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교회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
종로 시내를 자주 다니는 분들은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나 골목을 유념하여 돌아다녀보면 의외의 사실과 재미를 맛보는 경우들이 있다. 운현궁이나 백선재 가옥, 딜쿠샤, 원서동 끝자락의 창덕궁의 시내 등에 역사적 유산이 당시의 건물이나 흔적으로 남아있는 모습들이 꽤 있다. 종로의 새로 지은 건물들은 과거의 유적으로 인해 1층이나 지하, 로비에 그 문화재나 터를 전시하도록 건물 설계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건물이나 흔적은 없지만 역사적 사건이 있었거나 역사적 건물이 있었던 곳은 길가에 표석을 세워 그 의미를 되새기기도 한다. 또 그런 흔적이 있는 곳은 아니어도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은 일본이 부정하는 역사를 항의하는 차원으로 소녀상을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은 우리의 현재 모습이 과거를 통해 어떻게 형성되어 왔으며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교회가 부패했으니 개혁하고 보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곤 하지만, 정작 교회의 본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신앙의 보수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자세히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은 우리 신앙의 뿌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함이 이유일 수 있다.
영음사는 박윤선 목사님의 성경주석을 발간하기 위해 세워진 출판사로 알고 있다. 지금은 덜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예전에는 박윤석 목사님의 성경주석은 헨드릭슨 주석과 더불어 신학생이 소장하고 싶어 하는 주석시리즈 중 하나였다.
특히 박윤선 목사님의 성경주석은 완간이라는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많은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성경주석을 내긴 했지만 성경 66권을 모두 완간한 분들은 의외로 손꼽을 정도다.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며 지난하고 어렵고 학자의 깊은 영성과 인내가 아니고서는 쉽지 않다고 할 것이다. 완간했다는 것 자체가 내용의 완성도를 떠나 과정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소천하신 박윤선 목사님에게서 더 이상의 신간은 나올 수 없기에 영음사는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시도들을 행하고 있다. 박윤선 목사님의 이전 책을 다시 편집해 내거나 미출간 원고를 찾아 발간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몇 달 전 나온 정암 박윤선 주석 성경은 그러한 일련의 연속석상의 작업 중에 하나, 아니 초대형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의 성경주석을 토대로 성경 각 66권의 서론과 구조를 구성하고 각 구절에 대해 해당 주석을 재배치하는 등의 노력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주석 성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외국 저자의 것을 번역하거나 국내에서 나온 것 중에 그 내용을 여러 곳에서 발췌 편집하여 실음으로써 그 내용의 출처나 신뢰성에 의문이 드는 것들이 어느 정도 있었다. 비록 이전과 달리 이런 주석 성경의 인기가 사라지고–성경이나 책들의 판매자체가 줄어든 것 같다-있지만 정암 박윤선 주석성경의 발간은 그 자체로만도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성경은 지금 목회자나 성도들에게는 관심도나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현대 신학의 발달과 새로운 학설도 그렇지만 성경과 신학에 있어서 지나치게 보수적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견 옳을 수 있다. 그 점은 우리가 감안해서 이 성경주석을 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분이 가진 깊은 영성과 신앙의 뜨거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한국교회의 역사와 성장에는 박윤선 같은 목회자의 기도와 학자로서의 열정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종로 길가에 표석만 남은 독립운동가의 집터 흔적 마냥 우리 신앙의 역사를 간과하고 잊는 것일지 모른다. 과거에 집착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인식하고 그분들의 신앙의 뜨거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는 과거의 신학자나 목사님들보다 신학을 더 잘 알고 세련된 말을 하는 이들도 많다. 과거보다 대형교회도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목회자들의 내면이 과연 얼마나 더 뜨겁고 깊이가 있는지, 교회를 가득 채운 성도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기도와 말씀 사랑이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에 대해 비판하거나 ‘보수는 문제다’라고 쉽게 단정 지어 판단할 자격이 없다. 과거가 무조건 옳다거나 그분들을 영웅시하는 것은 문제지만, 그분들을 과거의 분이라고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스승을 귀히 여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험한 신앙의 길을 걸어가신 거두의 유산을 되새김질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나 찰스 스펄전, 아서 핑크 같은 목회자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보다 한발자국 앞서 신앙의 가시밭길을 먼저 가신 분들을 기억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추신: 이 성경이 일반서점의 매대는 차치하고서라도 기독교서점의 매대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함은 못내 아쉽다. 또 제작비 여건과 수요의 문제이기도 했겠지만 찬송가 합본이 없다는 것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