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선생님의 다독임 같은 책, 시대 묵상
어느 신학 포럼에서 교수님 한 분이 본인의 연구를 차근차근 발표하고 계셨다.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지만 단정한 모습의 노교수님은 강의하듯이 몇 가지 주요 개념들을 명확하고 자세히 설명하였다. 설명은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란 무엇인지 고찰하는 부분까지 확대되었다. 그는 설명 중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이 가까워져 올수록 두렵다고 말했다. 평생 신학자, 교수, 그리고 목사로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죄인인 자신을 발견할 뿐이며,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을 깨달을 뿐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회개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또 깊은 감사가 무겁게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순간이 기대되는 동시에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두렵다고 했다.
그날 포럼의 모든 주제는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였지만, 어떤 주장들보다 노교수님의 발표 속 짧은 고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하여 포럼이 끝나고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의 인터넷 창으로 교수님의 성함을 검색하였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을 가르치시는 박영돈 교수님이었다.
“개혁신학을 운운하기 전에 참된 인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개혁주의는 진리로 지적 교만과 허영, 자기 중심성에서 자유롭게 하여 우리를 자기 부인과 겸손, 온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사상이자 운동이다”(173쪽).
사실 포럼에서 처음 뵌 분이라 어떤 이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단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그의 신학과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함은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학교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고,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 읽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설교와 강의를 듣고 교수님의 저서들도 틈틈이 읽는 중에, 직접 배우지는 못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박영돈 교수님은 나에게도 선생님이 되었다.
그런 그가 <시대 묵상>(IVP)이라는 제목의 글로 모두에게 선생님으로 찾아 왔다. 가정에서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 목회자이자 그리스도인으로, 또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 그리고 자유의지를 지닌 평범한 인간으로서 삶 속의 소소한 경험과 생각들을 진솔하게 적어 들려준다.
정갈한 언어 속에는 간간이 유머도 담겨 있고, 신학자의 지식도 엿보이며, 깊은 성찰도 담백하게 배어 있다. 그의 삶 속 묵상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할지 그 방향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이 가져다주는 구원의 가치를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하여 박영돈 교수님을 선생님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묵상집이 의미 있는 이유는 추상적인 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벼운 에피소드 같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일들이나 제기했을 질문들, 그렇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며 이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교회들과 성도들을 돌아본다.
“분명히 기억하라. 이 나라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의 길을 따를 때 하나님이 이 땅을 지키시고 축복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혐오하시는 불의를 묵과하고 옹호할 때 이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이 땅을 지키시는 전능자가 그의 손을 거두시기 때문이다”(253쪽).
또한, 묵상의 글 곳곳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향한 염려와 사랑도 스며 있다. 그래서인지 1인칭 서술임에도 대화처럼 느껴진다.
“수고스럽게 공부한 고학력자들이 졸업하면 적은 사례를 받으며 부교역자 생활을 오래 해야 한다. 이에 더해 사회에 팽배한 목사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과 차가운 시선도 감내해야 한다. 부디 타락한 일부 목사들 때문에 새벽빛같이 신선한 젊은 사역자들까지 싸잡아 매도하지 않으면 좋겠다. 냉대와 고난의 협착한 길을 걷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성령의 큰 위로가 있기를”. (176~177쪽).
모든 연령대에 참 좋을 책이다. 그중에서도 20대의 청년들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이제 막 사회 속에 들어가 고군분투하고, 부조리와 불평등에 갈등하는, 그리고 믿음을 불안정하게 여길 수도 있는 청년들이 그러한 중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여전히 그 섭리 안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성인이 되었어도 그 속에는 아직 등을 다독거려 줄 어린이가 앉아 있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선생님의 따뜻한 관심을 나누고 싶다.
“흠집을 파내기 위해 매섭고 핏발 선 눈빛들만 이글거리는 험악하고 흉흉한 세상이지만, 사랑과 긍휼의 눈빛으로 자격 없는 나를 바라봐 주는 제자들이 있다. 그들의 눈빛이 내가 사랑의 빚을 갚는 눈빛을 가진 선생이 되는 기적을 일으켜 주리라”(39쪽).
“젊은이들이 학업과 삶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가 모처럼 며칠 동안 말씀에 집중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에 푹 잠기는 시간을 갖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복된 일이다...이번 여름에도 모든 수련회와 집회에 영혼들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풍성한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새벽빛 같은 주의 청년들이 나오기를 기도한다”(87쪽).
저자 박영돈
신앙인이자 교회의 선생으로서 사회 구조 악이 횡행하고 불의가 판치는 시대, 곧 하나님의 공의와 선하심을 거스르는 반역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교회와 사회의 어지러운 사건들을 신학적 시각으로 성찰하는 글들을 써 왔다. 더불어 개인의 신앙적 고민과 기쁨 등 일상의 소소한 삶들도 함께 나눔으로써 독자들과 소통하는 공감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의 풀러 신학교(MAT), 칼빈 신학교(Th.M.), 예일 대학교(STM), 웨스트민스터 신학교(Ph.D.)에서 공부했다. 현재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 교수로 구원론, 성령론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서울 작은목자들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일그러진 한국 교회의 얼굴』, 『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이상 IVP), 『성령 충만, 실패한 이들을 위한 은혜』(SFC), 『별들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복있는사람)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