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베스트서평
하나님의 거룩한 엄마 전사!
에이미 카마이클/엘리자베스 엘리엇/복있는 사람/나상엽
전환점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를 만나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짐 엘리엇 같은 이는 그 자신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우리들 인생에도 이런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있다. 그는 유년시절의 선생님일 수도 있고, 존경하는 선배일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사건이 우리의 방향을 바꿔놓기도 한다.
여기 커다란 이정표가 있다. 묵묵히 서 있으나 큰 글자가 그 몸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유일한 길이요 참된 문이신 그분과도 닮아서 그 몸에 온갖 상처가 나 있어서 겉보기에는 볼 품 없지만, 그 길을 결연하고 명확하게 우리 앞에 제시해주는 이정표 같은 사람, 방향 없이 살다가도 그를 만나면 번쩍 정신이 들어 너무도 선명하게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길을 먼저 지났기에 주저없이 지도해주는 사람, 제자가 가야할 길 곧 참된 제자도를 말하고 가르치고 그대로 살았던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본서는 바로 이와 같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전사로 살고 죽었던 에이미 카마이클의 정금같은 신앙과 삶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호기심 가득하고 적극적인 리더였다. 이와 함께 엄하면서도 경건한 가정의 분위기는, 어린 그녀에게 고결한 삶의 목표와 타협을 모르는 굳은 성품을 심어주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 중심의 왕좌에서 자아가 내려와 그분을 앉히는 것. 아무리 작은 죄라도 일절 타협하지 않는 것”을 거룩으로 정의하며 철저히 거룩을 추구하며, “하루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매시간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분과 그분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날마다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는 것, 환난 중에 평안을 잃지 않는 것,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 뜻을 보는 것, 날마다 순간마다 모든 쓴 뿌리와 원망과 악한 말을 버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케직 사경회가 에이미에게 준 영향은 그녀를 완전주의자로 보이게 할 만큼 큰 것이었다. 그토록 그녀는 순전하고 고결한 삶의 목표와 부르심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케직 안에 충만히 임재했던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녀는 선교지로 부르시는 피할 수 없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게 하는 소리라면 그것이 누구로부터 나온 말이든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든 거기에 대해 죽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자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사는 삶의 첫 발자국이자 평생을 살았던 제자도의 원리였다. 그녀는 바울처럼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부르신 그분의 부르심에 대해 말했고, 그들(특히 어머니와 영적인 아버지 윌쓴씨)은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에 어린 나귀를 풀어드렸던 사람처럼 그렇게 아쉽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주께 내어드렸다. 그녀를 내어드린 그들의 믿음은 다음의 문장에 잘 나타난다. “그분이 이제 너더러 내 반경 밖으로 가라 하시는데 내가 막을 수 있겠냐? 안된다. 안된다, 에이미. 그 분이 네 것이듯 너는 그분 것이다.”, “에미미는 예나 지금이나 내게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지만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분께 바치지 못할 만큼 귀하거나 아깝지 않습니다.”
애당초 선교의 로맨스 따위는 품지 않았으나, 그녀가 실제로 접한 선교지는 장밋빛 환상은커녕 처절하리만큼 슬프고 가슴 아프며,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현실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는 제자였다. 그녀는 수반되는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을 자기 권리를 모두 버려야 하는 제자도의 당연한 요건으로 여겼다.
그녀는 녹스느니 차라리 탈진하는 것이 낫다는 전사의 마음을 가진 이였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마다, 필요가 있는 곳마다 모임을 개설하여 부스러기라 하더라도 복음을 뿌려댔다. 그녀는 어디서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눈을 갖기를 소원했다. 복음 전도에 더 효과적이라는 미명으로 여러 프로그램들의 제안이 있었지만 그녀는 “백 명이 놀러오는 것보다 두 명이 진지하게 오는 것이 낫다. 진리를 희생하는 대가로 한 영혼을 살 수 없다.”는 믿음으로 그 눈을 흐리게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진리가 성공보다 귀했다. 그녀는 주 예수님 자신 외에 다른 것들을 좇게 하는 모든 일을 없애려했으며, 오직 갈보리의 그리스도와만 함께 살아갈 삶만을 추구했다. 따라서 그녀에게는 어느 누구의 조언도 사실상 필요치 않았다. 오직 그녀의 대장 예수님의 명령만이 필요했으며, 또한 거기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었다. 수정처럼 순결한 극도의 거룩함을 향한 소원은 그녀의 삶에 그대로 나타났다. 그녀는 그 거룩의 기준을 낮출만한 어떤 인간적인 방법도 거절했다. 다만 신실하게 그분 말씀을 전하고 불같고 방망이 같은 말씀 자체, 그분의 ‘소리’이길 원했다.
