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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예수 이야기의 능력,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의 예수 이야기 이해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22 22:56
예수 이야기의 능력,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의 예수 이야기 이해 Jesus and Justice /Peter Goodwin Heltzel /Yale University Press/김상일 편집위원

예수 이야기의 능력, 그리고 미국 복음주의의 예수 이야기 이해(the Power of Jesus Narrative, and the Appropriation of Jesus Narrative in American Evangelicalism)피터 헬첼(Peter Heltzel)의 예수와 정의(Jesus and Justice)

 

예수 이야기는 매력적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예수 이야기에는 매력을 많이 느끼지요. 좀 더 넓게 보자면, 기독교 신학은 성경 전체를 모두 예수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예수 이야기에 침잠되어 살아가는 것이 결국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왜일까요? 이 서평에서 그 얘기도 해보겠습니다.) 각설하고, 우리는 모두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는 문화에도 이야기가 있지요.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문화에 존재하는 까닭은 그 이야기들이 그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설득력을 가진다는 말은 우리가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의 이야기의 조각들을 문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틀을 통해서 통합적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또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냄으로써 문화 안에 존재하는 이야기 틀을 조금씩 바꿔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는 그게 우리의 이야기든, 문화 안에 있는 이야기든, 현실의 특정한 면에 초점을 맞춘 재구성이며, 그런 특성상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지요. 그런 까닭에 이야기는 우리가 특정한 때에 현실의 어떤 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구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의 심리학자 댄 맥아담스(Dan McAdams)는 우리가 살아내는 이야기들(The Stories We Live By)이라는 책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게 되고, 마침내 우리의 일부가 되어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써내려 갑니다. 맥아담스에 의하면, 이야기의 기본적 구성단위는 우리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이미지들과 심상들입니다. 우리를 자극하고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이미지들과 심상들은 그런 이미지들과 심상들의 확장된 단위인 특정한 메시지 속에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TV나 잡지, 혹은 온라인 SNS에 뜨는 광고들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이런 광고들에 등장하는 이미지나 심상들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이미지들과 심상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보면, 우리는 그런 이미지들과 심상들 이변에 깔린 메시지를 매력적인 것으로, 즉 우리가 따라야 할 메시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무의식적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런 메시지들은 항상 가장 큰 단위인 어떤 이야기라는 맥락 속에서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받아들인 이미지들과 심상들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하고, 더 나아가서 특정한 이야기를 우리 삶의 이야기로 이해하도록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겁니다. 이런 이야기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능력에 관해서, 그리고 그런 능력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이끄는 목적지에 대해서 제임스 스미스(James Smith)가 그의 최근작인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Desiring the Kingdom)에서 쇼핑몰의 비유를 통해서 간결하고도 설득력 있게 잘 설명한 것 같아서 여기에 인용합니다.

 

쇼핑몰은 그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짧은 글이나 교훈적인 강의를 통해서 소통하는 대신, 행복한 삶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서, 우리가 모방하고 싶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3차원 아이콘을 통해서 전달합니다.

 

