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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들을 경배하라!

정현욱 | 2019.06.17 00:01
아들을 경배하라! 아들을 경배함-초창기 기독교 예배 의식 속의 예수/래리 허타도/송동민/이레서원/정현욱 편집인

예수는 언제부터 경배 받았을까? ‘하나님=로고스=성육신=예수라는 요한문헌 공식에 익숙한 보수한국기독교인들에게 앞선 질문은 낯설고 어색하다. 그러나 세계 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핫 이슈 중의 하나는 아이러니하게 예수는 누구인가?’이다. 해외의 저작물은 차치(且置)하더라도 번역되거나 한국 신학 논문의 주제들의 상당한 분량이 초기 기독교초기 기독론에 몰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새 관점주의자로 불리는 제임스 던(James D.G. Dunn)예수와 기독교의 기원 상·를 비롯하여,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예수』 『예수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래리 허타도(Larry W. Hurtado)주 예수 그리스도들은 초기 기독교론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많은가를 방증하는 자료들이다.

 

총신대학교 김대웅 교수의 요한계시록과 인자 기독론과 칠십인경 다니엘서의 메시아 사상의 경우 초대교회 안에 예수가 어떤 과정을 통해 경배 받았는가를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잘 설명해 준다. 대신대학교 박윤 교수도 예수의 두 얼굴이란 논문을 통해 마가복음에 드러난 고기독론을 통해 초대교회가 어떻게 예수를 하나님으로 섬겨왔는지를 논증한다. 이 외에도 수많은 논문과 책들이 계속하여 번역 출간되고 있으며, 예수가 초대교회 안에 초기부터 하나님으로서 경배 받아왔음이 증언되고 있다.

 

최근 들어 신약신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초기 기독론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기독교적 변증이다. 종교사학파를 비롯한 고등비평가들을 통해 초기 기독교가 이방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1880-90년대 독일 괴팅겐 대학의 교수들로 이루어진 종교사학파(history of religions school)들은 초기 기독교가 이방종교의 영향아래 형성된 집단으로 치부했다. 헤르만 궁켈을 비롯한 에른스트 트뢸치, 루돌프 오토 등이 중심이 된 이 학파는 특히 구약학자인 궁켈보다 신약학자였던 빌헬름 부세트의 영향력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리츨(Albrecht Benjamn Ritschl, 1822-1889)의 후예답게 그들은 신화적 요소를 걸러내고 철저히 역사와 문서 비평을 통해 종교가 시대적으로 변화했음을 주장한다. 즉 초기의 에니미즘(animism)에서 다신론(polytheism)으로, 다시 일신론(henotheism)을 거쳐, 유일신론(monotheism)으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세트는 다시 오실 인자를 기다렸던 것이지, 신앙과 경배의 대상이었던 (퀴리오스, κύριος)’로 여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마르틴 헹엘은 유대교와 헬레니즘을 통해 종교사학의 주장을 반박한다. 종교사학파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엄격하게 구분되었다고 말하며, 예루살렘 중심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와 바울 중심의 디아스포라 기독교를 적의적으로 긴장 관계로 구분한다. 헹엘은 예루살렘 중심의 기독교와 바울 중심의 팔레스타인 중심 기독교가 어느 정도 긴장을 유지했지만 적의적이지 않았으며, 예루살렘 중심의 기독교 역시 헬라적 영향 아래에서 디아스포라 교회의 정서를 공유했다고 주장한다. 래리 허타도는 예루살렘 중심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에 중심을 두면서도 바울의 서신 속에서도 동일하게 예수가 주로 고백되었으며, 경배의 대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방대한 작업을 통해 밝힌 것이 그의 대작 주 예수 그리스도이며, 이번에 번역 출간된 아들을 경배함은 초기 기독교 예배 의식 속에 예수가 어떻게 경배 되었는가를 밝히고 있다.

