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칼럼]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3)

이종수 | 2005.01.11 13:24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3)
The Church, the House of God

부제: 지역 교회 안에서의 은사 관계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는 집이란 말을 생각할 때, 흔히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이나 가정의 의미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보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집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약성경이 성막을 가리켜 하나님의 집으로 명명한 것(대상 6:48, 시 42:4)을 깊이 있게 생각해보면 보다 성경적인 의미로서의 집이란 말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인 성막은 레위인과 제사장, 그리고 대제사장에 이르기까지 사역과 봉사의 체계였습니다(민 1:15, 3:6-7, 4:16, 8:19, 출 27:21, 28:1, 29:30, 대상 6:48-49).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 시대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집의 모든 일을 하도록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집에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각자 맡아서 감당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역동적(또는 능동적)으로 사용될 때, 하나님은 가장 신령한 예배를 받으시며, 성도들은 서로 덕 세움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하나님의 집이란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사역과 은사 체계가 조화를 이루면서 역동적으로 섬기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가 섬기는 지역 교회에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의 집인 지역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처소가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섬기는 지역 교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기를 바라는 소원과 소망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이것이야말로 신약교회의 이상과 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와 간구로써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올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제 이러한 신약 교회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이 어떻게 하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은사의 다양성 및 통일성
우선적으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신약 성경은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의 다양성과 그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신 주체가 누구신가에 대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4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7절), 또는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8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11절) 우리는 이러한 구절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인 지역 교회 안에는 다양한 은사가 주어진 사실을 보게 됩니다. 또한 모든 은사가 성령님의 주권을 따라 결정된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11절).
그러므로 모든 은사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는 귀하지 않은 은사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는 우리가 섬겨야할 다양한 영역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볼 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 가운데 은사가 없는, 또는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집이 단순히 가정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섬기는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신 독특한 은사가 무엇인지 분별하는 일의 중요성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4-8절, 고린도전서 12장 8-10절, 베드로전서 4장 10절 등을 보면, 우리에게 다양한 은사들이 주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하며, 또한 자신의 은사를 더욱 개발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각자 또는 소그룹으로 은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은사 테스트를 하면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분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섬길 영역을 정해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은사와 관계없이 섬길 영역을 임의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진정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뜻은 우리 개인의 영광이나 자랑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도록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우리가 가진 은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집에서 서로 섬김으로써, 서로 유익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로 덕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롬 14:19, 고전 14:4). 여기서 덕을 세운다는 말은 건축 용어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보완해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또는 우리의 은사들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은 개인적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적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모든 은사가 하나님의 집인 지역 교회를 섬기는데 모아진다면,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사장되는 은사가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은사가 하나님의 집에서 사용됨으로써, 하나님의 집이 든든히 서 갈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잘 섬길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성도들에게도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롬 14:18).

