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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도는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이다(독서편지)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26 22:05
기도는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이다(독서편지) 시편의 기도/월터 브루그만/김선길/CLC/정현욱 편집위원

기도가 뭐에요? 

며칠 전 당신이 제게 물었습니다. 한 참을 꼼지락 거리다 내 뱉은 말은 고작 글쎄였습니다. ‘글쎄라는 대답,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숨겨져 있는지 모릅니다. 다른 신학 지식은 얄팍한 지식에 달변으로 포장하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기도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왜냐고요? 아시잖아요. 기도는 이론이 아닌 하는 것이니까요. 기도에 대한 수천 수만 페이지의 책을 쓴다한들 한 시간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진정한 기도의 교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기도는 하면 할수록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을 알기에 진실한 기도자 또한 선뜻 기도에 대한 답을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기도는 답을 얻기도, 주기도 쉽지 않은 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나라고 별수 없죠. ‘글쎄라는 대답이 아마 기도에 대한 최고의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팀 켈러의 <기도>역시 현대인들에게 추천할만한 기도 책입니다. 그러나 저는 김영봉 목사님의 <사귐의 기도>를 좋아합니다. 기도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부분들을 잘 짚어 주는 책입니다. 다양한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리차드 포스터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기도책 고전 중의 고전은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쓴 <무릎 꿇는 그리스도인>이 될 겁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기도 책은 오스왈드 챔버스의 <기도>이고, 오늘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은 월터 브루그만의 <시편의 기도>라는 책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제가 좋아하는 신학자요 목회자입니다. 제가 처음 접한 월터 브루그만의 책은 <예언자적 상상력>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 책을 처음 접하고 저는 그만 월터 브루그만에 흠뻑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구약 신학><성경이 말하는 땅>은 그야말로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는 전통과 평범함 속에 숨겨진 인간의 악을 찾아내는 탐정과 같았고, 자신도 모르게 물질의 세계에 영혼을 팔고 있는 사람들의 심령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오늘 당신과 함께 나눌 이 책도 저자의 그러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기도를 정의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이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이런 응답을 받는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해 말하기보다 기도의 본질에 천착(穿鑿)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도록 이끌고 갑니다.

 

기도, 그것은 의무이기 전에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차안에서 당신에 제게 응답도 되지 않는 기도를 왜 해야 되요?’라고 물었을 때 저의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응답 없는 기도로 인해 마음이 많이 상해있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도가 꼭 응답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하잖아요. 기도는 조건 절이 아닌 영혼의 양식을 먹는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다른 것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는 영혼이 육신에게 요구하는 간소한 식사라고 생각합니다.

 

초월을 향한 굶주림”(21). 저자는 시편의 기도를 그렇게 정의하고 시작합니다. 굶주림은 영혼이 깨어나는 자각이며, 존재 의미를 전복시키는 가치의 혁명이라 믿습니다. 사람이 신을 갈망할 때는 곧 고난의 때요 위기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위기를 통해 자신을 바라봅니다. 위기라는 말 속에는 한계와 약함 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 위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린 누군가를 부릅니다. 나를 도울 수 있는 누구... 초월을 향한 굶주림은 인간이 본연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본성에서 나온 울림입니다.

 

마흔 여섯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저의 삶을 보며, 저는 최근에 많이도 울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뭔가 풀어낼 수 없는 존재의 허망함과 나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무게들로 인해 마음이 짓이겨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브루그만은 이러한 삶 그러니까 인생의 모서리에서 살아가면서, 인생의 밑바닥에 있는 심한 고통, 원초적인 정열, 그리고 순진한 의기양양함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만이 대부분의 시편을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다’(26)고 말합니다. 수학공식처럼 삶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삶, 모호하고 통제할 수 없는 삶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사람이야 말로 시편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갈망은 생존의 변두리에 방치된 인생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은 종종 말했어요.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그래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삶,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어야 하는 삶, 바로 그곳이 기도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시편의 기도는 포장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분노하고, 울고, 외로워하고, 원망하고, 기뻐 소리치기도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대로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그들의 언어는 정제되지 않았고, 영혼의 진동이 그래도 느껴지는 절규였습니다. 브루그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은 인생이 혼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안다. 감출 필요도 없다. ... 애가의 시편의 대부분은 굉장히 미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할사람들의 목소리이다”(28, 29).

 

우리는 기도에 대해 단아하고, 청아한 수도원적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그렇게 하지 않을지언정 그것이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브루그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언어의 고백이 더 맞다고 말합니다. 주어가 생략되고, 목적어가 누락되고, 때론 서술어도 없는 형체가 깨어진 언어들로 이루어진 기도. 그 기도가 진짜 기도인 것이죠.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언어의 발설은 기존의 전통적 언어에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줍니다. 언어의 해방은 곧 영혼의 해방이 됩니다.

