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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오직, 성경으로 살아가라

정현욱 | 2018.12.07 13:12
오직, 성경으로 살아가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프란시스 쉐퍼/김기찬/생명의말씀사/정현욱 편집위원

오직, 성경으로 살아가라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늦은 나이에 신학의 길로 들어선 나로서 성경의 세계와 기독교 역사는 미지의 광야처럼 낯설었다. 학교에 등교하면 도서관에 입실하여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 졸업하기 전까지 도서관의 모든 책은 다 읽을 것처럼 게걸스럽게 먹었지만 무지의 광야에서 헤어 나올 줄 몰랐다. 기독교 역사는커녕 일반 역사와 성경의 역사조차 모르는 나에게 신학과 교회사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바른 기독교적 관점이 없는 상태에서는 암호문 같았다. 신학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성경을 5독 이상했지만 성경의 전반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성경 개요서를 읽고 성경의 흐름을 비로소 보기 시작했다. 한 권의 짧은 책이었지만 서 말의 구슬을 꿰매주기에 충분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잡아주는 개요서 한 권의 힘을 그때야 알았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와 철학은 개요서는 찾아보기도 힘들었고, 어떤 책을 읽어도 맥락을 짚어내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우연처럼 읽게 된 책이 바로 프란시스 쉐퍼의 책들이었다. 기독교 영성관을 필두로 하여 문화관, 사회관, 성경관, 그리고 가장 충격과 감탄을 자아낸 기독교 철학 및 문화관을 읽어 나갔다. 대부분이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된 책들이었고, CH출판사에서도 박문재의 번역으로 출간된 책들도 몇 권이었다. 아직도 집에 1995년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된 몇 권의 책을 유물처럼 보관하고 있다. 벌써 이십 년 넘은 책들에 대한 기억을 온전히 되살릴 수는 없지만 당시 받았던 충격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경이(驚異)’. 오늘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마지막 책장을 닫으면서 다시 느낀 생각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이십 년 전에 읽었던 느낌과는 사뭇 다르고, 새로웠다. 이제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프란시스 쉐퍼와 기독교 세계관 운동을 일치시키는 것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그러나 1990년대 기독교 세계관이 한국교회를 뜨겁게 달구었을 때 프란시스 쉐퍼의 책도 동일한 범주 안에서 읽혔다는 것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싫든 좋든 한국교회 안에서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저물었고, 보수 진영 안에서 맴돌고 있다. 기독교 세계관은 하나님의 나라의 개념으로 치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쉐퍼의 책은 이십 년 전 처음 읽을 때와 그 후, 그리고 현재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저자인 프란시스 쉐퍼에 대한 이야기는 넘어가자. 필자는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설명한 다음 마무리할 것이다. 책은 고대 로마에서 시작하여 현대 철학에 이르기까지 전 역사를 아우른다. 미주까지 합해도 사백 쪽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결코 가볍거나 피상적이지 않다. 이것이 프란시스 쉐퍼의 능력이다. 읽기 시작하면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힌다. 난해하고 복잡한 철학과 문학, 미술까지 아우르지만 모호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때로는 과도한 획일적 평가로 치부할 수 있지만, 기독교적 기반이라는 틀 안에서 해석하는 쉐퍼의 능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고대 로마에서 중세까지

 

1장에서는 고대 로마를 2장에서 중세를 다룬다. 고대로마는 철저히 신화적인 시대이며, 반기독교적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중세는 기독교 시대가 아니던가? 쉐퍼는 아니다라고 답한다. 두 시대를 따라가보자.

 

로마는 그리스도를 정복하고 통합했다. 서구의 역사는 로마의 역사를 비껴갈 수 없다. 로마인들은 자기들의 신들을 기초로 하여 사회를 세우려했다.’(28) 이들의 문제는 지적으로 충분한 준거점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을 이끌어 주기에 충분한 큰 존재나 영원한 존재가없기 때문에 그들의 신과 사회도 함께 몰락했다. 기이하게 그들을 전복시킨 존재는 기독교다. 이곳에서 쉐퍼는 로마의 기반과 기독교의 기반이 무엇인지 비교한다.

