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믿음은 하나님을 대하는 나의 태도

서상진 | 2019.01.28 05:12

세상의 모든 종교는 신과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왜 사람과 신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할까요? 그 신과의 관계가 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잣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과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을 합니다. 종교마다 수련과 수행을 통해서 신과 가까이 했다고 하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이런 존경과 능력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합니다. 돈이 몰리기 시작합니다. 신과 가까이 감으로 인해 능력을 받았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능력을 자기도 받고자 애를 쓰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람과 돈이 몰리게 되면, 결국 사람과 돈을 관리하는 조직이 생기게 됩니다. 조직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결국 그 안에 기득권과 권력과 서열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 안에서 생성되어진 권력과 기득권과 서열과 같은 조직은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해서 종교는 사람들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종교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는 하수인을 통해서 종교는 더욱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하나님으로 칭송하며 그 사람에게 절대적인 순종을 하는 이단 사이비 집단을 보게 됩니다. 그런 집단의 권력 체계도 다 이런 원리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그렇지 않을까요? 교회라고 이런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한 목사에 의해서 교회 내에 모든 서열은 정리가 되어 집니다. 그 권력은 일반인들이 생각을 하는 것 이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잘 보여서 교회 내에서 새로운 권력과 기득권을 소유하기 위해서 줄을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이 더 권위를 가지게 되고, 이런 것에 중독이 된 목사는 더 이상 헤어 나오지 못하는 구덩이에 빠져 들게 되어, 자기가 한 말이 곧 절대적인 진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런 종교적인 배타성을 파괴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 셨습니다. 성전이 얼마나 장엄합니까? 왜 장엄할 수 밖에 없을까요? 성전이 곧 이스라엘의 정체성이고, 성전은 하나님의 실존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헤롯은 이스라엘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성전을 더 크고, 화려하게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 성전에 예수님은 채찍을 들고 오셔서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자리에 어느 누구도 예수님의 분노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점검해야 합니다. 왜 신앙을 가지려고 할까요? 나는 왜 목회를 할까요? 믿음은 시스템과 조직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하는 나의 태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1,021개(2/52페이지)
편집자 칼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1001 모바일 [김성욱 칼럼] 왜 동성애를 경계 하는가? 김성욱 2023.07.14 09:29
1000 [고경태 칼럼] 하나님의 도성 읽기(5) 1권 29-36. 로마 일부를 남겨두심 고경태 2023.07.07 21:55
999 모바일 [김성욱 칼럼] 조리돌림 김성욱 2023.06.19 23:55
998 [고경태 칼럼] 하나님의 도성 읽기(4) 1권 16-28. 자살은 살인로서 어떤 형태의 고경태 2023.05.27 22:23
997 모바일 [김성욱 칼럼] 하나님의 불가해성 김성욱 2023.05.25 23:19
996 [신성욱 칼럼] “가장 적은 장난감을 가지고 죽은 자가 승리자다!” 신성욱 2023.05.12 21:37
995 모바일 [김성욱 칼럼] 누구를 높일 것인가? 김성욱 2023.04.25 07:56
994 [나상엽 칼럼] 수풀 속 대장장이 나상엽 2023.04.04 15:49
993 모바일 [김성욱 칼럼] 올바른 교리적 기준의 회복이 꼭 필요하다! 김성욱 2023.03.30 19:32
992 [조정의 칼럼] 마틴 로이드 존스가 애즈베리 부흥을 평가한다면 조정의 2023.03.07 22:22
991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목회자의 이중직 김성욱 2023.03.07 20:21
990 [배영진 칼럼] 마지막시대 대혼란과 분별법 배영진 2023.03.07 10:41
989 [김성욱 칼럼] 십자가와 사랑 김성욱 2023.03.03 10:03
988 [신성욱 칼럼] 죽음보다 강한 어머니의 사랑, 그보다 더한 하나님의 사랑 신성욱 2023.02.24 05:55
987 [고경태 칼럼] 하나님의 도성 읽기(3) 1권 10-15. 불행한 죽음과 역경에 있는 하 고경태 2023.02.14 01:04
986 [신성욱 칼럼] 거미가 다급하게 거미줄은 친 이유는? 신성욱 2023.02.10 22:45
985 [신성욱 칼럼] 나폴레옹의 모자를 26억에 낙찰받은 회장이 준 교훈과 도전 신성욱 2023.02.09 21:33
984 모바일 [김성욱 칼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김성욱 2023.02.07 07:54
983 [신성욱 칼럼] 참된 복음을 받은 자인가? 신성욱 2023.01.31 17:35
982 모바일 [김성욱 칼럼] 목회로 부르심을 받은 이름 모를 형제님께 김성욱 2023.01.31 00:1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