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묵상] 드리는 삶을 살라

이종수 | 2003.12.17 09:27
드리는 삶을 살라
Be Prepared for Giving

하나님의 일을 유지하는 비결

D.W. Brealey

재정 문제는 모두가 인정하듯이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주제임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 많이 말씀하고 있고, 또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가들을 발견하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드리는 일에 대한 모세의 가르침은 모두 주 예수님에 의해 다시 확증되었는데,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다만 하나님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특별히 십일조 문제에 있어서 세세하게 따지기를 좋아하면서도, 더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은 균형 감각을 유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마 23:23)
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것”이란 “더 중한바”를 가리키고 있으며, 또 “저것”이란 “십일조”를 가리키고 있는데, 주님은 어느 것도 버리지 말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여기서 주님의 권위로 십일조를 필수적인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장자와 첫 열매가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특별하게 강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주님은 십자가 구속을 경험한 마음에 일어나는 참된 반응에 대해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또한 주님은 드리는 일에 대해서, 그 사실 자체나 특권을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열납하실 만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할 만한 다음과 같은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1. 만일 예물을 드리고자 한다면 삶이 합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2. 동기가 옳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2-4)

3. 가족 부양에 대한 합당한 인식과 책임을 져야 합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막 7:10-13)

4. 주님께 드리는 예물은 사랑에 의한 강권함을 통해서만 드려져야 합니다. 이에 대한 본은 시몬의 집에서 회개한 죄인이 주님께 드린 예물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이에 대해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눅 7:47)고 증거하셨습니다.

5. 예물의 정도는 주님이 받으시는 정도에 비례합니다(The measure of the gift will be the degree of its acceptability). 예물은 그 본래의 값이나 가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드렸을 때에 우리에게 얼마나 남았는가에 의해 측량됩니다.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막 12:41-44)
예수님은 연보궤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드린 예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예물을 기뻐 받으시는지에 대한 사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물은 완전한 자기 희생을 해서라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 가운데 최고한 본을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사도들의 가르침을 살펴보기 전에 저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격려와 권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사도들의 가르침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매우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 전체에서 적어도 한 번, 아니 그 이상에 걸쳐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의 문제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 걸쳐서 철저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그 두 장을 조심스럽고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해볼 것을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확실한 원칙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에 대한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원칙은, 우리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고전 6:19). 그래서 로마서에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이 구절에 대한 실천은 마게도냐 교회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고후 8:5). 우리가 처음부터 이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지게 되면,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제로는 주님의 것이며, 또한 우리의 것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사용하는 일에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할 것도 분명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청지기직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심사숙고하게 될 것이며, 우리 마음 속에 우리 자신을 위해서 얼마를 쓸 것이며, 또한 남은 것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바르게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삶의 문제를 정리하는 차원에서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에 나타난 원칙들을 살펴봅시다.

이 두 장에 나타난 원칙들을 순서대로 살펴본다면, “풍성한 연보”(고후 8:2)라는 구절을 통해서 “손을 완전히 펴서 주라”는 첫 번째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드리는 삶에 대한 교훈을 마치면서 이 원칙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드리는 일에 있어서 손을 널리 펴서 드리라는 것으로 교훈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고후 9:11), 그리고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고후 9:13).

인색하지 않은 연보에 대한 최고한 본, 그에 대해 반박할 수 없는 확증과 진정한 격려는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할 수 없는 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여기서 우리는 “인색하지 않음(liberality)”이 그렇게 낼 수 있는 부자에게만 한정된 호의적인 마음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그토록 풍성한 연보를 할 수 있었던 토양은 바로 “극한 가난”이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영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1-2). 우리는 이러한 일을 우리 그리스도인의 경험 속에서 얼마나 자주 보고 있습니까?

두 번째, 자원하는 마음의 원칙입니다. “저희가 힘대로 할 뿐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3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11절),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12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세 번째, 즐겨내는 마음의 원칙인데, 이는 두 번째 원칙에 이어진 것입니다. 후하게 그리고 자원하여 주는 사람은 드리는 일의 기쁨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 20:35)는 말씀의 진실성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드릴 때는 기쁘게 드리도록 합시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에서는, 또 다른 세 가지 원칙을 볼 수 있습니다. 드리는 일은 정기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매주일 첫날에…”. 모든 성도가 다 포괄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너희 각 사람이…”. 또한 비례적으로 해야 합니다: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 16:2).

이제 드리는 삶의 은혜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에 대한 여러 성경구절들을 아우르는 구절을 하나 소개하고 마치고자 합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돈을 말함)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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