 

한 민족의 삶이 압박을 받을 때, 그들의 세계관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를 깨닫는 일은 중요하다. 종교적 혼합과 혼합주의와 로마 문화의 결점이 영향들을 이겨낼 수 있었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사실은 기독교 세계관의 막강한 힘을 말해 준다. 이 힘은 하나님이 무한한 인격신이라는 사실과 그가 구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으로, 그리고 점점 형성되고 있던 신약으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근거를 두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셨다.”(31)

 

로마의 신들은 모순과 아이러니가 가득하고 타락한 인간과 다르지 않다. 신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신이었던 시대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이다. 로마황제를 으로 추앙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은 그들이 가진 기반이 썩은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쉐퍼는 책 전반에서 기반을 이야기한다. 기반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않지만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 또는 신앙관과 다르지 않다. 허망한 신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로마는 타락한 쾌락을 추구하며, ‘무감각’(37)한 존재가 되었고, ‘잔인성’(34)을 즐겼다. 고대로마는 시작과 과정, 그리고 끝까지 허약한 기반 위에 세워졌다.

 

중세는 생동감 넘치는 초대교회에서 인본적인 자율과 사물 중심으로 옮겨 간다. 초대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본주의가 첨가되면서 왜곡이 일어난다. 쉐퍼는 초대교회가 중세로 옮겨가면서 교회의 권위가 성경의 가르침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48)고 파악한다. 비록 문화적 요소가 창출된 것은 확실하지만, 이교적인 것도 분명하다. 중세의 핵심은 교회 권력과 국가 권력의 긴장이다. 모든 중세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교회는 세속 권력을 지배했다. 쉐퍼는 중세의 왜곡이 세속적 권력의 지배뿐 아니라 건축과 철학 속에서 교묘하게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특히 13세기 위대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계시와 인간 이성을 동동한 자리에 두기 시작했다’(59)고 정확하게 지적한다. 중세를 마무리하면서 쉐퍼는 뒤이어 일어날 르네상스 운동에 중세는 두 가지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점차 각성된 중세의 문화적 사상과 경건이며, 다른 하나는 인본주의가 개입하여 성경과 초대 교회의 교훈에 대한 왜곡이 증가한 것이다. 즉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자율적이고 사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시작’(74)한 것이다. 이제 르네상스 운동은 인간을 중심을 두고 모든 것을 그려나갈 것이다.

 

종교 개혁에서 근대까지

 

3장에서 르네상스를 다룬다. 4장과 5장은 종교개혁을 다루며, 6장은 계몽주의7장은 근대 과학의 발흥을 살핀다. 르네상스 운동은 중세에 속한 것이지만 정신은 근대적 인본주의다. 쉐퍼는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을 자연에 둔다. 자연은 곧 사실이며, 실제다. 중세는 상징의 시대였다. 르네상스 운동은 자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쉐퍼는 치마부에의 제자였던 조토 디 본도네에게서 미술의 근본적인 변화’(80)가 일어났다고 본다. 이것은 정확한 분석이며, 미술사가들도 동의한다. 조토의 미술은 혁명적이다.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지만 핵심은 자연이다. 단테 역시 조토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82) 쉐퍼는 르네상스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고 설파(說破)한다.

