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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냉소적인 시대에 신앙을 소통하기

크리스찬북뉴스 | 2017.10.26 08:27
냉소적인 시대에 신앙을 소통하기 팀 켈러의 설교/팀 켈러/채경락/두란노/김상일 편집위원

팀 켈러(Tim Keller)의 설교냉소적인 시대에 신앙을 소통하기(Preaching-Communicating Faith in an Age of Skepticism)는 독자들이 일반적으로 설교라는 주제에 대해서 기대하는 것과는 약간 다른 책입니다. 두가지 면에서 그러한데, 첫번째로, 이 책은 설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설교의 테크닉에 관한 부분이 말미에 약 20쪽 정도에 걸쳐서 나오긴 합니다만, 켈러 자신은 이 책이 설교의 어떻게에 관한 책이라기보다는, 설교의 무엇을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책 전체를 통해서 더욱 강조합니다. 따라서 그런 부분을 기대하고 읽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는 약간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켈러가 이 책에서 다루는 부분들은 설교자의 설교를 더욱 풍성하게, 더욱 근본적으로 설교라는 직무를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할 뿐 아니라, 틈틈이 켈러 자신이 뉴욕 맨하탄이라는 자신의 목회적 상황 속에서 어떤 문제들과 질문들에 부딪혔고, 그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노하우에 관해서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답을 여러 면에서 제공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이 책은 설교에 관한 책뿐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책은 책 첫 부분에서 다루듯이, 그리스도인의 말씀 사역” (ministry of the Word)의 세 가지 측면을 다루면서,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행해지는 공식적인 설교를 훨씬 넘어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을 소통하는데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다룹니다.

 

켈러는 성경에서 말하는 말씀 사역의 세가지 차원을 level 1, 2, 3로 나누고, 거기에는 설교(level 3: 근거-사도행전에 나타나는 바울과 베드로의 공적 설교들)를 포함해서,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공적인 신앙의 소통과 가르침(level 2: 근거-베드로 전서 4:10-11),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사람들과 신앙을 소통하고 교류하는 (level 1: 근거-골로새서 3:16) 이 세가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의 말씀 사역을 훨씬 더 풍성하게 다룹니다. 물론 설교가 가지는 독특한 중요성에 대해서도 절대 놓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설교가 오늘날의 교회에서 중요하고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만큼이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설교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신앙을 소통해야 할 의무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책은 단순히 기독교 사역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을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관심이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게 된 그리스도인들은 저절로 그러한 관심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 이 책의 전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을 대상으로 하게 되고,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각설하고, 켈러는 좋은 설교는 항상 두가지 책임을 수반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첫번째로 성경 본문에 대한 책임이며, 두번째는 특정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을 향한 책임입니다. 첫번째 책임과 두번째 책임은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것으로 하나로 귀결됩니다. 성경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현대를 살아가는 삶 속에 나타나시는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것, 그것이 설교자의 임무입니다. 그리고 켈러는 이런 작업을 위해서 세 가지 직무를 말합니다. 첫번째는 복음을 아는 것이며, 두번째는 특정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하면 변화하는지를 아는 것이며, 세번째는 설교자 자신의 깊은 내적 동기와 영적 성장을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서평은 이 세가지 직무를 켈러가 어떻게 다루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직무복음을 아는 것

 

켈러는 복음을 설명할 때 타력 구원으로서의 복음의 정반대 개념인 자기 구원(self-salvation)과 대치시켜서 설명합니다. 켈러에 의하면, 공동체 중심의 전통적인 사회에서도, 개인 중심의 현대의 서구 사회에서도, 자기 구원의 방식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것은 각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자기 가치를 세우는 방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에서 요구하는 기대치와 역할을 얼마나 충실하게 달성하느냐가 각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짓는 잣대가 됩니다. 현대의 서구 사회에서는 그와는 달리 공동체에서 무엇을 요구하는냐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각 개인이 얼마나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욕구를 잘 표현하느냐가 각 개인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짓는 잣대가 됩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가진 공통점은 정체성과 가치를 모두 개인의 노력과 열심으로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 이 두 가지 방식의 공통점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보듯이, 이런 식으로 자기 구원을 추구하는 사람, 즉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를 자력으로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다른 사람, 특히 자신보다 이런 노력을 덜하는 사람을 깔보거나, 혹은 이런 일에 더욱 뛰어난 사람에게 열등감을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일하고 노력한 만큼 하나님께 대가를 요구하려고 하며, 충분히 일하지 못했다고 느낄 경우 하나님께서 자신을 바라보시는 가치가 위축될 거라고 느끼며, 자신이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노력했다고 느낄 경우 자신의 가치가 더욱 인정받아야 한다고 하나님 앞에서 주장합니다. performance에서 identity를 찾게 될 경우 끊임없이 개인의 performance에 따라서 identity가 달라지게 되어 있으며, 그것은 끊임없는 비교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복음은 우리 각 개인의 identity를 우리 각자의 performance에 두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정에 두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그를 통한 정체성과 우리의 가치에서 시작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며 독특한 존재인지를 우리의 깊은 마음밭이 보게 되면 될 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더 선하고 독특한 열매들을 많이 내게 될 것이라고 복음은 말합니다.