행복한 삶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된다는 말은 그 안에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있을 뿐 아니라, 그 메시지가 특정한 이야기라는 맥락 속에서 전달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제품 광고에는 항상 행복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우리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좋은 직업에, 가족들은 모두 건강하며, 가족들의 관계 또한 너무 좋은, 그런 식의 이야기 말입니다. 우리가 설득되는 이야기들이고, 우리가 가치 있게 보는 삶의 이야기를 꿈꾸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각 이미지들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런 광고들이 보여주는 삶을 꿈꾸면서 살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해 갑니다. 우리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예수 이야기가 우리의 삶에 작용하는 방식도 똑같습니다. 예수 이야기가 성경에 실린 목적은 예수 이야기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이야기는 예수 이야기와 다른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들(예를 들면 쇼핑몰이 들려주는 이야기)과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이야기들은, 특별히 궁극적인 삶의 본질과 목적에 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본질적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히브리서 성경 공부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는데, 3장을 지난주에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3장 첫 부분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을 던지더군요. 특히 죄의 유혹에 넘어가서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기 위해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저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예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말에 매한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삶과 죽음, 그의 부활 속에 담긴 그 분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삶과 죽음, 그의 부활 속에 담긴 그 분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본다는 말은, 쪼개서 생각해보면 결국 예수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인데, 그 말은 우선적으로는 예수 이야기에 담긴 이미지와 심상을 생각해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반복적으로 말입니다. 마치 우리가 TV에서 광고를 접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야 그 심상과 이미지가 우리의 것이 되고, 그를 통해서 그 메시지가 우리의 이야기에 통합되며, 그렇게 해야 비로소 예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려면 예수 이야기에 침잠되어서 살아가는 일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이야기 안에 예수의 이야기가 들어와 살아 숨쉬고, 춤추고, 우리를 움직이고, 이끌며, 때로는 우리의 이야기와 싸움이 일어나고, 갈등이 생기는 때가 있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예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를 따르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 이야기는 이미 말한 대로 우리와 다른 시대에 완전히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쓰여진 이야기인 동시에, 굉장히 다층적이며 다양한 면을 담고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예수 이야기의 어떤 부분만을 취사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로 소화하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그 말은 예수 이야기의 다른 어떤 부분은 우리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로 소화해내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이번에 다루는 피터 헬첼(Peter Heltzel)의 예수와 정의(Jesus and Justice)는 이런 예수 이야기가 우리 삶의 이야기에 끼치는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읽으면 굉장히 흥미로울 책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개인적인 관계 뿐 아니라, 어떤 조직이나 기관이 이해하는 예수 이야기가 어떻게 그 조직이나 기관의 일하는 방식이나 여타 기관들과 관계 맺는 방식, 그리고 더 나아가서 문화와 관계 맺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는지에 주목하면서 읽는다면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책 자체는 미국 복음주의의 역사에 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굉장히 지루할 수 있는 책이긴 합니다. 미국 복음주의의 역사라는 딱딱한 주제를,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과 칼 헨리(Carl F. H. Henry) 라는 두 묵직한 사상가가 대변하는 두가지의 거대한 서로 다른 흐름 속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할 뿐 아니라, 그 두 큰 흐름이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네 개 단체, 즉 제임스 돕슨(James Dobson)Focus on the Family, 리차드 시직(Richard Cizik)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존 퍼킨스(John Perkins)Christian Community Development Association, 그리고 짐 월리스(Jim Wallis)The Sojourners라는 각각의 단체들이 가진 신학과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진화하는지를 추적해 가면서 미국 복음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생각해 보려는 시도를 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딱 그렇게 조직이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복음주의의 초기 역사를 추적하고, 그 속에서 복음주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 후에, 곧바로 킹과 헨리라는 두 인물의 신학 속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또 다시 곧바로 앞에서 언급한 네개 단체의 신학과 역사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이런 각각의 인물들과 기관들이 어떻게 예수 이야기를 소화하고 자신들의 삶의 이야기에서 풀어내려고 하는가, 그 질문을 하면서 읽으면 이 책에 대한 독서 경험은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별히 헬첼이 구분하는 백인 복음주의(White Evangelicalism)와 예언적 흑인 기독교(Prophetic Black Christianity)가 각각의 경험에 따라서 어떤 예수의 이미지와 심상을 취사선택했고, 그를 통해서 예수의 어떤 메시지를 선택적으로 소화했으며, 그런 메시지가 어떤 맥락 속에서 일어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이해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이 두 흐름이 겉으로만 보면 서로간에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지만, 이 두 흐름 모두 사실은 19세기 초반 케인 리지(Cane Ridge)의 부흥회에서 양측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된 데서 기인합니다. 따라서 헬첼은 백인 복음주의와 예언자적 흑인 기독교가 서로 공유하는 요소가 사실은 18세기의 부흥주의이며, 따라서 두 흐름에는 모두 복음주의의 특성으로 자주 인정되는 요소들 (복음주의를 정의할 때 항상 언급되는 David Bebbington이 규정한), 이를테면 1) 회심에 대한 강조, 2)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인정, 3) 행동주의, 그리고 4)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강조와 같은 외형적 요소들이 공유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은 여기까지이며, 백인 기독교가 예수 이야기 중에서 승리나 부활같은 이미지와 심상을 가져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로 삼는 반면, 흑인 기독교는 실패, 좌절, 절망같은 이미지와 심상을 자신들이 이해하는 예수 이야기의 주된 요소로 가져오게 됩니다. 헬첼이 책 초반부에서 언급하는 여류 기독교 운동가였던 Harriet Jacobs (1813-1897), 성 토요일의 신학(theology of holy Saturday: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금요일부터 부활하신 주일 사이, 토요일에 무덤에 계시던 때를 성경의 내용과 신학적 전통을 통해서 신학화) 을 통해서 노예로서 자신이 겪는 설움과 고통을 예수의 고난 이야기 속에서 통합해서 이해하며, 그를 통해서 신앙을 키워 갑니다. (이후에 Jacobs는 하나님께 계속적으로 간구함을 통해서 노예 신분에서 풀려나게 되었고, 평생을 노예 해방 운동을 위해서 헌신하다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런 흐름이 단지 Jacobs라는 한 개인이 보여주는 예외적인 것이 아니었고, Sojourner Truth (1797-1883), Fanny Lou Hammer (1917-1977), 그리고 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같은 인물들의 삶과 신학, 그리고 그들이 벌인 운동 속에 잘 녹여져서 나타난다는 것이 헬첼의 주된 논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의 신학과 삶은 계속적으로 현대 복음주의에 영향을 주고 있으며, 따라서 예언자적 흑인 기독교의 경험과 신학은 복음주의 역사와 신학의 합법적인 내러티브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헬첼이 책 전반을 통해서 주장하는 바라는 것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는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여전히 흑인들에 대한 (전반적) 우월감과 (육체적) 열등감 속에서 계속적으로 흑인들을 탄압하는데 적극적으로 일조하거나, 암묵적으로 그런 탄압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복음주의의 부흥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D.L. Moody의 경우, 인종 분리 정책에 대해서 명목상으로는 반대했지만, 자신의 부흥 집회는 흑.백이 분리된 채로 진행하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맙니다. MLK Jr.와 함께 복음주의의 큰 흐름을 아우르는 인물로 대변되는 Carl Henry 또한 비록 인종 차별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그의 주장과는 달리, 당시 MLK Jr.가 이끌었던 흑인들의 인종간 평등과 해방을 위한 운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헬첼은 이런 Henry의 소극적 태도의 기저부에, DL Moody의 인종 분리에 대한 소극적 인정의 기저부에 그들 각각이 이해하는 예수 이야기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지적합니다. Henry(그리고 Moody) 자신의 정체성의 근거로 받아들인 예수 이야기는 예수의 주되심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를 지금의 신앙인들이 적극적으로 가야 할 길로 받아들이는 예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백인 복음주의는 계속적으로 노예제 이후에도 인종 차별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협력해 왔다는 것이 헬첼의 진단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의 그림이 그렇게 어둡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주의 운동은 이제 점점 예언자적 흑인 기독교가 가진 요소들을 복음주의 운동이 이해하는 예수 이야기에 통합시켜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헬첼은 이런 운동을 주도하는 인물들로 Shane Claiborne, Malinda Berry, Bart and Tony Campolo, Ruth Padilla DeBorst, David Gushee, Lisa Sharon Harper, Gary Haugen, Sammy Rodriguez, Adam Taylor, Richard Twiss, Jonathan Wilson-Hartgrove같은 인물들을 언급합니다. 이런 인물들은 더 이상 백인 남성이 대다수가 아니며, 여성과 유색인종이 그 안에 많이 있으며, 이런 구성 비율은 앞으로도 더 다양해질 것이라는 것이 헬첼의 추측입니다. 최근 한국계나 아시아계 중에서도 복음주의권에서 발돋움하는 리더들이 꽤나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Soong-Chan Rah 교수를 비롯해서, Eugene Cho 목사, Francis Chan 목사 등등) 아마 미국의 복음주의는 앞으로 점점 다른 양태로 발전해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수 이야기는 다층적입니다. 예수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정말 다양하게 그려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히브리서의 명령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나 미국 복음주의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에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더 깊은 층위에 놓여있는 진리, 즉 우리가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음을 통해서, 우리 삶의 이야기가 그 이야기 속에 통합되면서 신앙이 성장해 나가는 존재라는 사실일 겁니다. 이것은 사실 한국 기독교가 돌아봐야 할 진리이기도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백인 복음주의 계열에 속한 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기독교 또한 백인 복음주의가 이해하는 예수 이야기를 거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모습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성공을 추구하며, 승리의 내러티브만이 유일하게 유효하며, 실패나 절망은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한국 기독교가 이제껏 붙잡고 달려온 예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던져주는 도전은, 예수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어떤 예수를 믿어온 걸까요? 그 예수가 정말로 성경이 그려내는 온전한 예수가 맞는 건지, 우리가 예수 이야기에서 의도치 않게 빼먹고 고려하지 않은 요소는 없는 건지,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요. 한국 기독교는 이제 점점 성장세보다는 하향세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사실 교세가 성장하느냐 감소하느냐와 관계없이, 예수 이야기에 계속적으로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름뿐인 기독교인이 되고 말 겁니다.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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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 이야기
이진경/kmc/채천석 발행인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열두 제자들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본서는 사도들의 삶에 대해 저자가 그의 상상력을 발휘하면서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독자들의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소개하는 각 장의 전반부는 서신과 회고록 형식을 빌려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고, 후반부는 제자들의 삶에서 특징적인 한두 가지 사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저자가 가진 학문적인 소양을 바탕으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형태로 그들의 삶을 추적한...
교회와 세상을 세우는 은사 교회와 세상을 세우는 은사
은사, 하나님의 선물
성민규/도서출판 다함/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앎과 삶의 괴리를 곳곳에서 발견한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실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교회 또한 복잡다단하다. 잘 정리된 교리가 시시각각 변하는 신앙생활과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혼란함은 다양한 은사의 무분별한 사용이다.은사의 사용은 교단과 신학, 전통과 거의 무관하다. 특히 지도자의 개인 성향과 목회 철학에 따라 좌우될 때가 많다. 가령 보수적 신학을 추구하는 교단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강력한 성령의 은사를 기대하는 교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낮...
목회자보다 무서운 성도들의 성경 씹어먹기 목회자보다 무서운 성도들의 성경 씹어먹기
읽다 살다
권일한/남기업/송인수/정병오/정한옥/잉클링즈/문양호 편집위원