그녀는 또한 철저한 사실주의자였다. 오직 진실만이 그녀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녀의 대장은 진리의 하나님이셨기에, 그녀는 결코 덧칠할 수 없었다. 다만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할 따름이었다. 그녀에게는 패전도 값진 경험이었다. 패전은 전사들에게 보강이 필요한 필수 부분을 강화시키는 쓴 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재미도 낭만도 없는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복음 전도외에는 일체의 다른 것도 하지 않기를 원했던 그녀에게 한 꼬마 아이와의 만남은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사원 아이였던 프리나와의 섭리적인 만남은 미혼인 그녀로 엄마가 되게 했다. 비록 이 어머니 노릇이 그녀가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 일에 대해서도 대장이신 그분의 뜻에만 따랐다. 사랑의 마음에서 드려지는 순종만이 언제나 그분의 최종적 요구였다. 에이미는 “한 번 발에 못박히였던 분을 위하여” 자기 발도 묶여야만 했다. 얼른 보기에 비영적인 일이라도, 영광의 주께 올려드리면 모든 일이 거룩한 일이 됨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무엇이 크고 중요한 일이며 무엇이 작고 사소한 일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코 종의 소관이 아니었다. 종은 주인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성육신이 그러하듯이 전혀 모순되이 보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랬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 전사였다.
“그녀는 어미였다. 자식이 어미를 느낄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그녀는 그들에게 어미 노릇을 다했다. 그들의 일상 생활에 그녀는 자애롭고 강력한 존재였고, 사도 바울이 제자 디도에게 명하여 모든 늙은 여자들을 가르쳐 행하게 한 일-경건의 본을 보여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는 일-을 행한 “늙은 여자”였다.” 따라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님께로 가야만 하는 일들은 그녀에게 가장 마음 아픈 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페이지마다 깊이 배어 있는 처절한 죽음의 상처는 너무나 큰 것이었으며, 사랑하는 아이들의 죽음과 그에 따른 슬픔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이 일에도 끝내 결연히 오직 대장의 뜻에 그 자신과 아이들을 드렸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필요 없었다. 대장의 뜻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그녀는 이 모든 삭풍을 견뎌냈다. 이러한 일들 속에서 드려진 그녀의 기도시들은 그녀의 눈물을 통과한 순결한 사랑과 순종의 시들이다. 아가서의 구절처럼 그녀는 이 매서운 삭풍을 향해 이렇게 외쳐댈 수 있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 많고 아픈 마음이 너무 많고 눈물이 너무 많음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녀였다.
그녀는 또 다른 전사들을 원했다. 전사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이들이 필요했다. 명검의 칼날 같은 훈련되고 다듬어진 전사가 절실했다. 인간의 교육과 안수로 말미암은 헛 군인이 아니라, 못박히신 손의 확실한 안수를 받은 그분의 제자만이 그녀의 관심이었다. 전사에게 상처와 흉터는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장께서 손발과 옆구리에 큰 상처를 당했기에. 선교사 후보생들을 향한 그녀의 짧은 문장은 오늘날에도 강력하게 유효하다. “당신이 주님과 우리에게 십자가가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한 오지 마십시오.”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 본성에 철저히 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본성의 뜻을 가로질러 하나님의 길이 나있다. 그 길은 발길이 뜸한 길이다. 그러나 그 뜸한 발길들은 모두 다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참 제자들이 이 길을 주저 없이 갔다. 이 길은 제자들에게 죽을 기회를 주는 길이다. 그래서 발길이 뜸한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을 먼저 지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 길이다.
