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넓은 소망, 그러나 좁은 문
이 책은 부흥과개혁사의 비교신학 시리즈 3권으로,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 미전도인의 운명에 대한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은 시작부터 매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만약 예수님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모두를 사랑하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31p) 뿐만 아니라 일찍이 죽은 유아들이나 정신박약자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또한 믿음도 가질 수 없는데, 모두 지옥에 가야 하는 것인가?
게다가 예수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를 죄에서 속량하기 위한 죽음을 죽으셨고,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셨건만, 부활이 있기 전,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모두 도망갔던 제자들과 사도들이 성령을 받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선포하기 이전,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이 죽음의 의미를 몰랐거나, 그 속죄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이 되는 것인가?
또한 독자가 대답을 준비해야 하는 부분은 이렇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는데,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없는 분이 되고 만다. 게다가 만약 구원이 인간의 전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면,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의 실패와 불순종 때문에 영원히 고통 받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심판받는 이유는 기독교인의 선교하지 않는 죄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인가?”(78p)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하다 할지라도 구원받았을 것이라고 믿고, 또 인류의 대다수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혹은 믿음과 상관없이 구원”(75p)받을 수 있다고 보며, “창조와 섭리를 통해 계시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15p)고 보는 것을 <넓은 소망으로서 포괄적 구원론>이라고 부르며, 존 웨슬리, C. S. 루이스, 클락 핀녹 등이 이 관점을 지지하며, 오크힐 성경대학의 신학 및 철학 교수, 존 샌더스가 이 이론을 대변한다.
두 번째,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인류전체에게 알리시는 일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다시 말해 복음을 모든 개개인에게 전파하기까지 끝까지 인내하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복음을 더 멀리, 더 편만하게 전파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시며, 만일 우리가 도달하지 못해 전파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끝까지 그들에게 말씀을 전파하신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면, 하나님은 저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우리를 통해, 저 세상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남김없이 복음을 전하시는 것이다(110-111p). 이것을 <신적 견인론, 또는 사후 전도론>이라 부르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조지 맥도럴드, 도널드 블러쉬 등이 이 관점을 지지하며, 앤도버 뉴턴 신학교의 신학 교수, 가브리엘 파크레가 이 이론을 대변한다.
세 번째, 예수님만을 유일한 구원자로 보며, 하나님의 구원 은혜를 전달해주는 다른 구원자는 없으며, 다른 종교도 없다(165p). 따라서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인 신앙이 구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166p)으로 보며, “인간의 육체적인 죽음은 하나님의 구원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종결되는 것”(166p)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이 외의 다른 구원방법을 말하는 것은 일반 계시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음을 의미하며, 천국에는 “서로 다른 길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온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175p)으로 가득하게 될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구원받기 위해 특별 계시나 복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을 이유가 없어지게”(175p) 되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론은 “궤변”(208p)에 불과한 것이 된다. 이것을 <제한적 구원론>이라고 부르며, 아우구스티누스, 존 칼빈, 조나단 에드워즈 등이 이 관점을 지지하며, 리폼드 신학교의 신학 및 철학 교수, 로널드 내쉬가 이 이론을 대변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사랑이 많고 넓은 소망을 예비하신 하나님과 구원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사이에서 충분히 고민하게 될 것이며, “과연 은혜로우신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범위”(55p)는 어디까지 일까를 깊이 사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결과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넓은 마음의 하나님을 집에서 찬송하던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지상대명령에 순종하고자 복음을 들고 뛰쳐나가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