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설교] 천국의 비유 강해 2

이종수 | 2005.04.20 16:24
천국의 비유 2(마 13:1-9, 18-23)

1. 하나님 나라와 천국의 차이

하나님 나라는 창세전부터 영원한 나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전체 영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곧 물리적인 영역과 영적인 영역이 있다. 여기서 영적인 영역은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을 만유와 만물의 주재, 곧 주님으로, 왕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임해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킨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신 그 나라를 가리킨다.
사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그 나라를 영원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지금까지 섭리해 오셨다. 그리고 각 시대마다 오직 순종하는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해오셨지만, 이에 사람들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계속해서 실패해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땅에 아브라함의 후손이면서, 다윗의 후손인 한 사람, 곧 믿음의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그리고 절대적인 순복과 복종의 사람, 아무런 흠이 없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이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처음으로 외친 것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천국은 우리가 구원받고, 죽으면 가는 하늘나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왕으로 직접 임재하셔서, 다스리고 통치하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천국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천국을 거절함으로써, 주님이 이 땅에 가시적으로 임재하셔서 직접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계획은 연기가 되었고, 지금은 하늘에서 천국의 왕이신 주님이 다스리시는 천국의 비밀한 형태가 시작된 것이다. 천국은 주님이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이후부터 주님이 다시오실 때까지 한 시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장래에 우리 주님이 천국의 왕으로 이 땅에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 세워지게 될 것이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교회는 하늘 백성으로, 이스라엘은 지상백성으로 주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게 될 것이다.

2. 씨를 뿌리는 자의 비유
주님은 마태복음 12장 50절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과의 공개적인 관계의 절연을 선포하시고, 이에 13장 1절에서 상징적인 행동을 통해서 이것을 나타내셨다. 곧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집’에서 나가서, 이방인들을 상징하는 ‘바닷가’에 앉으셨다. 이것은 곧 천국 메시지가 이스라엘 민족을 떠나서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기 시작한 것을 가리키고 있다. 주님은 마태복음 10장 6절에서는 이 천국 복음을 우선적으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전파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스라엘 집을 떠나서 이방인을 상징하는 바닷가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계신다.
이제 복음의 씨를 뿌리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히브리서 2장 3절-4절을 보면 이 구원의 말씀을 처음으로 전하신 분, 곧 씨를 뿌리는 사람은 인자(히 2:3)이셨고, 그 말씀을 들은 자들, 곧 주님의 사도들이 또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따라 그 다음 세대에 증거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씨는 누가복음 8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되었다. 이 비유를 살펴보면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 무조건적인 성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이 천국 시대는 참된 신자와 거짓된 신자들(false professors)로 섞여 있다.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인 사람의 마음이 문제이다.
이 비유에서 그 다음은 땅이 언급되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 주님이 네 가지 종류의 땅과 사람 마음의 네 가지 상태를 설명해주셨는데, 그중에 오직 하나만 실제적인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사실 말씀이 증거될 때에는 머리에만, 즉 지식적으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마 13:19) 전해지는 것이다. 즉 씨가 밭에 뿌려지듯이 복음이 마음에 증거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 곧 구원의 복음을 거절할 때는 지식적으로만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온 전체가(지적으로, 감정적으로, 의지적으로) 거절하는 것이다(따라서 생명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자 이제 각각의 마음의 밭에 대해서 살펴보자.
길가에 씨가 뿌리웠다는 것은 단단한 땅에 씨가 떨어진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죄로 인해 마음이 강퍅해져 있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것을 보여준다. 이 경우는 사단이 즉시로 와서 씨를 낚아채 가는데, 이는 누가복음 8:12에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라고 주님은 설명해 주셨다.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는 피상적인 부류의 죄인들로서, 쉽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열광적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거기에는 죄에 대한 참된 회개가 전혀 없다. 모든 것이 겉모양뿐이다. 이 모든 것은 육신의 발로로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의 믿음은 고난 속에서 검증 받아야 한다. 결국 그러한 믿음은 고난이라고 하는 풀무 속에서 정금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연기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한 믿음은 희생(고난)이 없이도 종교적인 고백이 가능하게 한다(행 14:22 참조).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믿음은 아무 가치가 없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고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인내를 통해 연단을 받고, 연단을 받음으로 장차 오는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영광 가운데 들어갈 소망으로 불타게 된다.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거짓된 믿음이며, 가짜 믿음이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역사하는 믿음이다.
