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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독교 교리와 정의가 만나서 춤출 때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30 22:04
기독교 교리와 정의가 만나서 춤출 때 정의란 무엇인가/팀 켈러/최종훈/두란노/김상일 편집위원

 

팀 켈러의 정의란 무엇인가(Generous Justice)는 제가 이제껏 서평했던 팀 켈러의 책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저에게 영감을 많이 준 책입니다. 특별히 현재 공부하고 있는 박사 과정의 공부와 관련해서, 또 앞으로 제가 추구해야 할 공부와 관련해서 말입니다. 이 책은 여러가지 면에서 복음주의 진영이 복음 전파와 사회 정의의 관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오래된 이분법적 편견에 쐐기를 박고, 복음 안에 내재하는 정의에 관한 깊은 관심을 마치 말라 비틀어진 땅을 해갈시키는 지하수를 퍼 올리듯이 퍼냅니다. 팀 켈러가 그 과정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얕고 피상적인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식의 한국적 복음 전파에 관한 선입견, 또 복음 전도와 사회 정의를 모두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유기적 통일성을 여전히 보지 못하는 미국의 복음주의가 가진 선입견적 사고 습관 모두를 깨뜨려 버릴 뿐 아니라, 복음이 가진 전복적이고도 회복적인 비전에 대한 재주창을 이루어낼 만한 토대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냅니다. 이 서평에서 저는 특별히 저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의 서문에 나오는 두가지 에피소드, 하나는 켈러 자신에게 자신이 속한 미국 백인 문화의 인종 차별적 유전자를 보게 만들어 주었던, 그리고 그를 통해서 자기 성찰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켈러가 목회자로서 일하면서 복음을 깊이 경험한 인종차별주의자가 어떻게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에서 돌아서는지를 보면서 깨닫게 된 것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닿고자 하는 종착역은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칭의 교리가 가진 잠재성과 함께 그 교리의 왜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온전한 복음 선포를 회복하기 위해서 칭의 교리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 나름의 생각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 백인 기독교와 인종 차별 주의-흑인 친구 엘워드 엘리스(Elward Ellis)

 

첫번째 이야기는 켈러의 신학교 시절에 일어났던 에피소드에 관한 것입니다. 고든콘웰 신학교 시절, 켈러는 미래 그의 와이프가 될 캐시 크리스티(Kathy Kristy)와 함께 흑인 친구 엘워드 엘리스를 만나게 됩니다. 엘리스는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켈러 부부에게(물론 그 당시에는 부부가 아니었겠지요) 충격적인 충고를 해주게 되는데, 말인즉슨, 백인들은 거의 모두 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앞뒤를 가리지 않고 훅 들어오는 비판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 졌지만, 켈러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엘리스에게 그 이유를 묻습니다. 엘리스의 대답은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너희들이 그럴 의도가 없다는 것도 알고, 그럴 마음은 더더군다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 엘리스가 말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인종차별주의자야. 어쩔 수 없어.” “우리 흑인들이 어떤 일을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할 때, 너희들은 , 그게 너희의 문화니까라고 얘기하면서도, 백인들이 어떤 일을 백인들만의 방식으로 할 때에는 그게 그 일을 처리하는 올바른 방식이야라고 암묵적으로 말하니까. 너희들은 너희들이 가진 것이 하나의 문화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지. 너희들의 믿음이나 관습 중 아주 많은 부분이 그저 문화적일 뿐이라는 것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잖아.” 이 대화를 통해서 켈러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엘리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책을 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켈러는 이 대화를 통해서 일종의 문화적 자기 성찰을 하게 된 것이지요. 켈러가 속해 있던 70년대의 미국 복음주의 문화가 이런 면에 대해서 스스로 볼 수 있을 만한 자기 성찰 능력이 없었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현실은 여전히 마찬가지 아닐까 합니다. 복음이 우리 삶을 뒤엎을 정도로 깊이 파고들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을 다시 성찰하게 하고, 재검토하게 하며, 그 속에서 복음이 제시하는 유기적인 전복적 비전을 회복하는 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집니다.