 

많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자들이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인간의 자율성은 전적으로 비기독교적 그리스 로마 세계에 의존한 것이라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졌다. 그래서 르네상스 인본주의는 현대 인본주의, 즉 인간은 그 자신이 척도이며 인간은 자율적이며 전적으로 독립적이라는 신념에 뿌리내리고 있는 신념 체계를 향하여 꾸준히 발전하였다.”(85)

 

그럼 종교개혁은 어떨까?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은 분명 자연과 인간이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고대로 역주행했다. 고대의 고전 연구는 궁극적으로 그리스 로마가 가진 인간 중심의 기반을 되찾아 오게 한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 점에서 르네상스 운동과 연장선상에 있다.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는 탈권위적이며, 반종교적인 의미를 갖지만 문서에 대한 비평이란 수단을 사용한다. 종교개혁은 정확하게 이곳에서 르네상스와 접점(接點)한다. 다른 점은 인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성경과 초대교회로 돌아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로렌초 발라의 불가지론은 거부했지만, 그의 언어 연구는 흔쾌히 배웠다. 그러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경과 초대 교회의 순수한 기독교로 돌아갔다.”(115)

 

쉐퍼는 종교개혁을 시대의 정석으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자연에 대한 바른 인식, 신격화된 헛된 인본주의에서 피조물로서의 바른 사람으로, 왜곡된 권위와 세속적 가치관에서 오직 성경에 근거한 믿음으로 되돌아간 시기다. ‘사람들은 자신의 위대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이해할 수 있’(122)었다고 정의한다. 비록 모순이 있고, 완전하지 않지만 종교개혁 시기는 자연과 인간을 계시의 조명을 받아 바르게 해석했다. 쉐퍼는 렘브란트에게서 미술의 모범을 발견한다. 쉐퍼가 판단하기에 렘브란트는 자연을 이상화하지도 않고 그것을 손상시키지도 않았다.’(138)

 

종교개혁 시대가 지나면 유럽은 계몽주의 시대가 시작된다. 불행하게 계몽주의 시대는 종교 개혁에 대한 완전히 반정립’(171)이다. 다시 이성과 인간이 고개를 쳐든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다시 기독교 이전의 고대로 눈을 돌렸다.’(175) 그러나 슬프게 이들의 기반은 허약한 것이고, 잔인하다. 쉐퍼는 계몽시대에 일어난 혁명을 살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가를 나열한다. 특히 공산주의 출현은 프랑스 혁명을 능가하는 독재와 살인이 있었음을 주목한다. 궁극적으로 인본주의는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말할 수 있는 궁극적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181)는 점이다.

 

근대 과학을 설명하면서 몇 가지 생소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중의 하나가 과학혁명은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역사상 동시에 발생했다’(188)는 점이다. 우리는 그동안 종교개혁을 통해 과혁 혁명이 탄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쉐퍼는 동시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로드니 스타크의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헤르몬)에서도 그 부분을 역사적 근거를 통해 제시한다. 로드니 스타크는 종교개혁 이전에 이미 근대 과학이 태동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은 신학에서 벗어나고 지배하게 된 것이다.

 

현대, 붕괴하는 철학과 과학

 

8장부터 12장까지는 근대 후기부터 현대까지의 철학과 미술 등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다. 근대 이후 철학과 미술은 신비주의의 범주에 갇힌다. 쉐퍼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곳이다. 특히 키에르케고르의 도약에 대한 해석은 차갑고 예리하다. 필자는 키에르케고르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쉐퍼의 주장에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실존주의의 포문을 연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은 도래한 현대 철학의 붕괴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존주의 핵심은 신과 인간의 단절에 있기 때문이다. 단절은 불가피하게 도약을 요구하고, 도약은 절망이라는 무신론적 후기 실존주의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존주의와 신비주의는 20세기에 시작된 동양 신비주의의 서구로의 유입, 그리고 신화에 대한 재해석으로 이어가도록 추동(推動)한다. 결국 니체는 하나님은 죽었다’(265)고 외친다. 감동적이게도 쉐퍼는 니체의 부정을 신에 대한 갈망으로 재해석한다.