 

이와 아울러, 자력 구원적 접근이 가진 맹점에 대해서 켈러가 경계하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도덕주의적 이해입니다. 즉 기독교는 착하고 정의롭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고, 그게 기독교의 전부라고 말하는 접근에 대해서 켈러는 매우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저절로 복음 = 도덕이라는 공식을 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켈러에게 있어서 이 공식을 깨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급선무가 됩니다. 이 공식을 깨지 않는 이상 사람들이 복음을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그대로 들을 방법은 없으며,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신자들에게서도 복음 = 도덕이라는 전제가 은연중에 발견되기 때문에, 켈러는 모든 설교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복음은 도덕이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도덕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선한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얻으려는 인간의 노력이라고 본다면, 도덕주의가 왜 자력 구원의 일환인지에 대해서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켈러는 이러한 도덕주의와 자력구원이 문화간 차이를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특별히 인류학자들에게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관련 자료 및 연구가 저에게는 없기 때문에 혹시 나중에 관련 연구를 보게 되면 추가적으로 생각을 나누는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두번째 직무특정 문화권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변화 역동을 이해하는 것

 

이 두번째 직무에 대해서 켈러는 첫번째 직무만큼이나, 혹은 그 보다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그만큼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이 처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고 신앙을 소통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켈러의 이 책은 이 부분(4, 5, 6)만으로도 충분히 책을 사서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켈러가 생각하는 신앙이 문화와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큰 그림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켈러가 이해하는 설교를 통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신학적 인간학에 대한 큰 그림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4장에서 켈러는 특정 문화권에 속한 사람들과 신앙에 관한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들과의 공감대를 찾는 것도, 무조건 그들을 향해서 반박하는 것도 아닌, 반박하고 도전하기 위해서 공감대를 찾으라고(adapting in order to confront) 말합니다. 이런 소통 방식에는 단순히 상대방과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전략적 차원을 넘어서는 켈러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즉 어떤 문화든지 간에 복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문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부분이 어떤 문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신앙을 소통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이 속한 문화 안에 있는 복음과의 접점, 즉 복음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소통하려고 하는 노력이 없이, 단순히 신앙을 소통하는 것을 기술적인 차원으로만 이해하기 시작하면 사랑이 없어지게 되고, 사랑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기독교 = 복음이라는 공식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켈러는 책 전체를 통해서 복음의 완벽한 타자성을 말합니다. 즉 복음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소유했다고 말할 수가 없기에, 어떤 경우에도 복음을 소통하려고 하는 내가 복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혹은 기독교가 복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하고 신앙을 소통하기 시작할 경우, 우리가 대화하는 대상을 향해서 우리는 은연 중에 우월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이 말하는 우리의 죄인됨에 정면으로 대치되며, 우리의 우리 된 것이 은혜를 통해서라는 바울의 고백에도 반대되는 마음가짐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계속해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켈러는 특별히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그들이 신뢰할 만한 자료를 인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다루는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인용했던 학자들의 저작을 언급하는데, 세속 문화의 흐름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가진 생각의 흐름을 읽어내고자 하는 설교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가이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 간단히 켈러가 각 주제에 대해서 제시하는 학자들을 언급하고 지나가겠습니다. 참고로, 여기 언급된 학자들은 모두 기독교 신자가 아니며, 때때로 무신론자들도 있습니다.