 

두번째 에피소드: 칭의의 복음과 그 안에 내재된 정의에의 비전-이즐리 쉘튼의 은혜

 

켈러는 1989년 뉴욕 맨하탄에서 지금의 리디머 교회를 개척하기 전, 버지니아의 농촌 마을인 호프웰(Hopewell)에서 오랜 기간 목회를 했습니다. 여기서 켈러는 이즐리 쉘튼(Easley Shelton)이라는 한 남성의 변화를 통해서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체험했느냐와 그 사람의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 정의를 위한 마음 사이에는 직접적 상관 관계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물론 켈러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고, 켈러는 그저 고전적인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기만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쉘튼의 변화는 켈러에게도 크나큰 선물이었던 셈이지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변화가 복음을 깊이 체험한 사람에게 나타났던 것을 직접 봤으니까요. 요는 이렇습니다. 쉘튼이 복음을 듣게 되자, 그는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독교 복음에 대한 도덕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났습니다. 더 이상 자신이 행하는 선행이나 열심으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누가 하나님께 얼마나 사랑받느냐를 놓고 경쟁하는 잣대를 들이밀게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은 그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으니까요. 이것만 해도 놀라운 일일텐데(여러분이 실제로 목회자로서 사역하는 교회에서 도덕주의적이고 바리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이런 변화를 겪게 된 것을 실제로 보았다고 상상해 보시면 좀 더 이해가 가실 겁니다!), 켈러는 더욱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됩니다. “사실 저는 살면서 지금껏 계속 인종차별주의자였습니다.” 이런 예기치 않은 고백에 켈러는 자신이 소스라치게 놀랐음을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고백을 쉘튼이 했던 때는 켈러가 아직 복음이 가진 사회정의에의 비전에 대해서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있던 때였기 때문이지요. 결국 쉘튼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가진 사회 정의를 향한 폭발적 비전을 그 은혜를 깊이 체험함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성령께서 도우심을 주셨던 것이었겠지요. 개인적으로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켈러가 이러한 은혜의 체험을 미학적인 것, 즉 하나님의 은혜의 아름다우심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박사 과정 지원시에 신학적 미학을 깊이 공부해보고 싶다는 연구 지원서를 써서 합격했고,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해서 계속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관심사는 사실 켈러에게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켈러를 넘어서서 현대의 신학적 미학을 주창하다시피한 카톨릭 신학자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에게까지 넘어갔지만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의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하게 될 때, 그러한 체험은 저절로 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갈망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켈러가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는 중요한 논지 중에 하나이거든요.

 

자 그러면 이제 켈러가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칭의 교리가 어떻게 사회 정의에의 추구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에는 과연 칭의 교리가 그렇다면 왜 칭의 교리가 이제껏 보수나 진보 진영 양쪽에서 거의 버려지다시피 해왔던 것인지(보수 진영에서는 칭의 교리를 여전히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이지만 그 깊은 함의를 전혀 보지 못하고 보수적 아이콘으로만 활용하는 식으로, 그리고 진보 진영에서는 그 교리가 낡아빠진 것이라고 생각해서 거의 폐기처분하는 식으로)에 대해서 약간 생각해 보면서 이 서평을 마치려고 합니다.

 

칭의 복음과 사회 정의? 칭의 복음=사회 정의?

 