어떤 씨는 가시떨기 가운데 떨어졌는데, 이것은 믿음을 고백한 사람이 세상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라고 우리 주님이 해석해 주셨다. 종종 부자들은 세상 염려로 인해 자기 영혼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소홀히 한다. 돈을 버는 일 때문에, 혹은 하나님이 자기 재물을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기 영혼 구원문제를 뒤로 미룬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는 돈을 자기 신으로,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갈 곳은 오직 한 곳 밖에 없다. 찬송가 269장은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좇다가 저 마귀 지옥갈 때 너도 가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라고 노래하고 있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재리의 유혹으로 인해 재물이 영혼 구원에 대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첫 번째 사람에게 마귀가 악한 역사를 했다. 두 번째 사람에게 육신이 방해요소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세상이 나쁜 영향을 행사했다.
말씀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한 부류의 사람만 실제로 열매를 맺었는데, 누가복음 8:15에서는 이것을 "착하고 좋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믿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여기서는 "착하다"고 말해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결코 자신에 대해 착하다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범죄한 자들이며, 또 구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해서도 착하다고 할 수 없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열매를 맺은 좋은 땅에서도 그 열매맺는 정도가 달랐다. 이는 모든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동일한 정도로 반응하지는 않음을 뜻한다. 누가복음 7:47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8절에서는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것도 많이 사랑하는 것, 그것만이 과실을 많이 맺는 비결인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자. 그것도 많이 사랑하자.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천국 안에는 이처럼 네 가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섞여 있다. 따라서 입으로는 주님을 믿노라고, 또는 구원받았노라고 하지만, 결코 거듭난 일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령님의 역사와 능력을 통해서 거듭난 경험을 한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회개한 사람들이라고 말은 하지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경건하게 살고픈 마음은 있지만, 결코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다. 경건의 능력은 바로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이시다. 그래서 참으로 거듭난 사람, 즉 좋은 밭인 사람은 백배, 육십배, 삼십배로 결실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실은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또 왕으로 섬기고, 절대 순종을 할 때만이 풍성한 결실을 맺되, 절로 맺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누가복음 8장 15절에 보면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오직 순종을 통해서만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풍성한 결실을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은 4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될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말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이 시대 안에(기독교계) 원수의 속임과 혼돈이 난무할 지라도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끝까지 충성하며, 하나님의 복되신 아드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존중하고, 또 따르는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에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성도의 마음’에 대해서 살펴보자. 성도는 자신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왕이신 주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서, 그분의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디도서 3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성도인 우리는 회개를 했고, 그 죄로부터 돌이켰다. 오직 회개, 곧 회개의 역사가 길가와 같이 단단했던 우리의 마음을, 돌짝밭 같았던 우리의 마음을, 가시떨기와 같았던 우리의 마음을 갈아 엎은 것이다. 그래서 회개한 우리 마음은 부드러운 땅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었고, 또한 촉촉한 좋은 땅과 밭과 같이 되었던 것이다.