직장생활을 십년가까이 하다가 사역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을 때 청년부 때 같이 있던 후배 하나를 만나게 되었었다. 그때 그 후배는 내게 형만큼은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그것은 내가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로서 언제나 신앙인의 삶을 지켜 살아가는 본을 보여주기를 원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목회자의 길을 갈 생각은 내게 없었다. 그리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양육하고 말씀 가르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부여하고 있고 짬짬이 양육하는 이들을 케어하고 있었고 이미 반(半)목...
용서가 실종된 시대, 용서를 배우려면 용서가 실종된 시대, 용서를 배우려면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팀 켈러/윤종석/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이 세대는 정말 용서를 배워야 한다. 한때 아름다운 미덕으로 여겨진 용서는 이제 희귀하고 드물기만 한 게 아니라 그만큼 미덕으로 여겨지지도 않는다. 우리는 지금 뭔가 꼬투리 잡힐 만한 일이 있으면 무섭게 달려들어 보복과 응징할 권리를 내세우며 앙갚음하는 게 당연한 시대, 그럴 때 오히려 쏟아지는 대중의 환호와 지지와 칭송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 풍조를 따르던 자들이 은혜로 구원받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할 때, 용서는 그들의 새로운 본성이 되어야 마땅하나, 실상은 새로운 본성과 싸워 미움과 분노와 비방과 ...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좇은 바빙크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좇은 바빙크
바빙크 비평적 전기
제임스 에글린턴/박재은/다함/조정의 편집인