2.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서의 은사 관계
또한 고린도전서 12장은 우리가 상고하고자 하는 지역 교회 안에서의 은사 문제와 은사 활용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은사를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다루기보다는 지역 교회 안에서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사용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거듭난 우리 모두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그리고 몸의 유지와 건강을 위해 몸의 각 지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협력하듯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인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해서 유기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서로 협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은사가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서의 우리 각자의 위치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몸의 지체들이 외부적인 체계와 내부적인 체계로 이루어진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지체들은 우리 몸의 외부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고, 또 어떤 지체들은 보다 내부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외부적인 지체들로 발, 손, 귀, 눈, 코 등을 언급하면서 각각의 기능들의 독특한 역할에 대해 언급했고, 이러한 우리 몸의 지체들이 서로 분쟁이 없이 협력하듯이 우리 또한 지역 교회 안에서 각자의 역할에 대해 분쟁이 없어야 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체로서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기만 하면, 몸 가운데서 분쟁이나 혼란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그리스도 몸의 지체인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다면, 지역 교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말씀 사역자들을 우러러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적으로 가르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이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집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는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 몸의 내부적인 지체들이 외부적인 지체들을 부러워해서 모두 몸 밖으로 나온다면 그것은 얼마나 흉측스러운 일이 되겠습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7)
하나님의 집을 허무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장래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했는가에 대해서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은사에 대해 충실했는가에 대해서 판단을 받게 될 줄로 압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조심하고, 또한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충분히 배울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 몸의 내부적인 지체들(심장, 간, 위장 등등)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또한 더 약하게 보일지라도 도리어 더 중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생각하기에)덜 귀히 여기는 지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공적인 은사가 아니기 때문에, 또한 드러나게 섬기거나 활동하지 못하는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지체들이 다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더욱 아름다운 것은 각 지체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의 각 지체들이 맡은 바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할 때, 모든 지체가 더욱 존귀하고 아름답게 되며,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가 지역 교회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한 부분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앞선 일군들과의 상담과 조언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에는 특별히 지역 교회를 인도하는 책임을 맡은 장로들(목회자들, 감독들)에게 찾아가서 의논하면서 교제를 나누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찾아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할 때 그리스도 몸의 모든 지체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존귀한 모습으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3. 교회에 주신 은사(자)들
그 다음에 우리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은사(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7절로 16절을 살펴보면,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시면서 교회에 은사(자)들을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은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집에서 섬기도록 주신 개인적인 은사들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를 섬기도록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들을 교회에 은사(선물)로 주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사람들을 교회에 주신 목적이 에베소서 4장 12절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For the perfecting of the saints, for the work of the ministry, for the edifying of the body of Christ)” 이 구절은 세 가지 목적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이 세 가지는 따로 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순서적이고 단계적인 세 가지를 말씀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이에 대해 차근차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사도와 선지자들은 초대 교회 시대에 교회의 터를 놓는 일에 사용된 은사자들로서 오늘날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분별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그 다음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들로, 이러한 은사자들은 오늘날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매우 중요한 사람들입니다(물론 모든 성도들이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회와 관련한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자들을 교회에 주신 목적과 이들의 역할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온전케 된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봉사의 일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은 봉사의 개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더욱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영어 성경은 이 부분을 “for the work of the ministry”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곧 사역의 일을 감당하도록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온전케 됨을 입고 사역의 일을 감당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역이란 단어에 정관사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신약 성경이 말하는 사역이란 곧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일반적인 기독교의 모습과 같이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여, 성직자인 일부의 그리스도인들만 사역자가 되고, 대다수 남은 성도들은 평신도로 전락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신약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이상한 관습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가 다 사역자가 되어 사역의 일을 함으로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전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목회와 가르침에 수고하도록 지역 교회에 주신 은사자들을 공궤하는 문제입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갈 6:6),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고전 9:11)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전심 사역자들의 생계비 문제를 하나님께만 의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의 책임과 의무로 말씀하셨는데, 오히려 하나님의 책임과 의무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울러 야고보서 2장 15-17절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다소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우리의 생활수준과 전심 사역자들의 생활수준을 엇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온전하고 장성한 사람의 태도라고 봅니다.

우리는 흔히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일을 천국에 가서만 가능한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서로의 은사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역사하고, 조화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이 뜻하신 선을 이룰 때, 우리는 함께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는 이르게 되는 것임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가진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집에서 서로 섬기는 목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인 은사자들을 통해 온전케 됨을 입은 성도들이 각자 자신의 몫에 따라 사역의 일을 감당할 때, 그 사역의 목표이자 목적인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 일은 또한 우리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써, 곧 고린도전서 14장 1절과 3절에서 말씀한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와 같이 서로의 덕을 세우는 예언의 말을 할 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여기서 덕을 세우는 예언의 말이란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총괄하는 것으로, 강단의 말씀을 비롯하여 성도들 간에 말씀으로 서로 교제하며, 상황에 따라 안위와 위로와 권면의 말을 나누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의 지역 교회에 보다 다양한 소그룹 성경 공부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소그룹 성경 공부는 서로 덕을 세우고, 또한 서로의 은사를 분별하고 개발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목적과 목표를 가진 소그룹이 활성화되면 지역 교회의 양적·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소그룹은 크게는 복음 전도를 위한 소그룹, 성도 양육 및 제자 훈련을 위한 소그룹으로 나눌 수 있고, 이외에도 지역 교회의 영적인 필요에 따라 구역 책임자 훈련을 위한 소그룹, 신령한 예배를 위한 소그룹 등 다양한 소그룹 성경 공부반을 열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소중히 여기고, 범사에 그리스도께 자라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은사를 더욱 개발하고 발전시키며, 모든 성도와 더불어 은사를 조화시키며 서로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몸의 지체된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서 열심을 품고 섬길 때,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는 놀라운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지역 교회에서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때, 하나님의 집인 지역 교회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고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참으로 이러한 모습이 우리가 섬기는 지역 교회의 모습이길 간절히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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