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7.인문주의 영성

안영혁 | 2003.06.29 01:10
윌리엄 부스마는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중세 스콜라 철학의 기본 기법인 변증법을 문법과 본문을 읽고 해석하는 기법 그리고 유창하고 설득력 있는 강연의 기법인 수사학으로 대신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스콜라 철학은 그렇게도 힘차게 수도원의 지성적 매진들에 힘입어 이제는 학문의 중심이 대학으로 옮겨졌을 때 점차 대학 가운데 나타났던 학문의 태도이다. 그러나 논자들은 스콜라주의의 대학 강의실만큼 영성에서 동떨어진 곳이 없을 것이라고들 한다(윌리엄 코트네이 등). 스콜라 철학은 고도로 추상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며, 논리지향적인 신학과 교양 과목 그리고 교회법 등 영성이라기보다는 일반 학생들의 직업을 의식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스콜라 철학에서 논리와 합리성을 말할 때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반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대학에서 신학사의 훈련을 받는 경우에도 성경을 읽는데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성경은 단기 과정으로 돌리고 논리학 혹은 물리학의 기법을 가지고 어떤 주제들을 사색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14세기 후반에 존 위클리프가 복음서 및 바울 서신에 대하여 논문과 주석을 내었을 때 사람들이 경악했던 것은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콜라 철학은 논리적 정밀성을 추구했겠지만 신학적으로나 영성적으로 볼 때 시대를 질곡에 빠뜨리는 경향을 분명히 가졌던 것이다. 존 위클리프에서 보는 그 느낌 그대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을 아주 바닥에 가라앉히는 것 같은 고요의 신학에 대해서 르네상스는 반론하며 일어났다.

고요한 학문적 사색은 변증법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다고나 할까? 적어도 이 스콜라 철학의 음험한 어두움을 이겨내려고 할 때에는 변증법은 참으로 사변에 불과했을 것이다. 사실 관계가 어떠하든 사고와 추상 가운데서는 성립하는 논리적 연결성.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그 어두움을 치고 나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고급문화 대중화의 시발이기도 하고 대중적 문화시대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그러나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시대가 아직은 중세 말기라고 한다면, 그 방법론적 기초는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문법과 수사학이었던 것이다. 특히 수사학은 논리적 관계에서만 강력한 논리학보다는 실제적인 힘으로 여겨졌다. 수사학의 유창함은 인간의 마음을 꿰뚫고 의지를 변화시키고 감정을 환기시키고 또 행동을 하도록 고취시키는 힘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실용주의로 향할 태세였던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시대에나 새로 일어나는 사조들이 바라는 것은 통전적인 인간이다. 우리 시대의 문화 운동이 감성 해방을 통한 인간의 통전성을 지향하듯이 르네상스 인문주의도 단지 지성주의를 넘어서 어떻게 총체로서의 인간을 그려낼 것인가 하는 것에 그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인간의 육체에 관심을 두거나 하는 흐름이 있지만, 갑자기 인문주의자들이 오직 인간에 몰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생각하기 보다는 매우 영성적이었고, 자유롭다기보다는 오히려 원천에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스콜라 철학에 대한 비판은 이미 그들 안에서 일어난 바가 있다. 대표적으로 둔스 스코투스나 윌리엄 오캄은 스콜라 철학의 주지주의를 이른바 주의주의로 이끌고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미 존재하는 사물들의 존재 관계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사태가 어떠하든 거기에 작용하는 인간의 의지가 중요함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바로 그런 시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의지도 얼마든지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지가 작용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경험론의 세계가 열려온다. 원하는 세계는 무엇이며, 거기에 의지를 가질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며, 그에 대한 인간의 경험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경험은 또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등등의 새로운 분야들이 밀려서 일어나지 않겠는가? 스콜라 철학이 거기를 완전히 떠나 있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역동적인 관계에서 보면 스콜라 철학은 너무나 나태한 철학으로 여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존재 관계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단단한 진리를 표명한다 할지라도 그에 대한 반감은 지워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말하자면 그런 발견에 기인하는 것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종교인들이기보다는 주로 평신도들이었다. 이 점이 중요하였다. 어쩌면 그 동안에 학문에 성직자들에게 독점되어 있다시피 했다. 그것은 물론 교회의 잘못은 아니다. 교회에 사람들이 모였고, 가장 주께로 가까이 가기 원하는 사람들이 수도회에 참여하였다. 그래서 수도원 초기에는 평신도 수도자들이 많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차 수도자들은 성직자들로 바뀌었다. 그리고 바로 이 성직자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학문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대학교육에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리하여 학문은 진전되었고, 이미 직업적인 학문을 하는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평신도 학자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고, 그들은 신학에조차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신학계는 말하자면 스콜라 철학의 어둠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평신도 학자들은 말하자면 이 어두운 스콜라 철학을 치고 나왔던 것인데, 이것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로서는 종교적으로 매우 절실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다름 아니라 스콜라 철학을 비판하면서 그들의 구원의 논리를 세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윌리엄 부스마의 견해에 따르자면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아직은 근본주의에 가까운 복음주의였다. 그들은 신학적으로 사변화된 복음과 구원 논리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의 복음을 원하였다.