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신학의 연구대상은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에 기록된 고대문서, 그것도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된 외래 문서이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영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고, 단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 결코 변하지 않는 참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존재인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고 따르게 한다. 모든 학문은 유행을 타고 패러다임을 바꿔가며 ‘새 관점’을 찾기 위해 애쓰지만, 신학은 그렇지 않다. 신학은 성경이 의도한 의미, 성경이 전달하고자 하는 단 한 가지 의미를 찾고 거기...
성경이해를 좀더 깊이있게 나아가도록 돕는 책 성경이해를 좀더 깊이있게 나아가도록 돕는 책
구약성경, 책별로 만나다
양진일/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성경통독을 그래도 꽤 일찍 시작한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경통독을 시작했다. 이후로 꾸준하게 읽었었다. 특히 청소년 시절에는 세로로 인쇄된 성경전서를 노란색 형광볼펜을 작은 플라스틱 자를 사용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들을 밑줄을 치며 읽었었다.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너무 많아 성경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고 여러 번 읽어 성경이 꽤 부풀어 오르기도 했었다. 오랫동안 끊긴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작은 양이라도 매일 읽으려고 노력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당시의 개역판만이 아니라 다양한 한글번역을...
요한계시록, 좀 더 이해하고 소화해서 요한계시록, 좀 더 이해하고 소화해서
요한계시록 상권과 하권
김상훈/감은사/고경태 편집위원