 

우상: 소설가이자 문학가이며, Pomona College 교수였던 David Foster Wallace는 스스로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를 섬기고 예배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기독교의 예배 개념과 접점을 찾을 만한 얘기를 한 것이지요. 아울러 그는 우상을 섬기는 것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 컬럼비아 대학의 Andrew Delbanco는 자신의 책 The Death of Satan에서 악과 사탄이 단지 사회구조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로만 환원되는 현대인의 문화적 관점이 악의 총체적 차원을 놓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특이한 주장이지만, Delbanco가 기독교 신앙이 없음에도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에서 충분히 신앙이 없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세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원죄: 영국의 무신론자 지식인이었지만, 이후에 신앙을 갖게 된 C.E.M. Joad는 원죄에 대한 거부 때문에 좌파 지식인들이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못할 때 실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즉 원죄 교리가 사람들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리서치를 해본다면 아마 굉장히 많은 경우 신자가 아닌 학자나 지식인들이 복음이 말하는 통찰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켈러는 말합니다. 남은 것은 설교자들이 계속해서 문화와의 대화를 통해서 공감대를 찾아가는 것이며,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근거 제시를 통해서 복음을 신뢰할 만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처한 문화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람은 복음을 듣고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켈러는 6Preaching to the Heart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켈러의 신학적 인간학의 핵심을 볼 수 있는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마음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 생각을 관장하는 이성도 아닙니다. 마음은 오히려 우리의 감정과 이성, 그리고 의지를 모두 관장하는, 우리의 모든 행동과 말의 중심이 되는 동기 구조(motivational structure)를 말합니다. 같은 차원에서, 켈러는 이 장에서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들의 질서 구조라는 말을 또 합니다. 즉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신뢰하든지 간에, 그것을 우리의 이성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감정은 그것을 가치있다고 느끼며, 우리의 의지는 그것을 할만한 일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제대로 선포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첫번째로 우리의 동기 구조가 드러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사랑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나게 되며, 두번째로 그러한 드러남을 통해서 복음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것보다 그리스도께서 더 우월하심을 설득하며 선포하며 보여줍니다. 이런 작업에서 복음에 대한 선포로서의 설교는 분명하고 논리적이어야 함과 함께, 또한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실제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시고 계심을 그들의 마음이 알 수 있도록, 즉 그들의 동기 구조에 균열이 갈 수 있도록 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알 수 있도록, 그들의 동기 구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도록 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습니다. 켈러는 자신과 대화했던 한 소녀의 예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이 된다는 말에 대해서 예를 들어 줍니다. 그 소녀는 자신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에 굉장히 상심하고 있었고, 켈러는 그 소녀를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내가 천국에 갈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 나를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한 명도 없는데 그 모든게 무슨 소용이죠?” 이 소녀의 마음에 대한 켈러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소녀를 향한 사랑은 이 소녀에게 있어서 실제적이지 않습니다. 이 소녀의 자기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남학생이 자신을 알아주고 좋아해주느냐 입니다. 따라서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면 이 소녀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해주시고 계시며, 그 사랑의 크시고 위대하심이 대단하기에 그 소녀가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 적어도 지금만큼 크게 마음을 어렵게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설교는 바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내는 작업입니다. , 복음이 선포될 때 이 소녀가 실제로 마음에 두고 있는 신뢰 구조, 동기 구조가 바뀐다는 말을 켈러는 하고 있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들은 켈러가 수많은 설교를 통해서 보여주었으니 그의 설교 한 편을 유튜브나 아이튠즈를 통해서 들어보시는게 이 글에서 예를 드는 것보다 더 빠를 것 같아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직무로 넘어갑니다.

 

세번째 직무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설교자 자신의 내적 동기와 영적 성장을 아는 것

 