 

니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에 파묻혀 있었지만 현대인의 긴장과 종말을 알고 있었다. 인격적인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은 죽은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참으로 인간이므로, 침묵하지 않고 말씀하셨던 무한한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에서 그리고 영원까지 계속되는 개인의 생명의 존재에서 발견될 수 있는 의미를 향해 울부짖는다.”(266)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 남은 것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마지막 13장에서 대안이란 제목으로 서술한다. 쉐퍼는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강요된 질서를 따르던지 아니면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인정하는 것’(380)이다. 다시 1장으로 돌아가 기반이란 단어를 가져오자. 쉐퍼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갖는 기반은 든든한가이다.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의미를 더해주는 기반은 진정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쉐퍼의 주장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자들이 갈구하고 되돌아갔던 다섯 가지 기치로.

 

다시 읽는 쉐퍼는 필자에게 새로운 각성을 주었다. 모호하고 희미한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명징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시대적 흐름을 비껴나가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기독교 세계관이 갖는 든든함을 재고(再考)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노예제도와 인종에 대한 편견, 부에 대한 분배에 관한 부분은 새로웠다. 교회가 대() 사회적 행동을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쉐퍼는 분명하게 그 교회들이 분명하고 용기 있게 외쳤더라면, 당시의 상황을 바꿀 수도 있었을 것’(162)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쉐퍼는 막무가내식의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히 성경에 천착하고 뿌리내리는 성경의 사람이다.

 