 

그거 알고 있나요? 목회자들이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대단한 위험하다는 것을. 목회자는 하나님에 대한 단호하고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하고, 어려움에 처한 교인들을 명백한 말씀으로 교훈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실존은 그렇지 않습니다. 적은 사례비로 생존을 걱정해야하고, 교인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고뇌해야 합니다. 목회자들에도 자식이 있으니 또한 책임져야합니다. 운명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럴 때 시편 기자들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물같이 쏟아지고,

뼈가 어그러지고,

질그릇 조각 같고,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눈물이 내 음식이 되고,

원수가 나를 삼키려 하고,

 

어쩌면 기도란 기도하면 받는 식의 공식이 아니라 우리의 실존을 그대로 하나님께 가지고 감으로 치유해 달라는 청원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이란 정의되지 않는 신에게 다가서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빠에게 칭얼대며 뭔가를 간절히 요구하는 것. 그러나 그 요구는 종종 거절됩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너무나 큰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도를 거절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도움의 손길은 요원하기만 하고, 원수를 건장하기만 합니다. 그때는 오히려 우리가 버림을 당한 것 같고, 우리가 하나님께 미움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거절, 미움,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소외되고, 방치된 삶으로 살아야 가야합니다. 브루그만은 언어의 해방에서 곧장 장소에 합당한 언어로 화제를 바꿉니다. 미움은 마음의 문제에서 장소의 문제로 치환됩니다. 그곳이 음부이기 때문입니다. 규격화되고, 통제되었던 삶이 원수에 의해 갑자기 무너집니다. 아니 쫓겨납니다. 원수들은 기도자를 구덩이에 던집니다. 구덩이는 관념이 아닌 실제적 장소이고, ‘삶으로부터 제거’(53)되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한 사람이 생명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자원으로부터 단절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죽음의 장소이고, 배제되고 소멸되는 곳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낙담할 것이고, 절망할 것입니다. 희망 없음의 상태와 존재의 무의미와 싸워야 할 것입니다.

 

문득, 구덩이가 지금 우리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니다. 당신은 결혼 한다는 이유로 모교회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당신은 생존의 가능성을 상실한 체 지금 여기, 구덩이에 빠져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내어 뿜는 언어의 색은 어둡고 칙칙하고 암울합니다. 시편 기자들은 얼마나 자주 구덩이’ ‘음부’ ‘웅덩이들은 언급하는지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편 401.2절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기다림은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렸더니맞아요. 그가 기다린 인고의 세월을 누가 알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보증금 300에 월세 35만 원짜리 쪽방에 살고 있습니다. 밤이 되면 여지없이 횟집과 노래방에서 고성 방가하는 사람들의 소음으로 인해 우리의 심령이 상하고 있습니다. 태어나 이렇게 시끄러운 곳은 처음입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주변을 자주 산책합니다. 집에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힙니다. 오래된 집의 기구들이 고장 나기 시작합니다. 수입은 하나도 없고, 생존을 위한 지출은 하나도 줄지 않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곧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작은 사무실 임대도 이미 생존의 절박감 때문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두어 달을 버틸 수 없어 뭔가 움직여야 함에도 우리의 사정은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누군가의 방해인지 모르지만 교회를 섬기고 싶은 소망도 줄줄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밤잠을 설치고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할 때도 한두 날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가 구덩이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자를 그곳에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날개 아래로 안으십니다. 안전한 곳, 살 수 있는 곳, 원수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곳.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공간의 선물입니다.

 

기대합니다. 아니 기대해야 합니다. 기도는 들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그분의 날개아래 모아 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마지막에 브루그만은 원수 갚음을 언급합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아직 제 안에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입니다. 하나님은 이 분노를 거두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쉽게 될까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브루그만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와 관련된다고 말합니다(109). 하나님과 내가 별게가 아니라 하나인 것이고, 나의 행동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럼 용서해야 하나요? 아니요. 먼저 우리가 지금 화가 나있고, 분노하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라고 합니다. 어떻게요? 맞아요. 그곳은 하나님 앞입니다. 누군가를 경망스럽게도 하나님은 쓰레기장이다.라고 하더군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인데, 너무나 적절한 표현은 분명합니다.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고 마음껏 원망해야 합니다. 분노하고, 좌절하고, 밉다고 말해야 합니다. 모든 더러움을 쏟아 내야 합니다. ‘그때서야 우리의 분노와 의분은 하나님의 긍휼에 양도되어질 수 있습니다(111). 맞아요. 우리가 원수를 갚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일만 있고, 원수는 하나님이 갚으셔야 옳습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마지막 충고입니다.