 

허타도의 공헌은 헬레니즘 시대 속에서 살아있는 황제가 신으로 숭배 받던 시절 속에서 예수가 경배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이 책은 초대 기독교가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 있지만 기독교가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에 걸쳐 그리스-로마 세계의 관념들에 동화된 결과 생겨난 산물이 아니라는 것’(13)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다면 신으로 추방 받는 로마 황제와 예수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의 부활’(15)에 있다. 허타도는 이러한 초대교회 예수 경배 의식은 로마 시대의 황제 숭배나 다른 종교와도 엄격하게 구별되며, 초대교회 예배 안에 존재했다고 밝힌다. 허타도는 2장에서 고대 세계의 예배를 살핀 다음, 3장에서 고대 유대교의 유일신론을 점검한다. 결국 초대 기독교는 유대교에 뿌리를 박고 있는 동시에 기존의 유일신론을 뛰어넘는 변이라는 사실을 4장에서 밝혀낸다. 마지막에 해당하는 5장에서는 초대 기독교 예배 의식 속에서 예수는 어떤 존재인가를 밝힌다는 점에서 현대 교회가 신앙하는 예수 경배가 결코 후대에 첨가된 것이 아님을 증명한다.

 

허타도의 이러한 업적이 중요한 이유는 최근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을 비롯한 일부의 학자들이 예수 경배가 1세기 후반에 형성된 것으로 주장하기 때문이다(33). 허타도는 문헌상 증거들을 통해 기독교 신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진적이고 체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의견에 동의한다. 유일신론을 신앙하는 유대인들에게 성부 하나님이 아닌 예수의 경배는 놀라운 것이다. 특히 사람이었던 예수에 대한 신적 경배는 신성모독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예수에 대한 경배는 숭앙의 대상인 주님으로 예수가 인정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이른 시기부터 급격히 확산된 현상’(35)이라는 것이다. 리처드 보컴(Richard J. Bauckham)도 헹엘의 입장에 동조하며 여러 논문들을 통해 기독교 초기부터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하게 예배의 대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37). 보컴은 예수를 향한 예배를, 예수가 하나님의 보좌를 공유하며 세상을 창조하는 신적인 행위에 동참한다는 구체적인 신념의 초기 결과물로’(38) 본다.

 

유대인들의 유일신론의 핵심은 모든 경배와 숭배의 대상은 야훼 하나님이다. 그 어떤 신이나 우상(모형)까지도 거부되었다. 제사와 기도, 경배의 대상은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드렸다(73). 헬레니즘이 극심한 시기에 핫시딤을 중심으로 한 경건한 유대인들은 율법에 더욱 천착하게 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에셋파는 종종 사회를 떠나 광야나 사막 지역에 자신들만의 독립된 공동체를 형성했다. 쿰란 지역의 존재했던 이들도 에셋파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러한 유일신론에 집착한 극단적 경건주의자들도 사람을 하나님처럼 경배하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들은 인자로 표현되는 단어나(특히 다니엘과 에녹1서 등) 메시아(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들을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해 줄 것을 기대했다. 그렇지만 인자나 그리스도는 결코 숭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경배는 오직 유일하신 야훼 하나님뿐이다. 그럼 유대인들이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예수를 경배했을까?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 문헌 속에서 기존의 유대문헌과 상이한 변이(mutation)’을 감지한다.

 

이 형태에서는 부활하신/높이 되신 예수께서 하나님과 함께 실질적으로 의식에 의한 섬김의 공동 대상이 되시며, 독특하고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86).

 

즉 부활과 승귀는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다(1:4). 초대문헌 중에서 가장 초기 문헌에 속하는 바울 서신들에서는 예수를 그리스도’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κύριος)’ 등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이른 초기에도 함께 모인 예배 공동체의 주님이자, 신자들이 순종하고 기원을 드리며 경배해야 할 존재로서’(87) 인식했던 것이다. 약간 후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에서만 예수를 경배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미 예수를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아였으며,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신적 지위를 지닌’(100) 예배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예수의 이름을 불렀으며, ‘예수의 이름으로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했다. 구약 속에서 이러한 용례들은 하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특히 요엘 3:32의 문구는 로마서 10:13에서 거의 비슷하게 인용된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2:3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0:13).

