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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더 깊은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성경 읽기

정현욱 | 2018.10.11 13:52
더 깊은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성경 읽기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 읽기/로이스 티어베르그/손현선/국제제자훈련원/정현욱 편집위원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 읽기


들어가면서

 

언젠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교수님께 물었다. “좋은 번역본이 많은데 왜 굳이 히브리어를 배워야 합니까?” 교수님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첫째는 목사라면 성경원어인 히브리어를 배워야 마땅하고, 두 번째는 히브리어를 알면 흑백으로 보이던 성경이 칼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직신학에 흠뻑 빠져있던 나에게 성경원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직신학은 성경원어를 무척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교리와 교회사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성경 원어가 갖는 무게나 의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당시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을 배우면 배울수록 성경 원어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 원어를 안다는 것은 성경 시대의 삶의 맥락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았다. 원어에 갈망은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삶을 알고 싶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것은 흑백과 칼라의 차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였던 것이다.

 

3월에 출간된 <랍비 예수>는 매력이면서 도전적이었다. 그동안 나는 정보와 지식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경 읽기 방식에 함몰되어 있었다. 수단으로서의 성경 읽기는 종교개혁 이후 일어난 성경 읽기의 한 방법이며, 시대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성경 읽기 방식이다. 가톨릭의 오류를 바로 잡고 바른 교리를 정립하기 위해 종교 개혁자들은 이성적이며 수단으로서의 성경 읽기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교리와 정보들을 문답서와 교리 교육 안에 담았다. 16-18세기가 교리의 전성시대가 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가 들어서면서 교리는 진부해졌고, 사실과 정보가 사람들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절박감이 감돌았다. 마침내 두 번의 세계대전은 근대적 성경 읽기 방식에 심각한 의문을 던졌고, 권위에 대해 극히 부정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성경을 난도질 했던 비평적 접근법 역시, 권위적이며 수단적인 성경 읽기 방식이라는 점은 기이할 정도다. 그럼, 성경의 권위가 추락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작은 질문은 다시 성경은 무엇이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성서비평 운동이 무례하고 비겁한 면도 있지만 결국 성경이 무엇인가?’로 돌아가게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B. S. 차일즈 이후 성경 읽기는 비평이 아닌 정경학적 성경 읽기로 선회했다. 왜일까? 그동안 성경을 뜯고, 찢고, 가위질하고, 난도질 했지만 아무도 원본도 발견하지 못했고, 진짜 예수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일즈는 물증 없는 심증(心證)을 접고 성경이 가진 본래의 의도, 즉 경전(經典)으로서의 성경(聖經)읽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일즈의 주장은 합당한 것이며, 시대적으로도 바른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성경이 갖는 고유한 속성과 목적에 합하도록 성경 읽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다시 성경의 시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즉 유대인이고 랍비였던 예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랍비 예수>의 개정판인 줄 알았다. 제목부터 표지까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물론 내용도 닮아 있다. 그러나 <랍비 예수>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그린다. <랍비 예수>가 개론서에 해당된다면, 이 책은 성경해석의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실전 편에 속한다. 전체 313장으로 구분했다. 1부는 새로운 눈으로 성경 읽을 준비라는 제목으로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2부는 예수님의 진리 소통 방식은 무엇인지 4장에 걸쳐 다룬다. 마지막 3부는 그분이 성경을 풀어주실 때라는 제목이지만, 부록과 같은 느낌이다.

 

거기 있는 법 배우기

 

세월호 사건은 우리나라의 민낯을 보여주는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현실이다. 세월호 사건과 함께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답답함과 분노를 일으킨다.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읽기 위해서는 성경 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가만히 있는 법을 모른다. 행동하고, 움직이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시간을 낭비하라는 뜻이 아니다. 때를 기다리는 말이다. 봄에 씨앗을 뿌렸다면 기다려야 한다. 가을이 와야 추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는 말은 게으름을 조장하지 않는다. ‘가만히는 찾고 구하라는 뜻이며, 끊임없이 갈망하라는 뜻이기도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성경에 가만히천착(穿鑿)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다리지 않는 성경 공부를 저자는 전자렌지식 성경공부라고 말한다. 맛도 있고, 먹을 만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되고 부패된다. 영양분도 시간이 지날수록 파괴된다. 그러나 편리하다. 이것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저지르는 성경공부 방식이다. 이미 알고 있는 성경지식으로 판단하고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살짝 데우기만 하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이러한 성경공부는 영혼을 더욱 핍절하게 만들 뿐이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저자는 중동식 성경공부또는 유대적 맥락 속에서 성경을 읽’(17)어야 한다고 말한다.(17) 그것은 일종의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우푸드식 성경 공부인 것이다.