앞서 말했다시피 켈러는 칭의 교리가 대부분의 개신교 진영에서 거의 버림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보수나 진보 진영 양쪽에서 말이죠. 보수 진영은 이런 주장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보수 진영에서 칭의 교리가 하는 역할이 그 온전한 함의를 제대로 보는 쪽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고, 그저 개인 구원적인 차원에서만 이해되고 있기에, 켈러는 보수 진영에서도 칭의 교리는 진보 진영에서와 마찬가지로 버림 받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면서 켈러는 복음주의자이자 예일의 신학자인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가 도시 사역자 마크 고닉(Mark Gornik)과의 대화를 통해서 받았던 충격을 인용합니다. 고닉은 볼프와의 대화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칭의 교리에는 폐허가 된 도시 빈곤 지역을 치유할 수 있는, 이제까지 거의 활용되지 않은 자원이 잠재하고 있습니다.” 고닉은 볼티모어의 빈민 지역인 샌드타운(Sandtown)에서 이제껏 거의 10년간 사역해 오면서 칭의 교리가 어떻게 그런 치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보게 된 것이지요. 켈러가 인용하는 볼프의 말을 빌리겠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심지어 가난이나 폭력, 혹은 절망같은 문제들보다 덜 심각한 사회적 병리 현상들을 치유하는 데 있어서도 칭의 교리를 일반적으로 쓸모 없는 것, 혹은 사역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지요.” 켈러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다른 이들(주로 보수 진영)은 칭의 교리를 여전히 믿는 듯 하지만, 심지어 강력하게 방어하지만, 볼프는 칭의 교리를 고닉처럼 도시 사역에 적용시키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고닉이 거기에 대해서 밝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이 무직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돈도 없고, 사회에서 거의 격리되다시피한 상황에서 살면서, 가난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피부색은 잘못된 색깔이고, 이런 상황이 바뀔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당신은 찾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사는 세상은 성취와 노력으로 인정받는 세상입니다. 당신은 그 사회가 최고선으로 여기는 것을 TV 스크린을 통해서 봅니다. 그리고 수천가지 방식으로 사회는 당신에게 매일 매일 당신은 아무 가치도 없으며, 그 까닭은 당신이 이제껏 이뤄낸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실패자이며, 당신 스스로도 계속해서 당신이 실패자로 남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당신이 이뤄내지 못한 것을 내일 이뤄낼 가능성은 당신에게는 전혀 없기 때문이죠. 당신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성은 산산이 부서졌고, 당신의 영혼은 절망의 어둠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하지만 복음은 당신이 그러한 외적인 힘으로 규정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당신에게 당신이 가치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복음은 당신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무한하며, 당신이 이제껏 성취한 것이나 실패한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복음이 단지 선포되는 차원을 넘어서서 한 공동체 안에서 체화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전적인 은혜를 통해서 존재의 정당성을 얻어낸 사람들은, 성취를 통해서 존재를 정당화하려고 하는 사회 속에서, 정당성을 얻어내는데 실패한 사람들에게 은혜로 그들의 존재의 정당성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의 은혜입니다. 죽은 교리라고요! 천만에요!

 

켈러가 말하는 논리, 볼프가 말하는 논리, 고닉이 말하는 논리는 모두 명확합니다. 칭의 교리가 제대로 선포된다면, 그래서 이즐리 쉘톤 같은 사람들이 도시 곳곳에서 생겨나기만 한다면, 그러면 그들이 속한 각 도시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복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빌론 유수의 처절함 속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29: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켈러가 꿈꾸는, 고닉이 꿈꾸는, 그리고 볼프가 꿈꾸는 칭의 교리를 통한 도시 갱신의 비전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은혜로만 얻는 구원이라는 칭의 교리가 핵심적으로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이 선포된다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이 교회에 나오게 된다는 차원을 언제나 넘어섭니다. 문제는 켈러가 지적하듯이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이 그런 사실을 얼마나 보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들이 보는 만큼, 그리고 그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만큼, 이해하는 만큼, 체화하는 만큼 성도들도 복음을 보고, 이해하고, 체화하게 될 확률이 크니까요. 물론 이즐리 쉘톤 같은 예외적인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칭의 교리는 그렇게 버림을 받게 된 것일까요?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이 가르침이 가진 잠재적인 폭발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왜 교회는 이 교리를 뒷간에 처박아 놓게 된 것일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려고 합니다.

 

칭의 교리가 버림 받게 된 역사에 관한 소고

 