 

이러한 예수에 대한 표현과 기원들은 예수가 명백히 초창기 기독교에서 실천한 예배/신앙 의식의 중심부에 있었다는 점’(108)을 보여준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숭배는 유대인들의 유일신론을 뛰어넘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또한 헬레니즘의 영향 아래 일어난 이방종교의 유입이 아닌 구약의 성취로 이루어진 예수의 부활로 인해 촉진된 사건이다. 예수에 대한 숭배는 살아있는 신들로 불린 로마 황제들에게 기독교의 반응이었다. 경배해야할 대상은 황제인 가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라는 것이다. 신약성경 안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주 예수 그리스도(Κυρίου ησοΧριστοῦ)’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고백했던 신앙 고백이며, 경배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또한 구약의 예언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 야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었다고 보는 신학적 해석이었다. 허타도는 짧고도 강력하게 고기독론(High Christology)’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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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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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몬드 딜라드는 WBC 성경 주석 시리즈 중 <역대하>를 집필한 성경학자이고(솔로몬, 2005), 이번에 좋은씨앗에서 출간된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 읽기>와 함께 단 두 권의 책이 국내 보급되었다. 출판사는 딜라드에 관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데 정평이 난 학자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는데, 그의 책을 추천한 사람 중에서 싱클레어 퍼거슨과 D. A. 카슨, 모세스 실바 등 건전하고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데 헌신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있어서, 다소 생소한 딜라드 역시 신뢰할...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목적과 의미가 충만한 시간을 사는 예수의 원칙
조던 레이너/정성묵/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솔직히 시간 관리에 관한 신앙 서적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케빈 드영의 <미친 듯이 바쁜>(부흥과개혁사, 2013)이다. 생산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삶을 오히려 규모 없게, 목적을 상실한 채 살지 않도록 경고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고 충성스럽게 살라고(왜 바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좋은 책이었다. 2019년에는 팀 챌리스가 쓴 <Do More Better: A Practical Guide to Productivity>를 번역해서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실천해 ...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1: 로마서 1-2장
김병훈/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나그네 교회 담임목사이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김병훈이 쓴 책 중에서 처음 읽어본 것은 개혁된실천사에서 출간된 <슬픈 인생과 그리스도의 위로>였다(2021). 책 제목만 보고 가졌던 선입견이 금세 무너졌다. 저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여러 신앙 서적이 그렇듯 몇 구절의 성경 본문을 가볍게 훑고 나서 숯한 예화와 쉴 새 없는 권면으로 독자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해가 풍성한 책이었다. 그 말은 저자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연구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그런 저자의 열심...
개혁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심을 원료로 한다 개혁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심을 원료로 한다
종교개혁 신학: 조직신학 관점의 개요
매튜 바렛 외/스데반 황/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개혁'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점을 전제하고, 기독교 개혁은 언제나 현재지향적이기보다 과거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빈, 루터교회와 개혁주의 교회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역사적 신학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가운데 선포된 종교개혁자들의 통일성 있는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계속해서 유익을 끼치는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은 온건한 모양이든지 급진적인 방식이든지 일반적으로 '오직 성경'의 정신을 갖는다. 사람이 만든 전통과 사람이 세운 권위가 아니라 성경에게 모든...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손성찬/죠이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현대인들에게 있어 '돈'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돈은 필수적입니다.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인 셈이죠.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이미 제일 우선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돈입니다.돈에 대한 많은 책들은 세상의 관점을 따릅니다. 부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적극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돈이 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합...
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희망이다
박영호/복있는사람/모중현 편집위원


