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양철학, 그 유구하고 방대함을 한 맥락으로 잡다
“철학”하면 일반적으로 서양철학을 의미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철학은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으로 나뉜다. 그럼에도 철학하면 서양철학을 의미하는 것은 서양철학만이 철학이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은 서양철학에 근거해서 개념화된 것이다. 동양철학도 매우 심오하다. 유가, 도가, 불가(종교인지?) 그리고 한국철학도 매우 심오하다. 천재들의 사고 구조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찾는 것이 불가능한 천재들이 자기 사고 구조를 또 창출하기 때문에 더 혼란하다. 천재들이 사고 구조를 정립해주면 좋은데, 그런 천재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이 인생의 아름다움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의 “축의 시대(Axial Age)” 개념을 준용한다. 그러나 그 뒤로도 유사한 현상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14세기 르네상스이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대격변은 18세기 칸트와 20세기 세계 전쟁이다. 이러한 대격변은 과거와 단절시킨 혁명이어서 현재에서 과거를 탐구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과거는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문제는 과거를 바르게 정립하지 못하면 미래를 정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의 다름은 과거에 대한 규정에서 시작한다.
안상헌의 <미치게 친절한 철학>은 소개글처럼 한권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가독성을 구성시켰다. 철학의 시작에서 현대철학까지 한 권으로 정립한 저술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쁜 일이다. 과거에 <서양철학사>를 구입하면서 사는 것으로 지적 만족감을 느껴야 했다. 지금은 깊은 서재에 들어가서 보이지도 않는다.
<미치게 친절한 철학>을 구입한 것은 “개념과 맥락으로 읽는 철학 이야기”라는 표지 문구 때문이었다. 좋은 표지 문구가 책 판매에 좋은 도움이 되기는 했다. 그런데 이 저술은 개념보다는 맥락을 잡는데 유용하겠다고 판단된다. 개념을 위해서 이 저술을 구입했는데, 개념보다는 맥락을 잡기 유용한 저술로 여겼다. 그리고 가독성이 좋은 문장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읽기에 무리가 없다. 철학도서를 끝까지 읽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는데, 그 어려운 것을 해낸 것이다.
<미치게 친절한 철학>의 구성은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에서, 근, 현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개념 파악은 고대와 중세 이해를 벗어나면 불가능하다. 철학 선생들이 고대와 중세 철학을 연구해주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우리사회의 지식수준이 상당히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20년 전 보조학문으로 철학을 공부했고, 지금도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개념을 파악하지 못해서 난황을 겪고 있는데, 그 개념을 명료하게 세워줄 연구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거의 없다. 안상헌의 도전적인 저술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보다 좀 더 좋은 저술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안상헌의 탐구는 “데이터”가 아닌 “맥락”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2 셋트를 소장하고 있고, 자녀들에게 모두 사주었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학자들의 글을 보존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학자들의 글은 보존되어 있으니 우리 학자들의 개념과 맥락도 출판한다면 좋겠다. <미치게 친절한 한국철학>, <미치게 친절한 동양철학>까지 구성한다면 좋은 지식총서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