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칼럼

  • 송광택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바울의 교회 글향기도서관 담당 목사
    한국기독교작가협회 고문대표 저서: 목회자 독서법(한언)
    E-mail songrex@hanmail.net

5월 가정의 달과 '빛의 자녀'

이성호 | 2016.05.09 18:50
5월 가정의 달과 '빛의 자녀'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서양 인류학자가 한 부족의 아이들에게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선 보기 드문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이 가득 찬 바구니에 가장 먼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약속했습니다.  

그의 말이 통역되어 아이들에게 전달되자마자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손을 잡은 채로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다다르자 모두 함께 둘러앉아 키득거리며 과일을 즐겁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어리둥절해진 그가 "일등으로 간 사람에게 과일을 주려했는데 왜 같이 달렸느냐'고 묻자, 아이들의 입에선 "UBUNTU(우분트)"라는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졌습니다.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수가 있는거죠?"  

"UBUNTU"는 아프리카 반투족 말로,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라는 뜻입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강조한 말도 우분트입니다! "I am because you are“(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사회는 어딜 가나 일등과 최고를 따지고 그들에게만 특혜와 기회가 주어집니다. 많은 아이들이 경쟁을 통해 밟고 올라서는 성공에 익숙해져 가고, 곁에 있는 이에 대한 소중함을 잊고 살도록 조장된 성적위주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이런 아이들이 명문대를 가고 다시 죽어라 공부해서 고시를 패스하고 그렇게 고위 공무원이 되면, 무슨 인생의 희노애락 공감이나 공공의 책임을 알게 될까요? 그런데 우리가 자녀들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합니다. 남들 다하니 뒤질세라 전전긍긍합니다.

“남들보다 더 가져야 행복하다”는 물질관에 너도 나도 어른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병들어 갑니다. 날 때부터 영어 알파벳으로 창문과 벽을 도배하고 영제 학습이니 선행 학습이니...아이들은 사실 죽어가는 겁니다. 그 안에 어떻게 생명의식이 타자를 향한 고결한 의식이 들어올까요. 우리 어른들이 부추긴 결과입니다.  

교회는 그런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복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만이라도 성공을 좇는 존재가 아니라 악한 영이 이 나라의 방송과 신문과 법조계와 정치계와 문화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빛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기 이득만 챙기는 풍토를 한탄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대안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복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풍조와 욕심에 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는 존재, 다르게 사는 존재가 되라고 부르십니다.

소득 편차가 지구상에서 가장 심한 나라, 아이들을 성적 순위로 구분하는 나라, 협동, 우애, 나눔을 배우기도 전에, 공부 잘하는 것을 강요받은 아이들이 중2만 되도 폭발하는 나라, 부모의 직업과 소득에 따라 사회적 계층이 나눠지는 그런 절망스런 나라가 될 순 없겠습니다.

탐욕과 이기심에 시달리지 않는 삶은 정말 불가능 할까요?
누룩이 되십시오. 겨자씨앗으로 남아 꽃을 피우는 무성한 나무의 가정이 되십시오(마태 13장). 우리가 겨자씨요 누룩이요 천국백성입니다. 세상에 거름이 되는 삶을 찾아가는 5월의 햇살같은 자녀들을 축복하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주인이 자기인 사람과, 하나님이 주인인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가까울수록 나는 작아지고, 십자가에서 멀어질수록 내가 커집니다. 오늘도 불의에서 떠나시고 탐욕에서 떠나시고 집단 이기심에서 떠나 “모든 피조물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아들들”(롬 8장)로 서는 나라, 교회, 가정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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