교회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를 받습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영광과 위엄을 느낍니다. 우리의 어떠함보다 존재 자체를 받아주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 안에서 한없는 평안과 사랑을 누립니다.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로 인해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합니다.반면 교회에서 우리는 좌절과 실패, 억울함의 기억도 있습니다. 세상보다 더하다고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배제와 혐오, 편견과 차별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이라고 포장됩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탐욕으로 눈...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따름, 그 회복의 여정
오지영/Ivp/모중현 편집위원


'만남'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와 그 만남의 깊이와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변화의 폭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나의 방법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을 때, 누군가의 만남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복음'은 교리의 모음이 아닙니다. 해야 할 것들의 목록도 아니지요. '복된 소식'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셔서 친히 우리에게 만나자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그 ...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고
전원희/지우/모중현 편집위원


기쁨과 행복이 강요받는 시대입니다. 힘들어도 기뻐하라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눈물을 빨리 닦고 다시 일어서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하게 울어보지도 못한 채, 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재차 들어갑니다. 소리 내어 크게 충분하게 울고 싶었는데 말입니다.우리에게 어쩌면 슬픔에 오롯하게 잠기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고요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됩니다. 아픔을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울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성경에도 기쁘고...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역설
파커J.파머(Parker J. Palmer)/김종훈 /템북/모중현 편집위원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지 않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자체로 역설입니다. 강렬하게 통합된 삶을 원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 앞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존재의 연약함으로 좌절하곤 합니다.개인적인 모순과 역설로도 벅찬데, 세상으로 나가면 더 큰 혼돈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겸손은 나약함으로 보이기도 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교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작가이자 교사, 활동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김기현/두란노/모중현 편집위원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평소보다 더 많이 묵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십자가가 보다 분명하게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삶에서 십자가가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는 말입니다.사순절의 기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는 유익한 절기입니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일상과 맞닿을 수 있는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묵상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말씀 자체의 묵상도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버텨 줘서 고마워
한미연/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치유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공개적으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밀하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은사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열린 마음이겠지요.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때로는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도 괜찮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양하고,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성향과 은사에 맞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인내와 순종의 삶에 하나님은 세밀...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교회 옆 미술관
구미정/비아토르/모중현 편집위원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듣고 보는 것을 잘 이해하고 누리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중학생 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작품전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접하는 그림이 하필 피카소라니요. 뭔가 모를 꿈틀거림이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렸습니다.작품을 대할 때는 사전 지식과 더불어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명할 때 제대로 작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깊은 감동을 경험합니다.특별히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재학/샘솟는기쁨/모중현 편집위원


개인적으로 신학의 각론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교회론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과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 교회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재로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고 암담하기까지 합니다.물론 성경에서 나오는 초대 교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자 바울은 편지를 적었습니다. 바울은 완벽하게 정리된 교리 모음집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처하고자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처방전을 제...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비트 주세요, 주님
지푸, 최재욱, 이창수/이야기가 있는 집/모중현 편집위원


참 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에 더 많은 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좀 더 정제되고 점잖은 표현이나 태도를 뜻하게 된 듯합니다. 기존의 문화와 다르면 재빨리 선을 그으며, 세속적이라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그 틈을 메우려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성속의 이분법을 완전하게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령 힙합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언어는 부드러워야 하며, 내용은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힙합이나 랩이라는 도구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어쩌다 거룩하게
나디아 볼즈웨버(Nadia Bolz-Weber)/윤종석/바람이불어오는곳/모중현 편집위원


교회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정답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다양한 이론만큼이나, 실재하는 교회는 저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를 누리기도 하지만,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겠지만, 교회에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죄인을 환대할 수 있는 은혜의 능력일 것입니다. 소외된 이웃,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너끈하게 감당하며 포용할 수 있는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교회조차도 깨어진 죄인들의 모임이니까요.결국 죄인이 죄인을 수용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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