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칼빈의 초상은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
칼빈의 초상은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
칼빈인가? 칼뱅인가? 우리 표준어는 칼뱅인데, 칼빈이란 어휘가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식 용어가 한국 학문계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부르스 고든의 CALVIN(2009년)의 번역자 이재근은 칼뱅(IVP, 2018년)으로 번역했다. 이 저술은 칼뱅 탄생 500주년을 기념한 고든의 저술이다. 2009년 한국 교회에서도 다양한 칼뱅 전기들이 번역되어 출판되기도 했다. 2009년 한국 교회에 잘 소개되었던 연구자는 헤르만 셀더르하위스의 <칼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 칼뱅 출생 510주년 기념판으로 브루스 고든의 <칼뱅>이다.
칼뱅은 기독교 역사에서 생애와 사후에 가장 많은 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칼뱅에 대한 의심, 폄하, 폄훼를 시도하는 연구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적들이 있었음에도 칼뱅은 여전히 그 위치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그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작은 지역이었던 제네바는 지금은 인류 역사의 중심을 갖고 있다. 그 초석이 파렐과 칼뱅에게 있다. 그 질곡의 역사에 있던 한 가냘픈 프랑스 청년의 일대기, 그를 사용하신 하나님의 손길, 역사의 신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칼뱅의 초상이 계속될 수 있는 것은 그의 방대한 글 자료(서신서) 때문이다. 칼뱅이 교류한 서신의 양은 서신서를 읽으면 다양한 이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건택 교수는 1530년부터 1538년까지 <칼뱅 서간집 1>(소망플러스, 2014)을 일차로 묶어 출판했다. 베자가 샤를르 드 종비예르(Charles de Jonviller)의 보조를 받아 칼뱅 사후 11년만인 1575년에 칼뱅의 서신서를 라틴어로 출판한 뒤로 여러 연구자들이 서신모음집을 출판했다. 브루스 고든이 사용한 자료는 서간집에서 자료를 밝히고 있기 때문에, 칼뱅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브루스 고든은 칼뱅 전기를 매우 섬세하게 전개했다. 그리고 칼뱅의 사역에 맞추면서도 칼뱅의 감정선을 살려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고든은 칼뱅의 탁월성을 말하면서도, 그의 기억의 오류들을 제시하며 인간미를 드러냈다. 그리고 1541년부터 심한 질병에 시달리면서 영혼의 평안을 소유한 존재로 제시하며, 칼뱅의 사역에 다양한 감정선을 보여주었다.
칼뱅이 1541년 제네바에 복귀한 과정, 칼뱅을 초청하는 세력들이 대적자로 돌아서는 과정들은 21세기 대한민국 교회에서도 발생하는 전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칼뱅은 그러한 갈등 속에서 자기 사역을 정진했다. 목사회와 콩시스투아르(consistoire, 당회) 체계로 제네바 교회를 말씀과 질서 위에 세웠다. 그리고 스위스 칸톤의 사역자, 유럽의 사역자들과 갈등과 동역을 하면서 사역이 진행하는 모습을 서신 자료를 밝히면서 제시했다. 그래서 글의 내용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브루스 고든이 묘사한 칼뱅의 모습은 “성경을 해석하는 인물”로 제시하고 있다. 칼뱅의 신학 유산이 대한민국 교회에 도착했다. 우리의 많은 연구자들이 칼뱅 전기를 집필했지만, 세계적인 칼뱅 전기가 우리 교회에서 출판되어야 한다. 그 수준이 한국 교회의 신학 수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