켈러는 이 책의 서문에서 짧게 칭의 교리가 어떻게 진보 진영에서(적어도 미국 안에서는) 버림 받게 되었는지, 또 동일하게 어떻게 보수 진영에서도 버림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종의 교리사적 진술을 짧게 합니다. 켈러는 미국 사회 복음 운동의 주창자 중 한 명인 월터 라우셴부쉬(Walter Rauschenbusch)에서 시작합니다. 독일 출신의 침례교 목사였던 라우셴부쉬는 1880년대 뉴욕시에서 사역하면서 전통적인 복음 전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만 집중하던 현실에 절망하고, “몸과 영혼양쪽 모두를 보살피는 사역을 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적 변화가 가지는 함의 또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라우셴부쉬는 전통적인 교리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성경의 권위와 속죄 교리를 거부하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런 장면을 지켜보게 된 보수적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 건전한 교리와 영적 활력을 잃는 길로 인도하게 된다는 인상을 받게 되었다고 켈러는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미 켈러가 보여주었듯이, 그것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칭의 교리를 비롯한 전통적 기독교 교리들이 가진 함의가 각각의 상황 속에서 제대로 탐구되거나 해석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켈러가 라우셴부쉬에 대한 응답으로 내놓는 인물은(의심의 여지없이!) 조나단 에드워즈, 특별히 그의 설교 가난한 자들을 사랑해야 할 의무”(The Duty of Charity to the Poor)입니다. 이 부분도 굉장히 흥미로운데, 이 서평에서 자세히 얘기하지는 않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직접 일독해 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켈러가 자세히 다루지 않은 부분, 아니 목회자로서의 그의 상황상 자세히 다룰 수 없었던 부분입니다. 바로 칭의 교리가 역사적으로 어떤 경로를 거쳐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게 되었는지에 관한 부분입니다. 켈러는 지면 관계상 겨우 한두 페이지에 걸쳐서 이 얘기를 하고는 접습니다만, 사실 칭의 교리가 가진 복잡한 역사는 그 정도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Iustitia Dei가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칭의 교리가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주는 근본적 동인에 관해서 역사적이고 실천 신학적인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바로 그 부분이 켈러와 같은 목회자가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어려운 부분이면서도 교회의 삶과 신학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에 관한 연구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이지만, 현재 교회와 신자들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방식을 보면 개인적으로 꼭 이루어져야 할 연구라는 급박함이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켈러와 같은 목회자가 아주 귀합니다. 그의 비전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부분들을 채워주기 위해서 저처럼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학자/목회자의 소명적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학자-목회자 소명은 같이 가면 갈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에 때로는 학자인 사람이 목회자인 사람이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또 역으로 목회자인 사람이 학자인 사람이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학자-목회자뿐만 아니라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일 겁니다. 우리의 존재를 우리가 이뤄낸 성취와는 상관없이 정당하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되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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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세상을 향하여: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스티븐 니콜스/김광남/아바서원/조정의 편집인


에릭 메택시스는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의 부제를 “목사, 순교자, 예언자, 스파이”라고 지었다. 독일의 악명 높은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 교회 성도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직접 본으로 보이고 글로 써서 강력하게 촉구했던 본회퍼에게 ‘스파이’라는 오명(?)이 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발키리 작전으로 알려진 히틀러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본회퍼는 그 일에 가담한 이름들 사이에 언급되어 투옥되었고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실제로 본회퍼가 스파이 활동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파이는 그의 가...
보내심을 받은 자들 보내심을 받은 자들
열두 제자 이야기
이진경/kmc/채천석 발행인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열두 제자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본서는 사도들의 삶에 대해 저자가 그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독자들의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소개하는 각 장의 전반부는 서신과 회고록 형식을 빌려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고, 후반부는 제자들의 삶에서 특징적인 한두 가지 사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저자가 가진 학문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그들의 삶을 추적한...
교회와 세상을 세우는 은사 교회와 세상을 세우는 은사
은사, 하나님의 선물
성민규/도서출판 다함/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앎과 삶의 괴리를 곳곳에서 발견한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실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회 또한 복잡다단하다. 잘 정리된 교리가 시시각각 변하는 신앙생활과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혼란함은 다양한 은사의 무분별한 사용이다.은사의 사용은 교단과 신학, 전통과 거의 무관하다. 특히 지도자의 개인 성향과 목회 철학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다. 가령 보수적 신학을 추구하는 교단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강력한 성령의 은사를 기대하는 교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낮...
목회자보다 무서운 성도들의 성경 씹어먹기 목회자보다 무서운 성도들의 성경 씹어먹기
읽다 살다
권일한/남기업/송인수/정병오/정한옥/잉클링즈/문양호 편집위원


직장생활을 십년가까이 하다가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 때 청년부 때 같이 있던 후배 하나를 만나게 되었었다. 그때 그 후배는 내게 형만큼은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그것은 내가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로서 언제나 신앙인의 삶을 지켜 살아가는 본을 보여주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목회자의 길을 갈 생각은 내게 없었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양육하고 말씀 가르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부여하고 있고 짬짬이 양육하는 이들을 케어하고 있었고 이미 반(半)목...
용서가 실종된 시대, 용서를 배우려면 용서가 실종된 시대, 용서를 배우려면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팀 켈러/윤종석/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이 세대는 정말 용서를 배워야 한다. 한때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겨진 용서는 이제 희귀하고 드물기만 한 게 아니라 그만큼 미덕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지금 뭔가 꼬투리 잡힐 만한 일이 있으면 무섭게 달려들어 보복과 응징할 권리를 내세우며 앙갚음하는 게 당연한 시대, 그럴 때 오히려 쏟아지는 대중의 환호와 지지와 칭송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 풍조를 따르던 자들이 은혜로 구원받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할 때, 용서는 그들의 새로운 본성이 되어야 마땅하나, 실상은 새로운 본성과 싸워 미움과 분노와 비방과 ...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좇은 바빙크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좇은 바빙크
바빙크 비평적 전기
제임스 에글린턴/박재은/다함/조정의 편집인