쉐퍼는 천재다. 아니 성경을 사랑했던 믿음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바른 삶의 기반을 가질 수 없음을 명백히 선언한다. 요약형식의 통해 쉐퍼의 주장을 일부 가져왔지만, 혹여나 왜곡이 없는지 걱정스럽다. 기독교인이라면, 특별히 기독교적 세계관이 무엇인가 알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읽어야할 대작이다. 강력 추천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쉐퍼의 마음으로 다섯 가지 솔라(Sola)를 외쳐보자.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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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상담학에서 일반적인 원칙으로 가르치는 변화된 삶의 원칙은 ‘반응하지 말고 행동(순종)하라’이다. 죄인은 자연스럽게 육신의 욕구대로 반응할 때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려면 반드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롬 12:2). 이 복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나오는 반응은 거의 대부분 어그러지고 이기적이며 악한 특성을 갖는다. 이 세대에 만연한 ‘반응성’의 특징이 바로 이 악한 반응성이...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는 성경적인 방법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는 성경적인 방법
성경적 교회 살리기
브라이언 크로프트/신지철/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지난 20년 동안, 북미에서 해마다 평균 약 3,500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고, 지금 남아 있는 교회 중 약 88-91퍼센트의 교회가 점차 죽고있다는 통계 자료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대략 10퍼센트 정도의 교회만 건강한 교회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10퍼센트도 성도의 숫자만 계산한 결과라서, 교리의 건전성, 성도의 삶의 거룩함, 교회의 건강한 기능 등을 모두 고려하면, 극히 적은 숫자만이 건강한 교회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인구 대비 기독교 인구 비율이 3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복음이 제시하는 유일한 기쁨의 길, 겸손 복음이 제시하는 유일한 기쁨의 길, 겸손
겸손: 나를 내려놓는 기쁨
개빈 오틀런드/이지혜/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이 책은 “복음대로 삶”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2장 3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연합하여, 용기 있고,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가치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부합하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개빈 오틀런드로 개혁된실천사에서 2023년에 출간된 <목숨 걸 교리 분별하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온유하고 겸손하니>, <더 깊게>를 쓴 데인 오틀런드와 헛갈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개빈은 데...
복음과 똑같은 무게가 되도록 살라 복음과 똑같은 무게가 되도록 살라
복음대로 삶: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최우선 가치
싱클레어 B. 퍼거슨/구지원/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이 책은 ‘복음대로 삶’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시리즈 기획자인 마이클 리브스는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삶이 심한 간극을 보이는 작금의 사태를 경계하며 “복음대로 사는 삶은 오늘날의 교회엑 가장 중요한 필수 요건이다. 이 온전함은 복음에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삶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으로, 도덕이나 정통 교리보다 더 필요하다”라고 시리즈 서문에서 그 취지를 밝혔다(11p). 빌립보서 1장 27절-2장 3절에서 네 가지 ‘복음대로 삶’의 특징을 찾았는데, 첫째로는 “합당함”이고 퍼거슨을 통해 <복음대로 삶: 원제는 “Worth...
하나님께 받은 용서에 대한 반응은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용서에 대한 반응은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용서를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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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선택이지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용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 나아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반역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지극히 합당한 일은 심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용서를 선택하셨다. 그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가볍게 던지는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죄책을 피해자가 갚겠다는 의지적인 선택이다. 상식에서 벗어나고 당위성도 떨어진다. 죄를 선택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친 자를 완전히 압도하...
존재의 변화를 기대하는 그리스도인 존재의 변화를 기대하는 그리스도인
태도, 믿음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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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높여 오랫동안 기도하는 사람의 영성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큰 목소리로 장시간 타인을 비난한다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믿음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확실합니다. 말과 행동, 태도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의 신앙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저는 설교나 강의에서 강조합니다. 인격과 존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속 사람부터가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겉만 번드르르한 사람들에게 여러 번 책망을 하셨습니다.멋들어지...
전도서의 지혜 전도서의 지혜
더 바이블 전도서: 성숙한 신앙을 위한 지혜
송민원/감은사/모중현 편집위원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변한 것은 없는 듯 보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셈에 바쁩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거나, 자신보다 강자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반대로 손해를 끼칠 것 같거나, 약한 사람에게는 비판적입니다.정해진 삶의 법칙대로 최선을 경주하지만, 우리의 삶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악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을 때도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얻는데 말입니다.어쩌면 우리는...
빛을 쫓아 살아온 삶 빛을 쫓아 살아온 삶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정민교/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막막한 현실 앞에 고개를 떨굽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해 답답함이 커져갑니다. 크나큰 장벽 앞에 나의 연약함과 한계는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이 상황에서 나의 힘으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뒤덮습니다.빛이 비칩니다. 그 빛은 참으로 밝습니다. 한순간에 어두움을 몽땅 녹여버립니다. 언제 주위가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빛은 강렬합니다. 우리의 인생 한가운데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빛은 우리 삶에 개입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말입니다.굴곡진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어둠과 ...
여인들의 복음 여인들의 복음
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
레베카 맥클러플린(Rebecca McLaughlin)/김은홍/죠이북스/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우리는 어떤 사건을 대할 때 이미 형성된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도 작동합니다. 관점이란 것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품이 넓지 못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문제는 이미 형성된 관점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힘의 논리는 객관적인 설명이나 마음 담은 요청이 아니라,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강요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많이 직면합니다. 그저 힘(나이나 직위 등)이 더 있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리 만화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리 만화
교리 박사님의 크리스천 코믹스: #1. 성경의 이미지
프레드 샌더스/이철민/터치북스/조정의 편집인


만화는 어렵고 복잡한 교리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도구이다. 그래서 여러 기독교 출판사에서 만화로 풀어낸 성경, 위인전, 교리 서적을 출판했다. 한편, 만화로 교리를 담아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첫째로,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만화는 그림체가 세련되고 현대적 감각에 맞아야 한다. 옛날 그림체는 대중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려내는 실력이 떨어지면 잘 읽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둘째로, 정반대의 측면에서, 그림이 아무리 훌륭하고 흥미를 유발한다 해도, 담아내는...
예수가 인정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면 예수가 인정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면
예수가 인정한 믿음
찰스 스펄전/송용자/터치북스/조정의 편집인


