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칼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교훈

이종수 | 2003.10.09 15:04
여기에 많은 독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줄만한 탁월한 간증이 있습니다. 간증이라는 성격상 다분히 개인적이긴 하지만, 필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이 간증문과 함께 보낸 서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바르게 기도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궁구한 결과입니다. 저는 이 방법이 단시일 내에 놀라운 결과를 내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지난 20년 넘게 아무런 열매도 없는 기도를 드려왔는데, 그러한 기도로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돌아온 실제적인 열매가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 주 동안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기도 방법대로 해보니, 그들이 성경 공부에 출석하고 매주 교회 예배에도 참석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그들의 태도도 바뀌었고, 거부하고 저항하던 것이 다 사라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의 권위의 자리에 앉아, 그 권위로 대적에게 대항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생각하며 제 자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제 위치에 앉아 성령님께서 죄를 각성시켜주시는 역사를 하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 몸의 각 지체, 또는 모든 지체들이 이렇게 기도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변화가 될까요!”

신자라면 누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 혹은 침륜에 빠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믿음으로 기도하기 보다는 염려와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저로 하여금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간절히 구하도록 했으며, 어떻게 기도해야 합당한 기도인지에 대한 필요와 또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나의 믿음의 근거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나 말씀에 두어야 하는 필요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도움을 구하는 자를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전혀 구원과는 거리가 먼 것같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제게 마가복음 10장 27절의 말씀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 다음 성경 구절은 잠시 동안 제 마음을 사로잡았고,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4,5) 이 구절은 우리가 가진 영적인 무기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기도하고 있는 대상에게 이루어지고 성취되도록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즉 대적의 역사가 완전히 파괴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기도에 대한 견고한 토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구속의 역사를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구속은 온 인류를 구속하고도 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비록 그 사람이 현재 사단에 매여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하나님의 사신바 된 소유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 사람이 합법적으로 주님의 소유임을 주장하며, 하나님이 당신의 소유를 취하시도록 기도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구속의 근거 위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단지 그러한 의미가 있음을 아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구속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신바 되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우리의 중보기도가 이러한 역사를 이루도록 그들을 돕게 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보증된 것을 구하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대상이 되는 각 개인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또한 그분의 흘리신 피를 근거로 이미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었음을 이름을 거론하면서 주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모든 역사, 곧 대적이 사람들의 생각 속에 견고하게 확립시킨 거짓된 가르침, 불신앙, 무신론, 그리고 원한 등이 파괴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모든 생각이 사로잡힌바 되어 그리스도께 복종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는 그들이 악한 자의 세력과 설득당한 데로부터, 세상을 사랑하는 데로부터,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양심이 각성이 되고, 하나님이 그들을 회개하는 데까지 이끄시며,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음으로써,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그들 속에서, 또는 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합니다.

중보기도는 지속적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는 구속이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중보기도는 하나님을 납득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납득시키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어두움의 세상의 주관자이며 두려운 권세를 가지고 있는 원수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은 영혼을 위하여 영적인 싸움을 할 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가진 의무입니다. 이것은 누군가 구속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그들을 위해 어둠의 권세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다만 가진 바를 내어놓게 되고, 자신이 그러해야만 할 때, 사단은 교활한 방법으로 자신의 공격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구체적이 되어야 하며, 또한 구체적인 결과가 보일지라도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 믿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며, 신앙이 어느 정도 자란 분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 성령님은 새로운 기도의 방향을 보여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한 영혼을 위해서 중보하고 있었는데, 저의 기도가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령님은 그 사람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도록 감동을 주셨습니다. 제가 이러한 방향으로 순종하여, “이 사람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라고 기도했을 때, 저는 제 기도가 점차 효력을 발생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러한 기도를 통해서 그 사람을 사단의 깊은 곳에서 끌어낸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 후에야 평소처럼 계속해서 기도할 수 있었고, 대적을 향해 어린양의 피의 권세를 사용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그 삶의 모든 세부사항을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펼쳐지는 진정한 전쟁이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은 우리의 영적인 무기는 강력하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권세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수는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기도해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국내외 선교사들은 자신이 맡고 있는 구역과 지역사회와 학교에서 어두움의 권세와 죄와 불신앙을 대항하여 예수님의 피의 권세를 사용함으로써 사단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우리는 원수로 하여금 물러가도록 요구할 수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요 6:63)는 말씀과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6)는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마음과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기도와 그리고 우리의 간증(증거)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해 드려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원수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우리의 중보기도를 멈추도록 할 것이며, 우리가 행하는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원수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권세를 이해하고, 우리의 영적인 무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두신 전신갑주를 입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잘 무장되고, 잘 보호될 때,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그리스도 외에는 어떠한 힘도, 권세도 없다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는]…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2:14)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이 글은 A.B. Simpson 과 A.W. Tozer가 사역했던 Alliance지에 실린 원고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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