이와 같이 주의 일군으로 섬기고, 주의 전사로 싸우며, 주의 제자로 따랐던 그녀는 1951년, 84세의 나이에 그토록 사모하고 사모하던 그 아름다우신 주님 곁으로 갔다. 아름다운 그분을 뵙고, 사모하던 주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집에 거하여 주를 사랑하며 경배하는 것을 청했던 딸의 소원을 선하신 아버지께서 그제야 들으셨다.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고 했던 애굽 공주의 말대로, 하나님을 위해 아이들을 데려다가 젖을 먹인 순종의 대가로 그녀 역시 아버지께로부터 엄청난 상급을 받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상급 중 가장 큰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왕노릇 하며,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과 나누는 완전한 사랑의 연합의 즐거움이리라.
이제 그녀는 가고 없다. 그러나 그녀가 걸었던 그 길 위에 남긴 믿음의 발자취는 뚜렷하게 우리 눈앞에 있다. 그 발자취가 침묵으로 묵직하게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외치고 있다. ‘여기 그 길이 있다! 이 길을 갈 자 누구인가! 오, 참된 제자의 길[제자도]!’
이 거룩한 사람, 순결한 영혼, 진리대로 산 증인, 하나님의 원래적 인간, 탁월한 일군, 아이들의 엄마, 하나님의 거룩한 전사 의 삶과 죽음을 읽으며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그는 참으로 주의 자비하심이 필요한 사람이리라. 그녀가 드렸던 기도에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할 차례다. 그녀가 제시하고 있는 방향을 따라, 이제 우리가 -아니 나 자신이- 본성을 가로질러 난 하나님의 길에 발을 디딜 차례다.
오 주님!
우리를 주의 일군 삼으소서!
우리를 주의 전사 삼으소서!
우리를 주의 연료 삼으소서!
저자
유명한 세미나 인도자이며 라디오 교육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저서
순교의 기회
하나님께로의 반문
제자훈련
아름다운 굴복
역자 윤종석
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Golden Gate Baptist Theolgical Seminary에서 교육학(M.A.)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상담학(M.A.)을 공부했다.
전환점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를 만나면 우리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진다. 짐 엘리엇 같은 이는 그 자신이 바로 이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우리들 인생에도 이런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있다. 그는 유년시절의 선생님일 수도 있고, 존경하는 선배일 수도 있다. 때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사건이 우리의 방향을 바꿔놓기도 한다.
여기 커다란 이정표가 있다. 묵묵히 서 있으나 큰 글자가 그 몸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유일한 길이요 참된 문이신 그분과도 닮아서 그 몸에 온갖 상처가 나 있어서 겉보기에는 볼 품 없지만, 그 길을 결연하고 명확하게 우리 앞에 제시해주는 이정표 같은 사람, 방향 없이 살다가도 그를 만나면 번쩍 정신이 들어 너무도 선명하게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길을 먼저 지났기에 주저없이 지도해주는 사람, 제자가 가야할 길 곧 참된 제자도를 말하고 가르치고 그대로 살았던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본서는 바로 이와 같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전사로 살고 죽었던 에이미 카마이클의 정금같은 신앙과 삶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호기심 가득하고 적극적인 리더였다. 이와 함께 엄하면서도 경건한 가정의 분위기는, 어린 그녀에게 고결한 삶의 목표와 타협을 모르는 굳은 성품을 심어주었다. “그리스도를 닮는 것, 중심의 왕좌에서 자아가 내려와 그분을 앉히는 것. 아무리 작은 죄라도 일절 타협하지 않는 것”을 거룩으로 정의하며 철저히 거룩을 추구하며, “하루 종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매시간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분과 그분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날마다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는 것, 환난 중에 평안을 잃지 않는 것,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 뜻을 보는 것, 날마다 순간마다 모든 쓴 뿌리와 원망과 악한 말을 버리는 것”을 목표로 했던 케직 사경회가 에이미에게 준 영향은 그녀를 완전주의자로 보이게 할 만큼 큰 것이었다. 그토록 그녀는 순전하고 고결한 삶의 목표와 부르심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케직 안에 충만히 임재했던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녀는 선교지로 부르시는 피할 수 없는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부르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게 하는 소리라면 그것이 누구로부터 나온 말이든 아무리 듣기 좋은 말이든 거기에 대해 죽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자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사는 삶의 첫 발자국이자 평생을 살았던 제자도의 원리였다. 그녀는 바울처럼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부르신 그분의 부르심에 대해 말했고, 그들(특히 어머니와 영적인 아버지 윌쓴씨)은 주가 쓰시겠다는 말씀에 어린 나귀를 풀어드렸던 사람처럼 그렇게 아쉽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주께 내어드렸다. 그녀를 내어드린 그들의 믿음은 다음의 문장에 잘 나타난다. “그분이 이제 너더러 내 반경 밖으로 가라 하시는데 내가 막을 수 있겠냐? 안된다. 안된다, 에이미. 그 분이 네 것이듯 너는 그분 것이다.”, “에미미는 예나 지금이나 내게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존재지만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분께 바치지 못할 만큼 귀하거나 아깝지 않습니다.”