 

거기는 성경이다. 오랫동안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생각해야 한다. 급하게 읽고 생각하는 성경 읽기는 염수처럼 더 깊은 갈증을 일으킨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성경조차 급하게 읽어 간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성경을 대충 읽고 써먹을 거리를 찾는다. 저자는 패스트푸드식의 성경 읽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랍비 예수와 함께 우리만의 엠마오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24) 묻는다. 다시 이천년 전의 상황과 환경, 유대인의 입장이 되어 길을 걸으며 예수님과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급하게 읽어 나가는 성경 읽기보다는 월등한 효과를 가져 오지 않을까?

 

성경에 오래 머무는 성경 읽기란 무엇인가? 저자는 4히브리어로 색칠하기에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하나의 번역에 매달리지 말고 둘 이상의 역본을 비교하며 읽’(66)는 것이다. 좋다! 한 번 참고해 보자. 시편 11절의 상반 절이다.

 

복 있는 사람은(개정개역)

행복한 사람은 (쉬운성경)

 

그런데 공동번역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럼 영어 번역본들은 어떨까? 네 가지 역본을 비교해 보자. 놀라운 정도로 다르다.

 

Blessed is the one(NIV)

O the happiness of that one(YLT)

Blessed is the man(ASV)

How blessed is the person(ISV)

 

그럼 마소라 사본은 어떨까?

 

앞부분을 직역해 보면 복되도다(감탄사) 사람이여, 그는 ....’으로 이어진다. 문장의 서두에 사용된 복되도다’(아쉬레이)는 감탄사다. 그렇다면 오 복된 사람이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원어에 가까운 번역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감성적인 특징은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동사와 감성 중심의 표현법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일반 성도들이 히브리어까지 공부하기에는 벅차다. 그렇지만 다양한 번역본들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든 다양한 번역본이든 읽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성경에 천착하지 않으면 우리의 편견이나 경험들로 인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적 성경 읽기

 

저자는 2부에서 예수님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읽을 필요가 있으며,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 성경 읽기를 추천한다. 필자는 6장을 읽으면서 섬뜩한 생각을 했다. 서구적 개인주의는 분주하고 경쟁 체제의 현대인들에게 매우 적합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가? 기이하게 현대는 개인주의적 성경 읽기와 묵상에 빠져있다. 특히 개인 묵상의 경우는 성경을 왜곡할 위험성이 다분히 많다. 성경이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다. 심지어 개인에게 보낸 신약의 많은 편지도 개인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돌려보는 회람서신(回覽書信)’이다. 즉 개인에게 준 편지가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은 개인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러한 개인 성경 읽기 방식을 개인주의의 사이렌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말을 직접 들어보자.

 

상사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다. 난 나만의 유쾌한 작은 세상의 여왕이다. 게다가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개인주의의 사이렌 소리에 미혹된 경험도 많다. 어찌 보면 내가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며 여러 경로를 발견하는 바는, 이런 개인주의적인 접근으로는 본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119)

 

개인이 아닌 우리로 생각하기’(123), ‘공동체적 계명들’(129)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 공동체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원래 성경이 말하는 방식이며, 하나님께서 그동안 계시해왔던 전통적인 방법이다. 8장에서 구술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구술이란 무엇인가? 혼자가 아닌 것이다. 함께 말하고, 여럿이 듣는 것이다.

 

구약이 저술된 시대는 구술 중심의 사회였고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반복법을 쓰며 후대의 사건을 선대의 사건에 비추어 묘사함으로써 상호 연결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구술 문화에서 의미를 암호화하는 방식이었다.”(161)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혹자 책을 읽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낭독이 아니라 묵독(默讀)으로 말이다. 성경은 눈으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것이었다.

