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10. 좁은 길

강도헌 | 2016.11.02 09:57

좁은 길

(천로역정 함께 읽기 10)

 

 

길을 안내하는 선의

 

좁은 문 안으로 들어선 순례자는 자신을 안으로 들여다준 선의와 지난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잠시 걷는다. 그리고 선의가 앞으로 가야할 길을 안내 해준다. 선의는 저 앞에 보이는 길들을 가리키며, 앞으로 여러갈래 길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 중에서 좁고 바른 길을 가야한다고 알려준다.

 

순례자는 다시 묻는다. ‘갈림길이나 굽은 길이 나타나면 처음 지나는 이 길을 잃기 십상이지 않을까요?’

 

선의가 대답한다. ‘네, 맞습니다. 샛길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하나같이 굽고 널찍합니다. 그가 바로 바른길과 그릇된 길을 구별하는 방법입니다. 바른 길은 늘 곧고 좁습니다.’

 

 

성공

 

기독교가 변질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현 시점에서 볼 때 기독교는 성공을 위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기 위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자신의 꿈(얼마든지 하나님의 꿈으로 포장할 수 있다)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복음과 하나님을 이용할 수 있다. 예수님이 주인된 삶은 매우 좁고 어렵지만, 예수님을 이용하고, 부리는 삶은 매우 매혹적이고 달콤하다. 사람들은 예수와 복음이라는 말에 쉽게 속아 넘어가며,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 또한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성취해주는 예수와 복음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 우리는 꿈을 이루는 삶이 아니라 삶을 이루어야 참된 꿈을 이룰 수 있다. 삶을 이루지 못한 꿈은 아무리 크고 화려하다고 해도 사상누각이다. 그래서 필자는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몸 하나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이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정과 변화가 없는 구원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것은 매우 명료한 명제이지만, 믿음의 삶의 현실 속에서는 혼란스럽다. 믿음이 가지고 있는 포괄성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리나 개념을 받아들이면 그것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삶으로 믿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말씀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지만, 삶으로 따르는 것은 이 세상의 현실에서 매우 어렵고, 모호하며, 실제 우리 마음 자체가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면서 믿음이라고 얼마든지 자기확신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가기 보다는 자기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변호하고, 자기합리화하기에 익숙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가? 여전히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사람이 변한다는 것, 즉, 성화되어지는 것은 단 번에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숫한 무지들을 깨달아야 하고, 깨달음에 대한 삶의 적용점들을 찾아야 하고, 세상과 죄와 마귀의 방해와 싸워야 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추악한 내면과 육신적 습관들에 대해 직면하고, 인정하고, 회개하고, 이기고 삶으로 승리해야 한다(이러한 과정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넓은 길이다). 이 모든 과정들은 계란이 병아리가 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애벌레가 나비로 변태 되는 것에 비유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에서는 계란과 병아리가 아니라, 나비가 부활과 거듭남의 상징이었다. 이러한 수고와 고통과 인내를 감수하는 믿음이 있는가?(행위적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행위적 순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좁은 길과 바른 길

 

복음서에서는 제자들이 가야할 길에 대해 ‘좁고 협착한 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고 언급하셨다. 사실 그 좁고 협착한 길이 어떤 의미인지, 상징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필자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온전히 하루하루를 주님이 주신 날이라 생각하며,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가고자 노력한다(노력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노력도 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이러한 삶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경험이다. 사람들이 궁금해서 찾아와 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위에서만 맴돌 뿐 이러한 삶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그러나 지속적으로 맴도는 사람은 결국 뛰어든다). 왜냐하면 좁은 길이란 자신의 목표, 야망,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앞으로의 미래를 주님께 맡기고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용기(믿음)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이나 세상, 타인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부인하는 삶으로 들어서야하기 때문이다.

 

즉, 매일 매일 주님을 믿기 위해 몸부림치는(자신을 살피고 성찰하는) 삶이다. 분명 사도요한의 말처럼 ‘이기고자 하는 자에게 이길 힘을 주심을 경험하는 삶이다.’ 이 과정을 받아들이는 삶이 현재 필자가 알고(경험적으로)있는 좁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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