우리 주변엔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는 성도가 있다. 많은 경우 교회에서 요구하는 봉사와 섬김의 기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여 헌신하는 성도가 그런 평가를 받는다. 새벽부터 나와 기도하고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큰 소리로 뜨겁게 찬양하면 사람들에게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게 된다. 또는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우직하게 신앙을 지키는 사람에게 ‘믿음이 좋다’는 말을 한다. 믿음이 흔들릴 만한 어려움을 만났는데도 견고하게 서 있는 믿음을 가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믿음이 ...
경이로의 초대 경이로의 초대
경이라는 세계
이종태/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퍽퍽한 일상에 치여 하늘 한번 본 적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작은 창을 통해서지만, 잠시 새벽하늘을 바라봅니다. 캄캄하여 잘 보이지 않지만, 무엇인가 신비로운 것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늘 새벽에 읽고 쓰지만, 새벽의 기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됩니다.치열함에 가려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여전히 헛헛한 마음 채울 길이 없어 보입니다. 더 알기 위해 애썼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그저 고요함에 몸을 맡깁니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에 잠시 나를 던집니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하나님의 충만함을 느껴봅...
성찬 신학은 왜 실천되지 않을까? 성찬 신학은 왜 실천되지 않을까?
성찬, 배부름과 기쁨의 식사
이성호/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필자가 태어나 자라고 지금은 목회로 섬기고 있는 유평교회는 매주 성찬을 통해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교회다. 처음엔 모든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매주 성찬을 집행하는 줄 알았다.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고(행 2:46),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주간의 첫날에…떡을 떼려 하여 모였”던 것을 보면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떡을 떼는 성찬 예배를 드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행 20:7). 바울은 고린도 교회 편지...
종교개혁의 후예, 성경적인 교회 개혁을 위해 힘쓰는 기독교 형제단 종교개혁의 후예, 성경적인 교회 개혁을 위해 힘쓰는 기독교 형제단
기독교 형제단의 역사와 신앙
방기만/CLC/조정의 편집인


유평교회는 1965년 미국과 영국에서 파송된 선교사가 뿌린 복음이 낳은 열매로 시작되었다. 선교사는 형제단(기독교 형제단, 크리스천 브레드린이라고 불린다) 출신이었는데, 그래서 교회가 행하는 많은 사역 밑바탕에 형제단의 신학과 실천이 깔려있다. 어렸을 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보였던 교회가 자라면서 친구들이 전해주는 교회 모습과 달라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납득시켜야 할지 고민할 때도 많았다. 일반적으로 교회에는 막강한 리더십을 가진 담임 목사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에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 정도로 막강한 독단...
성경의 역사를 톺아보는 안내서 성경의 역사를 톺아보는 안내서
초기 교회의 성경
후스토 L. 곤잘레스(Justo L. González)/김기철/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오랜 시간 동안 성경만큼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 있을까요? 언어와 문화, 사회적 배경 등으로 인한 차이는 다양한 해석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어떠한 책으로 규정하는가에 따라 성경에 관한 관점은 더욱 상이해집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 논의는 매우 복잡해집니다.『초기 교회의 성경』은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고자 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후스토 L. 곤잘레스(Justo L. González)는 특유의 객관적이고 간결한 글쓰기를 통해 명쾌하게 성경의 ...
깊은 묵상으로의 초대 깊은 묵상으로의 초대
하나님의 날개 아래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홍종락/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주님의 본을 받아 그를 따라가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힘들고 고되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척박한 길을 걸어갈 때 넘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목표를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힘을 북돋아 주고, 방향을 지시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깊은 묵상과 치밀한 연구, 타인을 향한 공감이 배어있는 설교를 들으면 머리가 번쩍이고 가슴이 뜁니다. 그러한 설교는 깨달음과 더불어, 태도나 행동의 변화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그런 설교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하나님 나라...
진리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 진리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
철학자의 신학 수업
강영안/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그리스도인으로서 철학을 한다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철학'은 합리적 사고와 철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렇듯 신학과 철학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하지만 주어진 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비판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회의적인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형성된 것들을 내려놓고 집요하게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우리는 우리를 드러내고 살펴야 합니다.그런 점에서 '철학'과 '신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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