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신학의 연구대상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고대문서, 그것도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된 외래 문서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영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고, 단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 결코 변하지 않는 참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고 따르게 한다. 모든 학문은 유행을 타고 패러다임을 바꿔가며 ‘새 관점’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 신학은 그렇지 않다. 신학은 성경이 의도한 의미,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단 한 가지 의미를 찾고 거기...
성경이해를 좀더 깊이있게 나아가도록 돕는 책 성경이해를 좀더 깊이있게 나아가도록 돕는 책
구약성경, 책별로 만나다
양진일/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성경통독을 그래도 꽤 일찍 시작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이후로 꾸준하게 읽었었다. 특히 청소년 시절에는 세로로 인쇄된 성경전서를 노란색 형광볼펜을 작은 플라스틱 자를 사용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들을 밑줄을 치며 읽었었다.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너무 많아 성경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고 여러 번 읽어 성경이 꽤 부풀어 오르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끊긴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작은 양이라도 매일 읽으려고 노력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당시의 개역판만이 아니라 다양한 한글번역을...
요한계시록, 좀 더 이해하고 소화해서 요한계시록, 좀 더 이해하고 소화해서
요한계시록 상권과 하권
김상훈/감은사/고경태 편집위원


<감은사> 신학전문 출판사이다. "감은사는 신구약성서 및 초기기독교, 성서 언어 관련 도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입니다." <감은사>에서 신현우 박사를 책임편집자로 신약성경주석시리즈(KECNT)를 진행하고 있다.  ■ 시리즈 소개 국제적 연구 업적을 내기 시작한 한국의 탁월한 차세대 신학자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적인 문법적-역사적 해석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여 우리 시대의 교회와 목회 현장에 친절하게 전달하는 주석 이 시리즈는 탁월성, 정통성, 현장성을 함께 추구하는 성경 각 권...
생생한 그리스도의 고난 묵상집 생생한 그리스도의 고난 묵상집
그리스도를 따라: 21일 고난 묵상집
박상민/토브북스/조정의 편집인


교회력으로 사순절이 2월 22일 수요일에 시작된다(4월 6일에 마친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기 위해 가톨릭과 다른 방식으로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다가올 부활절을 기대하며 묵상과 기도를 통해 회개와 소망을 갖는 시간으로 삼는다. 어떤 사람은 교회력을 너무 중시하는 것을 형식주의와 율법주의로 보고 기피하는 한편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예배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리스도인이 언제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
설교, 끝까지 인내하면 반드시 열매 맺는다 설교, 끝까지 인내하면 반드시 열매 맺는다
설교, 인내로 걷는 길: 적대감, 무관심, 냉소를 이기는 설교하기
브라이언 크로프트, 제임스 캐럴/김진선/디모데/조정의 편집인


설교자는 읽어야 할 책이 정말 많다. 책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자기에게 맡겨진 설교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적어도 연구하고 있는 본문과 관련된 자료를 읽어야 한다. 많은 양의 주석과 사전, 지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화적, 역사적 자료들. 보통 설교자는 설교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한다. 엄밀히 말해 가르치는 것도 사람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세워주기 위한 은사다(모든 은사는 다른 지체를 섬기기 위해 성령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때 필요한 지혜와 도움을 주는 책을 참고할 필...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 "하나님만 바라라"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 "하나님만 바라라"
하나님을 갈망하다
A. W. 토저/이용복/규장/조정의 편집인


<하나님을 갈망하다>는 규장에서 출간한 A. W. 토저의 마이티 시리즈(Mighty Series) 33번째 작품으로, <예배인가, 쇼인가!>를 시작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다>까지 총 33권의 책을 통해 토저가 외쳤던 뜨겁고 강력한(mighty) 메시지를 이 시대 말씀과 성령으로 개혁되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한다. 영문판을 편집한 제임스 스나이더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을 갈망하다>는 무명이었던 토저를 알려지게 하고,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드러나게 만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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