이에 복음의 말씀이 우리 마음밭에 떨어지고, 증거되자 싹을 내고, 잎을 내고,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그런데 23절에서 보듯이 결실하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을 보게 된다. 백배에서 육십배로, 육십배에서 삼십배로----우리는 이를 통해서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음을 보게 된다. 전에는 우리 마음이 구원의 기쁨이 넘치고, 우리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며, 또한 하나님의 평안을 받아 누렸다. 그런데 왠일인지 요즈음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을 보게 된다. 왜 이럴까? 왜 이럴까? 말은 하지만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잠언 24장 30-32절을 보면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잘 관리하지 못하면, 혹은 영적인 게으름을 피우게 되면, 우리 마음밭에 다시 가시떨기가 생기고, 가시덤불로 뒤덮일 수가 있다. 때로는 재리의 유혹과 세상의 염려가 마치 가시덤불처럼 우리 마음을 칭칭 감고 있을 수가 있다. 그리곤 점차 우리 마음이 돌짝밭이 되어 가는 것을 겪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 마음은 길가와 같은 마음이 된다. 길가인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길가는 그야말로 아무 사람이라도 밟고 다니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마음 상태는 바로 세상의 철학이나 이단적인 가르침이 자유롭게 왕래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디모데전서 4장 1절에서는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 미혹케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그저 허용하는 상태에까지 이를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1장 5절과 19절에 보면, 우리의 마음을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으로 지키지 못하면, 그리고 19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계속해서 갖지 못하면”을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을 잘 지키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다시금 구원받기 전과 다름없는 상태, 곧 길가와 돌짝밭과 가시떨기와 같은 상태에 떨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레미야 4장 3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고, 호세아 10장 12절에 보면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이용가치가 있는데도 놀리고 있는)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의 마음 상태를 살피고 이 시간 주님께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회개란 주님 앞에서 묵은 땅인 우리 마음을 새롭게 갈아 엎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떨어지게 된 우리의 실수와 잘못을 그대로 주님께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자비로우시고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널리 용서해시고, 우리를 받아주실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주님께서 우리 심령에 임하셔서 의를 비처럼 우리에게 내리실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 마음밭은 다시금 좋은 밭이 되어 이제부터 백배 육십배 삼십배로 결실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를 누리길 바란다. 아멘.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21개(22/52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601 [서상진 칼럼] 다른 이면의 가능성 서상진 2019.06.02 09:24
600 [서상진 칼럼] 메시지보다 메시지를 말한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서상진 2019.06.01 13:44
599 [서상진 칼럼] 보상과 인정을 바라면 감사는 사라집니다. 서상진 2019.05.27 05:07
598 [서상진 칼럼] 나는 누구입니까? 서상진 2019.05.25 05:08
597 [서상진 칼럼] 처음과 끝이 다른 우리들 서상진 2019.05.25 05:07
596 [서상진 칼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법 서상진 2019.05.21 16:36
595 모바일 [김성욱 칼럼] 진리전쟁에 참전하라 김성욱 2019.05.20 10:35
594 [서상진 칼럼] 심방의 목적 서상진 2019.05.17 05:06
593 [서상진 칼럼] 나의 참된 선생님은? 사진 서상진 2019.05.17 05:05
592 [서상진 칼럼] 예배와 헌금 서상진 2019.05.12 09:21
591 [서상진 칼럼] 하나님의 일은 무엇일까? 서상진 2019.05.11 05:05
590 [서상진 칼럼] 하나님아버지 그리고 나의 아버지 사진 서상진 2019.05.08 05:07
589 [조정의 칼럼] 질의응답(3): 교회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청소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조정의 2019.05.07 22:45
588 [서상진 칼럼] 내 삶이 어려울 때 서상진 2019.05.07 05:08
587 [서상진 칼럼] 교회란 무엇일까요? [1] 서상진 2019.05.03 05:02
586 [서상진 칼럼]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하나님 서상진 2019.04.29 05:11
585 모바일 [김성욱 칼럼] < 마음지킴 > 김성욱 2019.04.27 10:28
584 [서상진 칼럼] 목숨을 건 기도가 필요합니다. 서상진 2019.04.26 10:30
583 모바일 [김성욱 칼럼] < 인권, 왕좌에 오르다 > 김성욱 2019.04.23 07:45
582 [서상진 칼럼] 커밍아웃을 합니다. 서상진 2019.04.21 19:1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