 

밥상머리 성경 공부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을 부활한 예수님은 찾아가셨다. 가만히 듣기만 하시다 어느 순간 함께 이야기했다. 그러다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가슴을 뜨겁게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이유는 바로 그 뜨거움때문이다.(25:32)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2:28-34)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사용된 디아노이고(διανοίγω)’완전히 열다란 뜻이다. 숨겨진 것을 밝히 드러내 보인다는 말이며, 실제로 계시라는 말과 뜻이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런데 누가복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자들이 눈이 뜨일 때는 다른 때가 아니라 떡을 떼실 때이다. 저자는 10장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대인들이 교육 방식은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은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함께 대화함으로 부모의 언어와 사유 방식이 자녀들에게 교육되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안식을 준비한다. 이 때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물론 유대교에 대한 이야기다.

 

유대인의 공부법에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떠드는 도서관 예시바(Yeshiva)를 알 것이다.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면서 그들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 한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말이다. 그들은 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성경을 토론하고 성경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나가면서

 

이 책은 성경이 말하는 시대와 방식 안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한다. 유대인을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성경의 시대에서 사용된 언어와 문화, 삶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결코 이천 년 전의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알고자 한다면 그 시대를 알기 위한 몸부림은 필요하다.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성경의 원의(原意)를 찾아가려는 결심이 아닐까?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원 청중의 관점을 파악해 더 많은 통찰과 영감을 구비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다. ... 유대인이 삶에 접근하는 방식을 이해하고자 시간 여행을 떠날 것이고, 그리하여 대체로 가려져 왔던 지혜를 재발견하며,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읽어 오늘날 우리 삶을 위한 통찰을 건져 올릴 것이다.”(25)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라는 책에서 케네스 E. 베일리는 예수님이 태어난 마구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간 다음 성탄절 연극을 다시 써야한다고 말한다. 마구간은 소외가 아니라 환대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태어난 구유는 차갑고 쓸쓸한 가축우리가 아니라 따뜻하고 살가운 집안에’(58)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본 마구간과 성경 시대의 마구간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 이제 삶의 맥락을 놓쳐버린 교리적 성경해석을 잠깐 내려놓고, 성경의 시대 속으로 되돌아가 천천히 그리고 깊이 다시 성경을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보다 훨씬 흥미로운 경이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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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상담학에서 일반적인 원칙으로 가르치는 변화된 삶의 원칙은 ‘반응하지 말고 행동(순종)하라’이다. 죄인은 자연스럽게 육신의 욕구대로 반응할 때가 많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대로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 행동하려면 반드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롬 12:2). 이 복음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각적으로 나오는 반응은 거의 대부분 어그러지고 이기적이며 악한 특성을 갖는다. 이 세대에 만연한 ‘반응성’의 특징이 바로 이 악한 반응성이...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는 성경적인 방법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는 성경적인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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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동안, 북미에서 해마다 평균 약 3,500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고, 지금 남아 있는 교회 중 약 88-91퍼센트의 교회가 점차 죽고있다는 통계 자료는 참으로 충격적이다. 대략 10퍼센트 정도의 교회만 건강한 교회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 10퍼센트도 성도의 숫자만 계산한 결과라서, 교리의 건전성, 성도의 삶의 거룩함, 교회의 건강한 기능 등을 모두 고려하면, 극히 적은 숫자만이 건강한 교회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인구 대비 기독교 인구 비율이 3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교회가...
복음이 제시하는 유일한 기쁨의 길, 겸손 복음이 제시하는 유일한 기쁨의 길, 겸손
겸손: 나를 내려놓는 기쁨
개빈 오틀런드/이지혜/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이 책은 “복음대로 삶”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2장 3절의 내용을 바탕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연합하여, 용기 있고,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리즈에서 마지막으로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복음의 가치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부합하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개빈 오틀런드로 개혁된실천사에서 2023년에 출간된 <목숨 걸 교리 분별하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참고로 <온유하고 겸손하니>, <더 깊게>를 쓴 데인 오틀런드와 헛갈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개빈은 데...
복음과 똑같은 무게가 되도록 살라 복음과 똑같은 무게가 되도록 살라
복음대로 삶: 그리스도인이 추구할 최우선 가치
싱클레어 B. 퍼거슨/구지원/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이 책은 ‘복음대로 삶’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시리즈 기획자인 마이클 리브스는 복음과 복음에 합당한 삶이 심한 간극을 보이는 작금의 사태를 경계하며 “복음대로 사는 삶은 오늘날의 교회엑 가장 중요한 필수 요건이다. 이 온전함은 복음에 우리의 머리와 가슴과 삶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으로, 도덕이나 정통 교리보다 더 필요하다”라고 시리즈 서문에서 그 취지를 밝혔다(11p). 빌립보서 1장 27절-2장 3절에서 네 가지 ‘복음대로 삶’의 특징을 찾았는데, 첫째로는 “합당함”이고 퍼거슨을 통해 <복음대로 삶: 원제는 “Worth...
하나님께 받은 용서에 대한 반응은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은 용서에 대한 반응은 용서를 선택하는 것이다
용서를 선택하라
낸시 드모스 월게머스/스데반 황/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용서는 선택이지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용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 나아가 선택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용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반역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지극히 합당한 일은 심판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용서를 선택하셨다. 그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가볍게 던지는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죄책을 피해자가 갚겠다는 의지적인 선택이다. 상식에서 벗어나고 당위성도 떨어진다. 죄를 선택하여 남에게 손해를 끼친 자를 완전히 압도하...
존재의 변화를 기대하는 그리스도인 존재의 변화를 기대하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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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신/죠이북스/모중현 편집위원