애당초 선교의 로맨스 따위는 품지 않았으나, 그녀가 실제로 접한 선교지는 장밋빛 환상은커녕 처절하리만큼 슬프고 가슴 아프며, 그리고 견디기 어려운 현실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는 제자였다. 그녀는 수반되는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을 자기 권리를 모두 버려야 하는 제자도의 당연한 요건으로 여겼다.
그녀는 녹스느니 차라리 탈진하는 것이 낫다는 전사의 마음을 가진 이였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있는 곳마다, 필요가 있는 곳마다 모임을 개설하여 부스러기라 하더라도 복음을 뿌려댔다. 그녀는 어디서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한 눈을 갖기를 소원했다. 복음 전도에 더 효과적이라는 미명으로 여러 프로그램들의 제안이 있었지만 그녀는 “백 명이 놀러오는 것보다 두 명이 진지하게 오는 것이 낫다. 진리를 희생하는 대가로 한 영혼을 살 수 없다.”는 믿음으로 그 눈을 흐리게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진리가 성공보다 귀했다. 그녀는 주 예수님 자신 외에 다른 것들을 좇게 하는 모든 일을 없애려했으며, 오직 갈보리의 그리스도와만 함께 살아갈 삶만을 추구했다. 따라서 그녀에게는 어느 누구의 조언도 사실상 필요치 않았다. 오직 그녀의 대장 예수님의 명령만이 필요했으며, 또한 거기에 순종하면 되는 것이었다. 수정처럼 순결한 극도의 거룩함을 향한 소원은 그녀의 삶에 그대로 나타났다. 그녀는 그 거룩의 기준을 낮출만한 어떤 인간적인 방법도 거절했다. 다만 신실하게 그분 말씀을 전하고 불같고 방망이 같은 말씀 자체, 그분의 ‘소리’이길 원했다.
그녀는 또한 철저한 사실주의자였다. 오직 진실만이 그녀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녀의 대장은 진리의 하나님이셨기에, 그녀는 결코 덧칠할 수 없었다. 다만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할 따름이었다. 그녀에게는 패전도 값진 경험이었다. 패전은 전사들에게 보강이 필요한 필수 부분을 강화시키는 쓴 약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재미도 낭만도 없는 진실을 알리고자 했다.
복음 전도외에는 일체의 다른 것도 하지 않기를 원했던 그녀에게 한 꼬마 아이와의 만남은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사원 아이였던 프리나와의 섭리적인 만남은 미혼인 그녀로 엄마가 되게 했다. 비록 이 어머니 노릇이 그녀가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이 일에 대해서도 대장이신 그분의 뜻에만 따랐다. 사랑의 마음에서 드려지는 순종만이 언제나 그분의 최종적 요구였다. 에이미는 “한 번 발에 못박히였던 분을 위하여” 자기 발도 묶여야만 했다. 얼른 보기에 비영적인 일이라도, 영광의 주께 올려드리면 모든 일이 거룩한 일이 됨을 그녀는 알게 되었다. 무엇이 크고 중요한 일이며 무엇이 작고 사소한 일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코 종의 소관이 아니었다. 종은 주인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그녀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성육신이 그러하듯이 전혀 모순되이 보이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랬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 전사였다.
