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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회

율법의 형식과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본질과 정신은 신약에도 그대로 승계된다

김경렬 | 2003.12.04 09:23
저의 소견으로는 분명 말라기 본문을 포함한 구약에 언급된 십일조 제도는 신약시대에 본질과 정신만 남고 형식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언급되었듯이, 신약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일조와 관련하여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행하라고 한 점입니다. 즉, 십일조의 본질인 의와 신과 인도 행하고 형식으로서의 십일조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 복음서의 언급이 현재도 신약시대의 십일조 존속의 가장 강력한 근거구절로 제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점에서 두 가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딱 한번 십일조 준수에 대해 언급하신 것 외에는 신약 성경 어디에서도 십일조 제도뿐 아니라, 그 단어 자체가 언급되지 않으며, 또한 제가 아는 한 초대교회 문헌들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그 언급이 십자가의 죽음의 이전이었다는 중대한 사실입니다.
우선 만일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예수님의 십일조 준수 언급을 수용했다면, 분명히 그들과 복음서 외의 신약의 저자들이 십일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이미 십일조를 준수하지 않았으리라는 추론이 쉽게 나옵니다. 두 번째 고려사항은 주석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됩니다. 이것은 십일조뿐만 아니라 구약 율법에 대한 토론에서 핵심중의 핵심인데도, 아래 대부분의 토론자들이 놓치고 있는 듯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33년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형식으로서의 율법 제도의 타파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용인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고친 후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 분은 제사장 제도를 용인하셨습니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그 분은 십일조 제도 역시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십자가 죽음 이전까지입니다. 이후 십자가 죽음으로 율법이 완성적 폐지가 되었고, 동시에 성전의 기능도 끝났습니다.
여기서 그 분의 죽음과 동시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완전히 찢어졌다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을 현재 우리가 간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엄청난 의미를 띈 기적이었습니다. 그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찢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제 성전의 기능을 공식적으로 폐지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 직도 이제는 공식적으로 소용없게 되었고, 나아가 성전과 관련된 모든 율법들도 그 기능이 끝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십일조가 포함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휘장의 찢김으로써 제사장직, 성전, 제사, 십일조, 각종 절기까지 모두 그 형식은 완전히 무의미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 제도는 신학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죽음과 동시에 끝난 것입니다. 물론 간혹 예수님은 율법과 형식을 파괴하는 듯한 행동과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 사건의 선취적 행위로 보아야합니다. 결코 십자가 죽음 이전에 성전, 안식일, 율법을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에 대립하여 본질의 중요성을 가르치셨을 뿐이고, 그의 죽음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형식과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본질과 정신은 신약에도 그대로 승계됩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예수님께서 그 기능과 정신을 대치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과 더불어 3일만에 지어진 새로운 성전이라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신약의 신자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전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성전이라는 공간적 영역뿐 아니라, 안식일과 주요 절기들인 시간적 영역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 그 형식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신자는 안식일에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시적인 안식을 누립니다. 아브라함 하셀이 안식일을 '시간 속의 지성소'라 했는데, 이 시간의 지성소를 가로막았던 휘장마저 그 분의 죽음과 동시에 찢어진 것입니다.
동시에 성전의 기능은 신자 개인과 교회로 이전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신자 개인을 성령의 전이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고, 더 중요하게는 신자의 모임 자체가 한 성령을 마신 성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즉, 신자는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성전의 구성물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 제도 또한 폐지되었으나, 그것의 본질적 기능은 역시 우리 신자들에게 승계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 신자들이 바로 '제사장들'이라고 말했습니다(벧전 2:9). 구약의 제사장이 백성들을 하나님께 중재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즉 교회가 이 시대에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 중재해야할 책임을 승계 받은 것입니다. 아울러 제사장이 드린 제사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어 불필요합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형식은 폐지되었으나, 본질과 정신은 신약에서 한층 강조되면서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헌금의 원리와 정신을 이렇게 말합니다.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힘에 지나도록' '평균케 하기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림으로' '간절함과 기쁨으로'... 이것은 구약의 십일조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선 것입니다. 즉, 바울의 강조는 너무나 분명하게 '십일조 이상'입니다. 다시 말해 신약의 원리는 신자가 십일조 이상을 내야 마땅하다고 요구합니다. 이런 십일조 원리와 관련해서 결론은 좀 있다가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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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글 율법의 형식과 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본질과 정신은 신약에도 그대로 승계된 김경렬 2003.12.0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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