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세종, ‘철인(哲人)의 세계’를 읽다
10월 9일,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일을 기념하고 ‘한글날’로 제정했다. ‘한글’은 주시경 선생이 제안한 것이고, 세종대왕은 ‘정음(正音)’이라고 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을까?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글과 세종대왕은 동시에 생각난다.
학문이란 무엇일까? <세종의 서재>을 읽으면서 학문에 대한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학문은 홀로 외로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종의 학문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진행한 것이 <세종의 서재>에서 잘 나타났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학문이 번성했을 때가 세종 시대인 것 같다. 세종에 대왕을 붙인 것은 후대에 표현한 것이다.
제왕 시대에 제왕을 따라서 나라의 방향이 결정되는 시대, 서책에 빠진 사람이 임금이 되었을 때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한 모습이다. 플라톤이 꿈꾸었던 철인(哲人) 통치가 세종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세종의 서재>에서 그의 연구 분야와 업적을 보면 그렇게 생각된다. <세종의 서재>에서 병법을 언급한다. 김종서 장군으로 북방을 남방의 대마도를 정벌했다. 그러한 힘은 세종의 서재에서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세종의 서재>는 다수의 연구자들이 협업해서 만든 서책이다. 세종 시대에 음악, 군사, 농사, 역법, 천문학, 서책 수집 등 모든 방면에서 연구와 집필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전문가들이 세밀하게 제시한다. 세종 시대의 인문학이 어떠했는지를 파도처럼 강력하게 느낄 수 있다.
세종하면 쉽게 ‘한글’만 생각했고, 좀 더 한다면 ‘장영실’을 생각했다. 그런데 <세종의 서재>에서는 군사, 농사, 천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수집, 연구를 통해서 서책을 만들었다. 세종의 서재는 독서의 공간이고 창작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서재는 혼자의 서재이고 공동의 서재가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음악’까지 편재한 것이다. 학문이 무엇인지를 <세종의 서재>를 통해서 잘 볼 수 있다. 학문은 등용을 위한 수단이 아니고, 자기궤변을 정당화시키는 수사도 아니다. 학문의 꽃은 천문과 음악에 있다. 학문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농업과 군사력이다.
10월 9일 한글날, 독서의 계절 가을에 <세종의 서재>에서 어마어마한 “세종의 세계”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