 

시편을 통해 이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는다. 더 값싸고, 더 쉽고, 교화된길은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걸어가실 길, 그 길은 원수 갚음을 자신의 아들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말아야할 죄인을 사랑한 하나님이 마음을 아들의 죽음 앞에서 찢어지고 짖이겨집니다. 그래서 사랑의 길은 고통스러운 것이고, 아픈 길입니다. 주님은 친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보! 거절감, 소외, 인내, 이 모든 것은 당신이 지금 하나님의 길을 걷기에 마땅히 감내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너무나 힘이 들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삶이 아픈 것이고요. 그래도 당신과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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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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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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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J. 맥네어, 에스더 L. 미크/유정희/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참석자가 혜택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은사를 가진 사람이 모여 자기 은사로 서로를 섬기는 유기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교회에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말이 굉장히 모순처럼 느껴진다. 가령 교회가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리를 매주 강단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지 혹은 배우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사항으로 가면 더 복잡하다. 성도의 교제가 충분히 친밀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성도의 영적 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보통 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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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리더십, 정의로운 교회
박윤성/글과길/고경태 편집위원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가 입은 심각한 충격은 성도 숫자 감소보다도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를 넘어서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러한 평가를 받은 요인은 교회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 있다고 우리는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윤성 목사(익산기쁨의교회 담임)도 코로나 시대의 리더십을 제언하는데, “정의로운 교회”를 테마로 설정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 교회에 있는 불공정한 모습을 제시했다...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맥아더 신약 주석 에베소서
존 맥아더/전의우/아바서원/정현욱 편집인


기다렸던 책이 출간되었다. 언젠가는 누가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손에 넣고 읽어보니 감개무량하다. 존 맥아더 목사는 한국 내에서도 워낙 유명한 저자이기에 필자의 설명이 굳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는 상당히 보수적 성경관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다움을 갖춘 목회자라는 점이다. 두 가지의 특징은 존 맥아더의 전부라고 말해도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매일 성경을 주해하고 설교해야 되는 설교자라면 그 어떤 주석보다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책...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칼 트루먼/윤석인/부흥과개혁사/조정의 편집위원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만 같다. 사적인 미디어 방송에서 동성연애,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공영방송에서도 이제 쉽게 성 혁명의 결과물을 발견한다. 사회 저명한 학자, 강사나 지도자,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시대 정신이 옳고 바른 길로 가는 중이라고 외친다. 대중의 다수가 이 흐름에 동조한다. 군대에서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은 행위는 무죄, 이를 조사한 행위는 조사받는다. 자기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는 남성 수영선수가 여성 수영대회 상을 휩쓸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탈 기독교 시대 전도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서상진 편집위원


전도..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전도가 참 잘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하는 총동원전도주일이라고 하는 이름하에 그동안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었던 대상자를 교회로 모시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함으로 결단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는 교회에 관한 말을 세상 속에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많은 고민이 있다. 펜데믹 이후에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또한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인생
임종구/다함/서상진 편집위원


“설교자의 인생” 책 제목이 참 좋다. 이 책의 저자인 임종구 목사는 10여년 전 경산의 한 교회의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모임에서 자신의 개척 시절의 처절하고 힘들었던 삶을 가감없이 전해주었고, 그런 삶이 자신의 목회의 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됨을 강조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지만, 그런 삶이 쉽지 않다. 이 세상에 설교에 관한 수많은 세미나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세미나 속에서 방법을 찾고, 강의를 하는 그 사람을 찾지 않는다. 세미나를 하기까지 그가 어떤 삶을 ...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교회의 재발견: 왜 그리스도의 몸은 필수적인가
콜린 핸슨, 조너선 리먼/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미국은 락다운(이동금지명령)과 셧다운(폐쇄 명령)으로 모든 비필수적 모임과 행사, 심지어 사업장 운영 등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건강 외적인 영역의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필수적”(essential)인 일들에 한하여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정책의 전환은 대한민국에서도 유사하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국가가 교회를 ‘필수적’이지 않다고 규정하고 모이기를 폐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참 교회는 스스로 ‘필수적’이지 않다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일상의 영적 전쟁: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
데이비드 폴리슨/권명지/토기장이/조정의 편집위원


<일상의 영적 전쟁: Standing Firm in Spiritual Battles>이란 제목을 봤을 때, 그리스도인의 성화, 영적 전쟁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다. 죄인이 거듭나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과정, 육체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육체와 세상과 마귀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 생각했다. 부제인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도 저자인 데이비드 폴리슨이 발전시킨 성경적 상담학의 주요 주제인 신자의 영적 성장과 관련된 책이란 걸 말해준다. 추천인...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탈기독교 시대 전도: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조정의 편집위원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시대는 없었다.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교회가 기다리는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악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새 하늘과 새 땅)이다. 어떤 사람은 중세 시대 교회와 정부가 결탁했을 때 기독교인이 세상을 지배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참된 기독교의 특징은 회심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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