목소리 높여 오랫동안 기도하는 사람의 영성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큰 목소리로 장시간 타인을 비난한다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믿음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확실합니다. 말과 행동, 태도에서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의 신앙은 겉치레에 불과합니다.저는 설교나 강의에서 강조합니다. 인격과 존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속 사람부터가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겉만 번드르르한 사람들에게 여러 번 책망을 하셨습니다.멋들어지...
전도서의 지혜 전도서의 지혜
더 바이블 전도서: 성숙한 신앙을 위한 지혜
송민원/감은사/모중현 편집위원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변한 것은 없는 듯 보입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셈에 바쁩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거나, 자신보다 강자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한없이 관대합니다. 반대로 손해를 끼칠 것 같거나, 약한 사람에게는 비판적입니다.정해진 삶의 법칙대로 최선을 경주하지만, 우리의 삶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우리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악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을 때도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영광과 명예를 얻는데 말입니다.어쩌면 우리는...
빛을 쫓아 살아온 삶 빛을 쫓아 살아온 삶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정민교/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막막한 현실 앞에 고개를 떨굽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해 답답함이 커져갑니다. 크나큰 장벽 앞에 나의 연약함과 한계는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이 상황에서 나의 힘으로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나를 뒤덮습니다.빛이 비칩니다. 그 빛은 참으로 밝습니다. 한순간에 어두움을 몽땅 녹여버립니다. 언제 주위가 보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빛은 강렬합니다. 우리의 인생 한가운데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빛은 우리 삶에 개입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말입니다.굴곡진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어둠과 ...
여인들의 복음 여인들의 복음
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
레베카 맥클러플린(Rebecca McLaughlin)/김은홍/죠이북스/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우리는 어떤 사건을 대할 때 이미 형성된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도 작동합니다. 관점이란 것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품이 넓지 못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문제는 이미 형성된 관점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힘의 논리는 객관적인 설명이나 마음 담은 요청이 아니라, 상대방을 윽박지르는 강요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러한 상황에 많이 직면합니다. 그저 힘(나이나 직위 등)이 더 있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리 만화 그리스도인을 위한 교리 만화
교리 박사님의 크리스천 코믹스: #1. 성경의 이미지
프레드 샌더스/이철민/터치북스/조정의 편집인


만화는 어렵고 복잡한 교리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도구이다. 그래서 여러 기독교 출판사에서 만화로 풀어낸 성경, 위인전, 교리 서적을 출판했다. 한편, 만화로 교리를 담아내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첫째로,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만화는 그림체가 세련되고 현대적 감각에 맞아야 한다. 옛날 그림체는 대중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그려내는 실력이 떨어지면 잘 읽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둘째로, 정반대의 측면에서, 그림이 아무리 훌륭하고 흥미를 유발한다 해도, 담아내는...
예수가 인정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면 예수가 인정한 믿음을 가지고 싶다면
예수가 인정한 믿음
찰스 스펄전/송용자/터치북스/조정의 편집인