마지막으로 켈러가 하고자 하는 말은, 설교는 복음을 알아야 하는 작업이며, 또 사람들과 문화를 알아야 하는 작업인 것 만큼이나 설교자 자신에 대해서 깊이 통찰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 까닭은, 설교자가 앞에서 얘기한 첫번째와 두번째 직무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없이도 자신의 재능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재능만으로 이런 일을 해내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저주 받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정작 자신은 복음에 의해서 도전받거나 변화받지 못하게 되는! 따라서 성령께서 설교자에게 주시는 통찰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능력입니다. 켈러는 이 얘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설교를 위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기 보다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보니 설교가 나오게 되는 것이 건강하다고 말입니다. 그만큼 계속적으로 말씀을 읽고 자주 규칙적으로 묵상하는 것이 설교자의 삶에 필수적이라는 얘기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켈러가 주목하는 것은, 그가 subtext라고 부르는,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언외의 뜻정도로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켈러는 설교자의 입에서 나오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각각의 설교자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바가 있음을 간파합니다. 어떤 경우에 그러한 의도는 설교자 자신이 얼마나 설교를 화려하게 잘 하는지 일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설교자가 속한 교단이나 교파, 혹은 특정 공동체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에 대한 긍정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설교자의 설교를 통해서 선포되는 진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마지막 경우 켈러가 특별히 조심하고자 하는 것은 진리 자체에 대한 높임이 그 자체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러한 선포가 많은 경우 신앙적 배경이 없는 비신자들에게는 무례함이 되거나 의도치 않은 배제로 연결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목적이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께로 이끌려고 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이러한 언외의 뜻이 얼마나 복음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나 있는지 금방 알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켈러가 가장 이상적으로 보는 설교의 언외의 뜻은 설교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시당하는 자와 약자, 가난한 자들의 구세주이시기에, 그리스도를 높이는 설교는 필연적으로 내부자와 외인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또한 신앙이 좋은 사람과 초신자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 앞에서 죄인이라고 선포함을 받으며, 또 동시에 모두가 의인이라고 선포함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어떤 개인의 행위나 노력 여하에 따라서 더욱 인정을 받고 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게 되는 설교만이 원래의 복음 선포라는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설교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미 몇 번 얘기했듯이 켈러의 신학적 인간학이 저에게 박사 과정의 공부를 시작할 수 있는 동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또한 박사 과정의 논문을 쓰는 것에도 켈러의 신학은 저에게 계속해서 큰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켈러가 속한 교단인 PCA(Presbyterian Church of America)의 교리적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켈러의 신학에는 교단적이고 교파적인 신학을 넘어서서 범교파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가 가능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켈러가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거인의 신학을 업고 있기에 그런 면도 있을 겁니다. 기회가 된다면 켈러가 에드워즈 신학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조사를 해보고 싶습니다. 일단 다음번에는 오늘 다루었던 설교에 관한 비전의 핵심이 되는 복음과, 복음을 통해서 변화된 인간의 마음이라는 두 주제가 어떻게 사회 정의의 근본적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룬 켈러의 Generous Justice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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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3시, 생각을 줍다
송미현 글/그림/좋은씨앗/문양호 편집위원


한동안 기독교출판에는 한두 컷 정도의 그림에 한두 문장의 묵상글이 담긴 책이 유행했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웹툰 형식의 기독교만화들이 등장했었다. 기독교내의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고 성경의 몇몇 책들의 주제들을 다루거나 신학적 주제를 다루는 등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그러한 시도들은 두껍거나 무거운 주제를 기피하는 시대적 풍조에 젖어있는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교회의 어두움에 대해 불만과 분노하는 세대들의 관심을 끌었고, 실제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책...
안식의 날을 폐하지 말라 안식의 날을 폐하지 말라
안식의 날: 제4계명의 재발견
이안 H. 머레이/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주일성수”라는 말이 있다.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일”이란 뜻이다. 많은 교회에서 주일성수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이를 어기면 마치 유대인이 안식일을 어기면 안 됐던 것처럼 정죄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막 2:27). 바리새인처럼 주일을 지키는 일 자체만 강조하다 보면 주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으로 사람이 주 안에서 얻는 행복과 유익을 되려 막을 수 있다. 주님께서 “주의 날”을 주신 목적을 상실하는 것이다.한편 오늘날 율법주의적인 주일 ...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칼빈의 팔복 강해
존 칼빈/김광남/비전북/조정의 편집위원


로버트 화이트는 이 책의 서론에서 주석과 설교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설교들은 주해와 관련하여 이 주석과 거의 동일한 해석 방향을 따른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대한 더 정교하고 미묘한 해석과 메시지를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의 그리스도인 청중에게도 지속적으로 적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주석과 다르다”(11쪽). 이 한마디로 <칼빈의 팔복 강해>를 읽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칼빈을 통해 성경 본문을 풀어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특별한 유익 때문이다. 모든 설교가 당시 청중...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
안영혁/목양/고경태 편집위원


