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렉시오 디비나’ 방식으로 창세기를 묵상하다
『창세기로 예배하다』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모세오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를 묵상한 책이다.
첫째, 저자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방식으로 <창세기>를 묵상한다.
‘렉시오 디비나’는 교회의 오랜 전통인 ‘거룩한 독서’ 방식이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먼저 집중해서 읽고(Lectio), 깊이 묵상한다(meditato). 묵상은 삶의 자리와 연결되며,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에 삶의 문제와 대면하게 한다. 우리를 기도의 세계로 인도하며(oratio), 말씀에서 출발한 기도는 진리의 세계로 이끈다. 하나님과 만나는 기회를 줄 것이며, 그 경험은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머무는 시간으로 인도한다(contemplato). 마지막으로 거룩한 독서는 신행으로 이끌 것이다(actio).” 저자에 따르면, 이 ‘묵상’ 방식을 통해 “우리는 특정한 장소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진리와 영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저자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온라인 예배를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달았다.
“첫째, 예배는 어디에서나 드려진다는 것입니다. 꼭 특정한 장소에서 드리는 것만이 온전한 예배가 아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함께 드리는 공동체 예배의 중요성이 무시되거나 감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둘째, 생활 속의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습니다. 온라인 예배를 통해 온 가족이 함께(어린이를 포함하여) 드리는 공동체적 예배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교회의 소중함과 일상에서 맞이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 기회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결코 사회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종교가 존재와 존속을 위해 사회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세상을 썩지 않게 하고, '빛'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제 역할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에 깔고 저자는 <창세기>의 메시지를 곰곰이 묵상하고 세밀하게 탐색하고 실천적으로 적용한다. 『창세기로 예배하다』에서 독자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방식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둘째, 『창세기로 예배하다』는 창세기의 사건과 인물들을 새로운 지평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무엇보다 먼저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구약의 신학적인 주석과 주해를 기본으로 했지만 어려운 신학적 용어를 탈피하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했다. 이 책은 ‘모세오경 1’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앞으로 발간될 모세오경의 나머지 책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창세기>가 우주론적인 면에서 사람과 인생, 그리고 우주 세계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면 <출애굽기>의 관심은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레위기>는 주로 제사를 비롯한 종교 예식에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진정한 종교의 기능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민수기>는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이르기 전까지의 광야 이야기다. 난민, 떠돌이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가장 평범한 사건 속에서 떠돌이 백성들의 회로애락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 속에서 광야의 삶을 사는 오늘의 삶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사회와 삶을 규정하는 율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진정한 법은 사람을 위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는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선포하며 시작한다. 하나님 존재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셨다. 어떤 과정을 통하여 만들었는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창조기록의 본질은 ‘인간이 진화했느냐, 완제품이냐’가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인 역시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17쪽)
하나님은 좋은 세상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갈 것을 인간에게 맡기셨다. 하나님의 “좋았다”는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어가야 할 창조 사역이다. 하나님의 일꾼(agent)인 우리는 하나님 사역을 계승하여 더 좋은 세상,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하나님의 창조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저마다 가치 있게 만드신 세상이다. 다양한 세상에서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면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세상을 다양하게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혼자가 아니라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로 만드셨다. 서로 돕고 의지하는 관계일 때 인간은 인간다워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만드셔서 인간의 기초적인 관계를 시작하셨다... 서로 다르면서 조화롭다는 것은 인생에 풍요로움을 더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신 것은 삶에 긴장과 갈등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여유롭고 느긋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22쪽)
『창세기로 예배하다』는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들의 믿음과 삶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심도 있게 묵상한다. 뿐만 아니라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방식으로 본문을 음미하고 되새김질 하도록 인도한다. 더 나아가 묵상을 통해 기도와 하나님을 바라봄과 신행(信行)의 실천까지 이르도록 돕고 있다. 저자가 독자를 이끄는 방식은 구름 위에서 올라오라고 부르는 ‘지시’나 ‘훈계’가 아니다. 독자의 손을 잡고 동행하는 방식이다. 지치면 등을 밀어주면서 격려하는 방식으로 독자를 말씀의 향연으로 초대한다.
셋째, 독자는 저자가 전해주는 독특한 향미의 성경 해석을 맛볼 수 있다.
저자는 전에 맛보지 못한 성경의 향취를 경험하게 한다. 동시에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육화(肉化)되어야함을 거듭 강조하고 도전한다.
저자는 ‘선악과’라는 난제를 다루면서, ‘선악과나무의 의미는 멈춤’이라고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모든 행위가 멈춤 없이 가능하면 그 행위는 결국 우리를 파괴하고 죽음으로 이끌고 만다. 오늘 삶의 위기는 바로 선악과나무 앞에서 멈추지 않기에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에덴은 우리에게 “여기까지!”라는 멈춤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앙은 멈추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멈춤의 가치를 올바르게 실현할 때 진정한 생명 나무의 열매를 즐길 수 있다... 멈춤 없는 사회를 향해 믿는 이들이 멈춤의 가치를 보여야 한다. 우리 모두 달려가기만 하지 말고 잠시 멈추어 이웃과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돌아보면서 아름다운 세상,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달려가고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선악과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열매로 향하는 손을 멈춤으로써 진성한 생명의 세계를 회복하자. 에덴이 에덴인 것은 멈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과 이 사회가 에덴이 되려면 멈춤이 있어야 한다. 멈춤이 없기에 모든 것을 차지했으면서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멈추면 죽을까? 멈추면 퇴보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 멈춤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멈춤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방법과 세계를 만나게 한 것이다.”(30쪽) 저자의 통찰은 신선하고 의미심장하다.