그러니까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다짜고짜로 그레꼬로망에로의 회귀라고 말하는 것은 오해를 살 수 있다. 그들은 원천에로 돌아가고자 했기 때문에 그레꼬로망에로 회귀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원천에로 돌아가고자 했던 그 흐름에는 까닭없이 그리이스와 로마의 고전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기보다는 성경의 원래의 모습을 되살리기 원했던 것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스콜라 철학의 변증법적 방법을 넘어서는 길로서 그리이스보다는 오히려 로마의 수사학에 대한 애착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타파대상이었다. 왜냐하면 문화를 이렇게 어둠으로 몰아넣은 스콜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영향이었기 때문이다.

윌리엄 부스마는 인문주의에 대하여 초월자이시면서 자애로우신 하나님을 강조한 것, 인간의 피조성과 죄악됨에 대한 의식과 그 잠재력을 결합한 인간론, 은혜와 믿음이라는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등을 그 특성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오늘 개혁교회 신학의 중요 주제들이 아닌가? 인문주의의 태동은 말하자면 개혁교회 신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역사적 종교 개혁은 루터에게서 시발한다. 그러나 루터가 그렇게 종교개혁을 일으킬 수 있었고, 그리고 그 종교개혁이 그냥 사그라지지 않고 역사 내내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학문적 성과가 유럽 대륙 전체에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면에서 종교개혁은 카톨릭의 그릇된 사변과 철학에 반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이었다는 평가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주의라는 개념이 우리를 헷갈리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관점을 전혀 버릴 수는 없다고 하겠다. 요컨대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영성사적으로 말해서는 중세말기 평신도들의 복음주의 운동이었다.

대표적으로 논의들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이미 말한 대로 인문주의자들은 인간의 육체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이것도 이 땅에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상을 배경에 가지고 있다. 또한 이를 통하여서도 물질적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고, 지식이란 것이 인간의 마음을 꿰뚫고 의지를 형성하여 전인적으로 반응하게 될 때 진정한 앎으로 형성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페트라르카의 우신예산은 마치 고린도 전서 2장의 미련한 예수 미련한 십자가 미련한 전도라는 말을 돌아보는 것 같은 책이었다. 어리석음이 오히려 힘이라는 입장이 분명한 것이다. 인문주의는 이처럼 인간의 독자적인 지각과 반응을 인정하는 지적 체계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것이 인문주의 영성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하여 인문주의자들의 죄책고백은 사실 루터 못지 않았다. 페트라르카는 아무리 고결한 인간일지라도 끊임없이 유혹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하며 많은 위험에 직면하며 죽기 전까지는 안전하지 못하다고 말한 바가 있다. 특히 그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자주 언급하며 그 자신이 어거스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이미지를 자주 언급하곤 하였다. 그러나 결코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죄가 있으나 하나님께는 우리를 용서하시는 덕이 있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성으로 인식되었다. 하나님은 말하자면 이 절대성과 함께 인간이 의존할 자비를 가진 사랑의 하나님이셨다. 그리하여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영성이 교리의 집합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내 깊이를 더해 가는 하나님에 대한 관계 그리고 그를 통한 사람들과의 관계의 발달로 본 것이다.

우리는 초대 교회에서 오리겐과 아타나시우스를 비교하여 본 적이 있다. 이것은 물론 중세 스콜라 철학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매우 교리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들은 당시에 기독교 교리를 세워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중세에 와서 이들이 세우려고 하였던 교리는 너무나 사변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구원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개념들끼리의 정합성으로 이루어지는 논리였다. 지금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여기에 반대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기독교의 장구한 역사 가운데서 영성의 크나큰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기독교 영성의 이 특이한 발전을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바로 수사학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수사학은 단지 말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말에 힘을 싣는 것이다. 힘을 싣는다는 것은 본질적이지 않은 것을 첨가하여 억지로 그리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총체성이 확보되게 함으로써 저절로 힘을 얻게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기독교를 세워낸다는 뜻이다. 바로 이런 시도를 하면서 믿을 만한 원문인 성경을 요청하게 되었고, 그래서 깊은 성경연구가 일어났다. 그리고 성경 자체가 그런 수사학적인 장점을 가진 책임을 또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자주 성경에서 경험하는 대로 성경은 그 자체로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르네상스가 기독교 세계 안에서 일어난 것이라고는 하나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발견했던 성경적 수사학의 구원을 일으키는 영성의 힘에 대하여는 우리가 분명히 인식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은 한편 기본적으로 근본주의적 경향을 가졌다. 인간의 지성을 부인하는 과정에서 아울러 인간의 활동이라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가졌다. 활동을 통한 구원이라거나 하는 것은 전혀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관점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의 활동에 대하여 내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자연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는 그 하나님의 총체성을 따라서(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인만큼) 도시를 만들고 인간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면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다가오는 시민 사회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말하자면 스콜라 철학과 같은 학문은 도시의 시민들에게 맞지 않는 학문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여러 가지 국면에서 영성의 발달은 함께 도시의 발달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영성의 발달을 따라 우리의 영성의 모델을 새롭게 찾아가되, 이제 가장 후기에 와 있는 우리는 또 어떠한 영성을 발전시켜가는 것이 마땅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결코 그냥 인간 해방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독교를 떠나 로마나 그리이스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이스는 몰라도 사실 기독교 없는 로마는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개념이다. 그들은 신앙적으로 복음주의적이었고 심한 경우는 근본주의적인 경향조차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논지는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사회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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