“그녀는 어미였다. 자식이 어미를 느낄 수 있는 모든 면에서 -신체적 정서적 영적으로- 그녀는 그들에게 어미 노릇을 다했다. 그들의 일상 생활에 그녀는 자애롭고 강력한 존재였고, 사도 바울이 제자 디도에게 명하여 모든 늙은 여자들을 가르쳐 행하게 한 일-경건의 본을 보여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는 일-을 행한 “늙은 여자”였다.” 따라서 그 사랑하는 자녀들이 주님께로 가야만 하는 일들은 그녀에게 가장 마음 아픈 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페이지마다 깊이 배어 있는 처절한 죽음의 상처는 너무나 큰 것이었으며, 사랑하는 아이들의 죽음과 그에 따른 슬픔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이 일에도 끝내 결연히 오직 대장의 뜻에 그 자신과 아이들을 드렸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필요 없었다. 대장의 뜻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그녀는 이 모든 삭풍을 견뎌냈다. 이러한 일들 속에서 드려진 그녀의 기도시들은 그녀의 눈물을 통과한 순결한 사랑과 순종의 시들이다. 아가서의 구절처럼 그녀는 이 매서운 삭풍을 향해 이렇게 외쳐댈 수 있었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 많고 아픈 마음이 너무 많고 눈물이 너무 많음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녀였다.
그녀는 또 다른 전사들을 원했다. 전사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이들이 필요했다. 명검의 칼날 같은 훈련되고 다듬어진 전사가 절실했다. 인간의 교육과 안수로 말미암은 헛 군인이 아니라, 못박히신 손의 확실한 안수를 받은 그분의 제자만이 그녀의 관심이었다. 전사에게 상처와 흉터는 당연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장께서 손발과 옆구리에 큰 상처를 당했기에. 선교사 후보생들을 향한 그녀의 짧은 문장은 오늘날에도 강력하게 유효하다. “당신이 주님과 우리에게 십자가가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한 오지 마십시오.”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 본성에 철저히 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본성의 뜻을 가로질러 하나님의 길이 나있다. 그 길은 발길이 뜸한 길이다. 그러나 그 뜸한 발길들은 모두 다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고, 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참 제자들이 이 길을 주저 없이 갔다. 이 길은 제자들에게 죽을 기회를 주는 길이다. 그래서 발길이 뜸한 길이다. 그러나 이 길을 먼저 지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 길이다.
이와 같이 주의 일군으로 섬기고, 주의 전사로 싸우며, 주의 제자로 따랐던 그녀는 1951년, 84세의 나이에 그토록 사모하고 사모하던 그 아름다우신 주님 곁으로 갔다. 아름다운 그분을 뵙고, 사모하던 주의 음성을 들으며 그분의 집에 거하여 주를 사랑하며 경배하는 것을 청했던 딸의 소원을 선하신 아버지께서 그제야 들으셨다.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고 했던 애굽 공주의 말대로, 하나님을 위해 아이들을 데려다가 젖을 먹인 순종의 대가로 그녀 역시 아버지께로부터 엄청난 상급을 받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상급 중 가장 큰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왕노릇 하며,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분과 나누는 완전한 사랑의 연합의 즐거움이리라.
이제 그녀는 가고 없다. 그러나 그녀가 걸었던 그 길 위에 남긴 믿음의 발자취는 뚜렷하게 우리 눈앞에 있다. 그 발자취가 침묵으로 묵직하게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외치고 있다. ‘여기 그 길이 있다! 이 길을 갈 자 누구인가! 오, 참된 제자의 길[제자도]!’
이 거룩한 사람, 순결한 영혼, 진리대로 산 증인, 하나님의 원래적 인간, 탁월한 일군, 아이들의 엄마, 하나님의 거룩한 전사 의 삶과 죽음을 읽으며 아무런 감동이 없다면, 그는 참으로 주의 자비하심이 필요한 사람이리라. 그녀가 드렸던 기도에 이제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할 차례다. 그녀가 제시하고 있는 방향을 따라, 이제 우리가 -아니 나 자신이- 본성을 가로질러 난 하나님의 길에 발을 디딜 차례다.
오 주님!
우리를 주의 일군 삼으소서!
우리를 주의 전사 삼으소서!
우리를 주의 연료 삼으소서!
저자
유명한 세미나 인도자이며 라디오 교육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저서
순교의 기회
하나님께로의 반문
제자훈련
아름다운 굴복
역자 윤종석
서강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Golden Gate Baptist Theolgical Seminary에서 교육학(M.A.)을,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상담학(M.A.)을 공부했다.
- eliza.gif (0B) (5)
187개(3/10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