저자는 소위 ‘원죄’를 다르면서 “죄는 외부에서 오는가?”라고 묻고 이렇게 답한다. “아니다. 성서는 인간의 죄는 사탄의 작품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것들이라고 했다. 죄는 인간의 문제이다. 사탄이 동기를 부여할 수는 있다... 동기를 해석하고 마음에 두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다. 인간이 죄 행위의 원인을 사탄에게 전가한다면 사탄은 억울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서는 죄 행위에서 인간의 의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면 “죄 행위의 결과는 무엇인가?” 인간은 역설적으로 두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한다. “눈이 밝아지는 것이 지혜가 밝아져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통찰했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형성이며 영악함에 대해 밝아졌다는 것이다.”(32쪽) 저자에 따르면, 죄 행위의 결과로 인간은 자신을 감추기 시작한다. 위선의 옷을 입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양심의 가책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양심의 가책을 경험한다는 것은 막혀 있는 삶의 구체적인 걸과이며 표현이다. 모든 것이 막혀버린 삶이 되고 말았다. 앞을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돌아봐도 막혀 있는 삶이다.” 죄의 결과는 한마디로 ‘소통이 끊긴 삶’이다.
그러면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희망은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네가 어디에 있느냐?”라고 질문하는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고 계신다. “우리는 희망 자체를 논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존재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나 중심’의 욕망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지 않으신다면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참으로 우리 존재의 심부(深部)를 찌르는 지적이다. “희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부끄러운 감정에서 시작한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사회는 황량한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저지른 우리에게 첫 감정으로 후회, 회개 혹은 통렬한 반성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주신 것이 아닐까.”(33쪽)
저자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뜻밖의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엄청난 것을 요구하신다. 아들 이삭을 희생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이었다. 어떻게 얻은 아들인데!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시다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별다른 서항 없이 아들 이삭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회생 제물이 없음을 이상하게 여기는 이들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면서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다.”(114쪽)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실행했다.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그냥 받아들이고 신뢰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신뢰해야 한다. 인간이 이해하는 폭을 넘어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 믿는 이의 기본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신뢰는 희생 제물이 없어서 이상히 여기는 아들의 답변에 여실히 드러난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6절)
아브라함은 이리저리 계산해서 이익을 따지고 않았다.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명령이 나의 취향에 맞는지를 따진다. 혹은 믿음을 철학이나 정신적인 유회 정도로 한정 짓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실천하는 순종, 그 믿음은 우리에게 믿음의 아버지로서 참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115쪽).
저자는 이삭을 ‘평화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의 위기를 넘긴 이삭은 점차 안정된 생활을 되찾고 재산도 늘어 어느덧 부자가 되었다.
“비록 나그네였지만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부자가 된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나그네로 살던 사람이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되고 안정된 생활을 하면 본토 사람들이 시기하고 질시하기 마련이다. 이삭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삭이 부자 됨을 시기하는 지역 주민들은 사사건건 이삭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특히 우물을 둘러싼 시비는 집요했다.”(137쪽)
이삭이 우물을 파고 정착하여 가축들을 사육하면 주민들은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렸다. 이삭은 수차례 분쟁에 휘말렸다. “그는 떠돌이로 살다 정착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다. 이삭은 이민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조상으로 불릴 만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조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한국 이민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이삭 이 아닐까. 이삭이 지역 주민들과의 싸움을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이민자로서 지혜로운 삶을 위한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138쪽) 이삭의 경험을 한국 이민자들에게 적용하는 저자의 시각은 참신하다.
“이삭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변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몰러와시 싸움을 걸어도 맞서 싸우지 않았다. 사람들이 우물을 흙으로 메워놓고 이삭이 파 놓은 우물을 자기 것이라고 우겨도 맞서지 않았다. 조용히 그 사리를 피하기만 했다. 달라고 하면 주고 또 다른 자리로 옮기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삭의 행동은 소극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한 그는 어떤 해코지를 당해도 그들에게 독을 품지 않았다. 그들과 맞서지 않았다. 오히려 온유한 마음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이삭의 행동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 세 차례나 양보 끝에 마침내 이삭은 평온을 되찾았다. 싸워서 이긴 평온이 아니다. 온화한 행동으로 되찾은 평온이었기에 그것은 진실 되고 값진 것이었다. 아무도 더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우리의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성서의 기록이 아닐까. 결국 온유함이 땅을 차지한다는 주님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는 이삭의 일생이다.”(138-139쪽)
저자는 요셉의 생애를 살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의 깊은 내면으로부터 빛이 새어나오다. 그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힐 뿐만 아니라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이 세대를 향하여 희망을 던져줄 수 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요셉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의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 삶의 깊은 곳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돌보는 삶이 되어야 한다. 창세기 39장은 요셉의 삶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돌보심을 강조하고 있다.”(211쪽) “요셉은 사람들의 평판에 인생이 좌우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깊이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칭찬에 우쭐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비난에 위축되지 않는 평온의 사람 요셉, 그는 진정 예수님의 구약적 모델이라는 평을 받을 만한 신앙의 경지에 이르렀다.”(216쪽)
앞서 설명한바와 같이 『창세기로 예배하다』는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방식으로 <창세기>를 묵상한다. 저자를 가이드 삼아 떠나는 그 여정은 신뢰할만하고 유익하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소중한 선물들이 반짝거리며 곳곳에서 독자를 기다리는 책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무엇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독자 자신의 영적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리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이라는 현실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성경 본문에 관한 깊은 묵상과 균형 있는 본문 이해 그리고 신학적 통찰이 잘 버무려진 이 책은 ‘현대적 고전’의 위치에 오를만한 양서다. 창세기를 배우고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손 가까이 두고 천천히 음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