“철학으로 세계를 묻고 믿음으로 다시 보다”, 마치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틸리히는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을 추구했다. 그러나 안영혁 박사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그런 관계성 유지보다는, 한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 살면서, 신학을 하면서 겪은 철학에 대한 좌충우돌 사고(思考)를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를 읽으면서, 불현듯 존 프레임의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이...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송인규/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송인규 교수님의 책을 그래도 상당히 관심가졌다고 생각했고 꽤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못읽은 것은 그럴수 있다 치더라도 제목도 몰랐던 책이 있었다는 것은 좀 자존심(?)에 금이 간다. 이번에 비아토르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낸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은 시리즈로 기획된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의 다음을 잇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십여년 전에 나왔을 때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보다는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좀 그런 면이 있는 듯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를 인상적으로 읽기도 했지만 주...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건강한 교회: 교회 건강의 개혁된 실천
도널드 J. 맥네어, 에스더 L. 미크/유정희/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참석자가 혜택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은사를 가진 사람이 모여 자기 은사로 서로를 섬기는 유기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교회에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말이 굉장히 모순처럼 느껴진다. 가령 교회가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리를 매주 강단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지 혹은 배우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사항으로 가면 더 복잡하다. 성도의 교제가 충분히 친밀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성도의 영적 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보통 컨설팅...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리더십, 정의로운 교회
박윤성/글과길/고경태 편집위원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가 입은 심각한 충격은 성도 숫자 감소보다도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를 넘어서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러한 평가를 받은 요인은 교회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 있다고 우리는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윤성 목사(익산기쁨의교회 담임)도 코로나 시대의 리더십을 제언하는데, “정의로운 교회”를 테마로 설정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 교회에 있는 불공정한 모습을 제시했다...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맥아더 신약 주석 에베소서
존 맥아더/전의우/아바서원/정현욱 편집인


기다렸던 책이 출간되었다. 언젠가는 누가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손에 넣고 읽어보니 감개무량하다. 존 맥아더 목사는 한국 내에서도 워낙 유명한 저자이기에 필자의 설명이 굳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는 상당히 보수적 성경관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다움을 갖춘 목회자라는 점이다. 두 가지의 특징은 존 맥아더의 전부라고 말해도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매일 성경을 주해하고 설교해야 되는 설교자라면 그 어떤 주석보다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책...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칼 트루먼/윤석인/부흥과개혁사/조정의 편집위원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만 같다. 사적인 미디어 방송에서 동성연애,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공영방송에서도 이제 쉽게 성 혁명의 결과물을 발견한다. 사회 저명한 학자, 강사나 지도자,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시대 정신이 옳고 바른 길로 가는 중이라고 외친다. 대중의 다수가 이 흐름에 동조한다. 군대에서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은 행위는 무죄, 이를 조사한 행위는 조사받는다. 자기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는 남성 수영선수가 여성 수영대회 상을 휩쓸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탈 기독교 시대 전도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서상진 편집위원


전도..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전도가 참 잘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하는 총동원전도주일이라고 하는 이름하에 그동안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었던 대상자를 교회로 모시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함으로 결단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는 교회에 관한 말을 세상 속에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많은 고민이 있다. 펜데믹 이후에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또한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인생
임종구/다함/서상진 편집위원


“설교자의 인생” 책 제목이 참 좋다. 이 책의 저자인 임종구 목사는 10여년 전 경산의 한 교회의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모임에서 자신의 개척 시절의 처절하고 힘들었던 삶을 가감없이 전해주었고, 그런 삶이 자신의 목회의 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됨을 강조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지만, 그런 삶이 쉽지 않다. 이 세상에 설교에 관한 수많은 세미나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세미나 속에서 방법을 찾고, 강의를 하는 그 사람을 찾지 않는다. 세미나를 하기까지 그가 어떤 삶을 ...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교회의 재발견: 왜 그리스도의 몸은 필수적인가
콜린 핸슨, 조너선 리먼/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미국은 락다운(이동금지명령)과 셧다운(폐쇄 명령)으로 모든 비필수적 모임과 행사, 심지어 사업장 운영 등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건강 외적인 영역의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필수적”(essential)인 일들에 한하여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정책의 전환은 대한민국에서도 유사하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국가가 교회를 ‘필수적’이지 않다고 규정하고 모이기를 폐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참 교회는 스스로 ‘필수적’이지 않다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일상의 영적 전쟁: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
데이비드 폴리슨/권명지/토기장이/조정의 편집위원


<일상의 영적 전쟁: Standing Firm in Spiritual Battles>이란 제목을 봤을 때, 그리스도인의 성화, 영적 전쟁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다. 죄인이 거듭나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과정, 육체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육체와 세상과 마귀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 생각했다. 부제인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도 저자인 데이비드 폴리슨이 발전시킨 성경적 상담학의 주요 주제인 신자의 영적 성장과 관련된 책이란 걸 말해준다. 추천인...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탈기독교 시대 전도: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조정의 편집위원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시대는 없었다.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교회가 기다리는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악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새 하늘과 새 땅)이다. 어떤 사람은 중세 시대 교회와 정부가 결탁했을 때 기독교인이 세상을 지배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참된 기독교의 특징은 회심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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