었다. <이유 없는 반항>이 상연된 후 사고가 없던 조용한 마을에서도 타이어가 수백 개씩 절단 났다고 한다. 의 주인공 소년이 버림받은 외계인을 유혹하려고 특정회사의 사탕을 떨어뜨리자 그 사탕의 매출이 65%나 늘었다. 1984년 <아마데우스>의 개봉은 모차르트 음반에 엄청난 수요를 몰고 왔다(32-33쪽).
저자는 말한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이 바로 영화였다. 가장 재미있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말보다는 이미지를 통해 인생을 경험한다.
영화는 사회에 대해 그 어느 예술 매체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화가 시각적이면서 청각적인 매체일 뿐 아니라 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을 집단적으로 감동시킬 수 있는 막강한 전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통치자들이 영화를 그들의 이념이나 당(黨)의 선전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레닌은 일찍이 “모든 예술 중에서 영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 러시아 혁명 직후 영화사업을 즉각 국유화함으로써 영화를 통한 사회주의 혁명의 수행을 강요하였다. 히틀러나 B. 무솔리니도 영화를 나치즘과 파시즘을 위한 한낱 선전도구로 전락시켰다. 무솔리니는 국립중앙영화실험센터를 창설하고 로마 교외에 영화도시 치네치타를 건설하였고, 히틀러는 영화를 보다 철저히 지배하고 활용하기 위해 검열제도의 강화와 유대인 및 자유주의적인 영화인의 탄압·축출을 서슴지 않았다.
본서의 저자는 2부 "영화 묵상"에서 14편의 영화를 소개하고 그의 묵상에서 얻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혼자 보았다. 아내 주디는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마하 해변의 상륙 장면은 그가 본 것 중 단연 수작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에누리 없는 사실적 묘사로 관객들을 6월의 그 운명의 날 오마하 해안을 습격했던 미군 병사들 옆에 데려다 놓는다"(78쪽). 관객은 18세, 19세, 20세 된 아이들의 몸을 찢어놓는 연발탄 기관총 소리를 그들과 함께 듣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 전쟁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저자의 친구가 들려준 말에 의하면,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 든 두 남자가 화면에 경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 주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적 전투"의 현실을 본다. 토저(A. W. Tozer)의 말대로 인생이란 놀이터가 아니라 싸움터이다. 바울이 말하는 영적 전투는 현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가 "특별히 뛰어난 이유는 우리로 인생을 여태껏 보던 것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준다는 점이다 키팅 선생이 아이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서서 새로운 눈으로 교실을 보게 하던 장면이 좋은 예이다. 인생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자신의 삶도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된다"(92-93쪽).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르가 봉착한 "신학적 질문"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어떻게 나 같이 합당한 사람에게서 재능을 거두시고 모차르트 같이 부당한 사람에게 주실 수 있단 말인가?"(128쪽). 이 영화는 저자의 눈을 "푹 찌르는 것 같았다." 그의 솔직한 고백을 들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이 그저 마음이 동해 처음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이 베스트셀러는 물론이요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작가의 성공을 곱게 보기가 너무 힘들다"(135쪽).
본서는 그리스도인의 시각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묵상하도록 돕고 있다. 영화를 보고 "묵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발상의 전환이 아닌가! 유익한 통찰과 신선한 자극을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21개(25/52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41 모바일 [김성욱 칼럼] <논쟁의 태도는 사랑이다> 김성욱 2019.02.19 07:05
540 모바일 [김성욱 칼럼] <양심의 민감 단계> 김성욱 2019.02.19 07:04
539 [조정의 칼럼] 질의응답(2):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 말씀은 불순종하는 남편 조정의 2019.02.18 21:35
538 [서상진 칼럼] 교회는 한 믿음의 공동체 서상진 2019.02.18 06:57
537 [서상진 칼럼]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서상진 2019.02.16 05:13
536 모바일 [김성욱 칼럼] <좁은길> 김성욱 2019.02.14 15:15
535 [서상진 칼럼] 목회자와 식사 대접 서상진 2019.02.14 09:40
534 [서상진 칼럼] 오래 전 불렀던 찬송의 기억 서상진 2019.02.10 10:06
533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목회자를 경시하는 풍조에 관하여> 김성욱 2019.02.10 09:46
532 모바일 [김성욱 칼럼] <주님, 그리고 베드로> 김성욱 2019.02.10 09:44
531 [송광택 칼럼] 성육신 송광택 2019.02.08 23:56
530 [송광택 칼럼] 세상을 놀라게 하라 송광택 2019.02.08 23:52
529 모바일 [김성욱 칼럼] <비판, 비난 그리고 형제우애> 김성욱 2019.02.07 10:49
528 [서상진 칼럼] 명절에 생각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서상진 2019.02.06 11:05
527 [조정의 칼럼] 질의응답(1):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라"는 말 조정의 2019.02.04 10:30
526 [서상진 칼럼] 목회와 헌금 서상진 2019.02.03 08:57
525 [서상진 칼럼]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 서상진 2019.02.02 11:58
524 [서상진 칼럼] 하나님의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상진 2019.02.01 04:57
523 [서상진 칼럼] 나는 무엇에 미쳐있는가? 서상진 2019.01.29 15:48
522 [서상진 칼럼] 예수 잘 믿어도 암에 걸립니다. 서상진 2019.01.29 04:5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