<감은사> 신학전문 출판사이다. "감은사는 신구약성서 및 초기기독교, 성서 언어 관련 도서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사입니다." <감은사>에서 신현우 박사를 책임편집자로 신약성경주석시리즈(KECNT)를 진행하고 있다.  ■ 시리즈 소개 국제적 연구 업적을 내기 시작한 한국의 탁월한 차세대 신학자들이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적인 문법적-역사적 해석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여 우리 시대의 교회와 목회 현장에 친절하게 전달하는 주석 이 시리즈는 탁월성, 정통성, 현장성을 함께 추구하는 성경 각 권...
생생한 그리스도의 고난 묵상집 생생한 그리스도의 고난 묵상집
그리스도를 따라: 21일 고난 묵상집
박상민/토브북스/조정의 편집인


교회력으로 사순절이 2월 22일 수요일에 시작된다(4월 6일에 마친다).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하기 위해 가톨릭과 다른 방식으로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다가올 부활절을 기대하며 묵상과 기도를 통해 회개와 소망을 갖는 시간으로 삼는다. 어떤 사람은 교회력을 너무 중시하는 것을 형식주의와 율법주의로 보고 기피하는 한편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예배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공동체가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리스도인이 언제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
설교, 끝까지 인내하면 반드시 열매 맺는다 설교, 끝까지 인내하면 반드시 열매 맺는다
설교, 인내로 걷는 길: 적대감, 무관심, 냉소를 이기는 설교하기
브라이언 크로프트, 제임스 캐럴/김진선/디모데/조정의 편집인


설교자는 읽어야 할 책이 정말 많다. 책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자기에게 맡겨진 설교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 설교자는 적어도 연구하고 있는 본문과 관련된 자료를 읽어야 한다. 많은 양의 주석과 사전, 지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화적, 역사적 자료들. 보통 설교자는 설교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대한다. 엄밀히 말해 가르치는 것도 사람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위로하고 세워주기 위한 은사다(모든 은사는 다른 지체를 섬기기 위해 성령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사람을 사랑하고 섬길 때 필요한 지혜와 도움을 주는 책을 참고할 필...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 "하나님만 바라라" 영혼을 깨우는 선지자적 외침, "하나님만 바라라"
하나님을 갈망하다
A. W. 토저/이용복/규장/조정의 편집인


<하나님을 갈망하다>는 규장에서 출간한 A. W. 토저의 마이티 시리즈(Mighty Series) 33번째 작품으로, <예배인가, 쇼인가!>를 시작으로 <하나님을 갈망하다>까지 총 33권의 책을 통해 토저가 외쳤던 뜨겁고 강력한(mighty) 메시지를 이 시대 말씀과 성령으로 개혁되어야 할 필요성이 분명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지향한다. 영문판을 편집한 제임스 스나이더의 말에 따르면, <하나님을 갈망하다>는 무명이었던 토저를 알려지게 하고, 시대의 영적 지도자로 드러나게 만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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