우리 주변엔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는 성도가 있다. 많은 경우 교회에서 요구하는 봉사와 섬김의 기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여 헌신하는 성도가 그런 평가를 받는다. 새벽부터 나와 기도하고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며 큰 소리로 뜨겁게 찬양하면 사람들에게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게 된다. 또는 삶의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우직하게 신앙을 지키는 사람에게 ‘믿음이 좋다’는 말을 한다. 믿음이 흔들릴 만한 어려움을 만났는데도 견고하게 서 있는 믿음을 가졌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믿음이 ...
경이로의 초대 경이로의 초대
경이라는 세계
이종태/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퍽퍽한 일상에 치여 하늘 한번 본 적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작은 창을 통해서지만, 잠시 새벽하늘을 바라봅니다. 캄캄하여 잘 보이지 않지만, 무엇인가 신비로운 것을 품고 있는 듯합니다. 늘 새벽에 읽고 쓰지만, 새벽의 기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됩니다.치열함에 가려 잃어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여전히 헛헛한 마음 채울 길이 없어 보입니다. 더 알기 위해 애썼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그저 고요함에 몸을 맡깁니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에 잠시 나를 던집니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하나님의 충만함을 느껴봅...
성찬 신학은 왜 실천되지 않을까? 성찬 신학은 왜 실천되지 않을까?
성찬, 배부름과 기쁨의 식사
이성호/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필자가 태어나 자라고 지금은 목회로 섬기고 있는 유평교회는 매주 성찬을 통해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교회다. 처음엔 모든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매주 성찬을 집행하는 줄 알았다.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고(행 2:46),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주간의 첫날에…떡을 떼려 하여 모였”던 것을 보면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떡을 떼는 성찬 예배를 드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행 20:7). 바울은 고린도 교회 편지...
종교개혁의 후예, 성경적인 교회 개혁을 위해 힘쓰는 기독교 형제단 종교개혁의 후예, 성경적인 교회 개혁을 위해 힘쓰는 기독교 형제단
기독교 형제단의 역사와 신앙
방기만/CLC/조정의 편집인


유평교회는 1965년 미국과 영국에서 파송된 선교사가 뿌린 복음이 낳은 열매로 시작되었다. 선교사는 형제단(기독교 형제단, 크리스천 브레드린이라고 불린다) 출신이었는데, 그래서 교회가 행하는 많은 사역 밑바탕에 형제단의 신학과 실천이 깔려있다. 어렸을 때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보였던 교회가 자라면서 친구들이 전해주는 교회 모습과 달라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고 납득시켜야 할지 고민할 때도 많았다. 일반적으로 교회에는 막강한 리더십을 가진 담임 목사가 있어야 하지만, 우리에겐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 정도로 막강한 독단...
성경의 역사를 톺아보는 안내서 성경의 역사를 톺아보는 안내서
초기 교회의 성경
후스토 L. 곤잘레스(Justo L. González)/김기철/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오랜 시간 동안 성경만큼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 있을까요? 언어와 문화, 사회적 배경 등으로 인한 차이는 다양한 해석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성경을 어떠한 책으로 규정하는가에 따라 성경에 관한 관점은 더욱 상이해집니다. 기독교인들이라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 논의는 매우 복잡해집니다.『초기 교회의 성경』은 이러한 논쟁을 해결하고자 쓴 책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학자인 후스토 L. 곤잘레스(Justo L. González)는 특유의 객관적이고 간결한 글쓰기를 통해 명쾌하게 성경의 ...
깊은 묵상으로의 초대 깊은 묵상으로의 초대
하나님의 날개 아래
코넬리우스 플랜팅가 Jr./홍종락/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주님의 본을 받아 그를 따라가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힘들고 고되지만,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입니다. 척박한 길을 걸어갈 때 넘어질 수 있습니다. 때로는 목표를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힘을 북돋아 주고, 방향을 지시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깊은 묵상과 치밀한 연구, 타인을 향한 공감이 배어있는 설교를 들으면 머리가 번쩍이고 가슴이 뜁니다. 그러한 설교는 깨달음과 더불어, 태도나 행동의 변화까지 이어집니다. 결국 그런 설교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갑니다. 하나님 나라...
진리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 진리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
철학자의 신학 수업
강영안/복있는사람/모중현 명예편집위원


그리스도인으로서 철학을 한다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철학'은 합리적 사고와 철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렇듯 신학과 철학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하지만 주어진 계시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비판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회의적인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형성된 것들을 내려놓고 집요하게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우리는 우리를 드러내고 살펴야 합니다.그런 점에서 '철학'과 '신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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