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로그인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서 로그인하시면 별도의 로그인 절차없이 회원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평

더 깊은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성경 읽기

정현욱 | 2018.10.11 13:52
더 깊은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는 성경 읽기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 읽기/로이스 티어베르그/손현선/국제제자훈련원/정현욱 편집위원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 읽기


들어가면서

 

언젠가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교수님께 물었다. “좋은 번역본이 많은데 왜 굳이 히브리어를 배워야 합니까?” 교수님은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첫째는 목사라면 성경원어인 히브리어를 배워야 마땅하고, 두 번째는 히브리어를 알면 흑백으로 보이던 성경이 칼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조직신학에 흠뻑 빠져있던 나에게 성경원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직신학은 성경원어를 무척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교리와 교회사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성경 원어가 갖는 무게나 의미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당시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을 배우면 배울수록 성경 원어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 원어를 안다는 것은 성경 시대의 삶의 맥락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았다. 원어에 갈망은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삶을 알고 싶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것은 흑백과 칼라의 차이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였던 것이다.

 

3월에 출간된 <랍비 예수>는 매력이면서 도전적이었다. 그동안 나는 정보와 지식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성경 읽기 방식에 함몰되어 있었다. 수단으로서의 성경 읽기는 종교개혁 이후 일어난 성경 읽기의 한 방법이며, 시대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성경 읽기 방식이다. 가톨릭의 오류를 바로 잡고 바른 교리를 정립하기 위해 종교 개혁자들은 이성적이며 수단으로서의 성경 읽기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성경이 말하는 바른 교리와 정보들을 문답서와 교리 교육 안에 담았다. 16-18세기가 교리의 전성시대가 된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가 들어서면서 교리는 진부해졌고, 사실과 정보가 사람들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절박감이 감돌았다. 마침내 두 번의 세계대전은 근대적 성경 읽기 방식에 심각한 의문을 던졌고, 권위에 대해 극히 부정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성경을 난도질 했던 비평적 접근법 역시, 권위적이며 수단적인 성경 읽기 방식이라는 점은 기이할 정도다. 그럼, 성경의 권위가 추락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이 작은 질문은 다시 성경은 무엇이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성서비평 운동이 무례하고 비겁한 면도 있지만 결국 성경이 무엇인가?’로 돌아가게 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B. S. 차일즈 이후 성경 읽기는 비평이 아닌 정경학적 성경 읽기로 선회했다. 왜일까? 그동안 성경을 뜯고, 찢고, 가위질하고, 난도질 했지만 아무도 원본도 발견하지 못했고, 진짜 예수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일즈는 물증 없는 심증(心證)을 접고 성경이 가진 본래의 의도, 즉 경전(經典)으로서의 성경(聖經)읽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일즈의 주장은 합당한 것이며, 시대적으로도 바른 것이다. 우리는 다시 성경이 갖는 고유한 속성과 목적에 합하도록 성경 읽기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다시 성경의 시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즉 유대인이고 랍비였던 예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랍비 예수>의 개정판인 줄 알았다. 제목부터 표지까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물론 내용도 닮아 있다. 그러나 <랍비 예수>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그린다. <랍비 예수>가 개론서에 해당된다면, 이 책은 성경해석의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실전 편에 속한다. 전체 313장으로 구분했다. 1부는 새로운 눈으로 성경 읽을 준비라는 제목으로 관점의 변화를 이야기 한다. 2부는 예수님의 진리 소통 방식은 무엇인지 4장에 걸쳐 다룬다. 마지막 3부는 그분이 성경을 풀어주실 때라는 제목이지만, 부록과 같은 느낌이다.

 

거기 있는 법 배우기

 

세월호 사건은 우리나라의 민낯을 보여주는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현실이다. 세월호 사건과 함께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답답함과 분노를 일으킨다. 침몰해 가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읽기 위해서는 성경 안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가만히 있는 법을 모른다. 행동하고, 움직이고,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시간을 낭비하라는 뜻이 아니다. 때를 기다리는 말이다. 봄에 씨앗을 뿌렸다면 기다려야 한다. 가을이 와야 추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있다는 말은 게으름을 조장하지 않는다. ‘가만히는 찾고 구하라는 뜻이며, 끊임없이 갈망하라는 뜻이기도하다. 그렇기 위해서는 성경에 가만히천착(穿鑿)해야 하지 않겠는가.

 

기다리지 않는 성경 공부를 저자는 전자렌지식 성경공부라고 말한다. 맛도 있고, 먹을 만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산화되고 부패된다. 영양분도 시간이 지날수록 파괴된다. 그러나 편리하다. 이것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저지르는 성경공부 방식이다. 이미 알고 있는 성경지식으로 판단하고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살짝 데우기만 하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러나 이러한 성경공부는 영혼을 더욱 핍절하게 만들 뿐이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저자는 중동식 성경공부또는 유대적 맥락 속에서 성경을 읽’(17)어야 한다고 말한다.(17) 그것은 일종의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슬로우푸드식 성경 공부인 것이다.

 

거기는 성경이다. 오랫동안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생각해야 한다. 급하게 읽고 생각하는 성경 읽기는 염수처럼 더 깊은 갈증을 일으킨다.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성경조차 급하게 읽어 간다. 심지어 목회자들도 성경을 대충 읽고 써먹을 거리를 찾는다. 저자는 패스트푸드식의 성경 읽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랍비 예수와 함께 우리만의 엠마오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24) 묻는다. 다시 이천년 전의 상황과 환경, 유대인의 입장이 되어 길을 걸으며 예수님과 이야기해 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급하게 읽어 나가는 성경 읽기보다는 월등한 효과를 가져 오지 않을까?

 

성경에 오래 머무는 성경 읽기란 무엇인가? 저자는 4히브리어로 색칠하기에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하나의 번역에 매달리지 말고 둘 이상의 역본을 비교하며 읽’(66)는 것이다. 좋다! 한 번 참고해 보자. 시편 11절의 상반 절이다.

 

복 있는 사람은(개정개역)

행복한 사람은 (쉬운성경)

 

그런데 공동번역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복되어라. (악을 꾸미는 자리에 가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아니하며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

 

그럼 영어 번역본들은 어떨까? 네 가지 역본을 비교해 보자. 놀라운 정도로 다르다.

 

Blessed is the one(NIV)

O the happiness of that one(YLT)

Blessed is the man(ASV)

How blessed is the person(ISV)

 

그럼 마소라 사본은 어떨까?

 

앞부분을 직역해 보면 복되도다(감탄사) 사람이여, 그는 ....’으로 이어진다. 문장의 서두에 사용된 복되도다’(아쉬레이)는 감탄사다. 그렇다면 오 복된 사람이여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원어에 가까운 번역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감성적인 특징은 히브리인들의 독특한 동사와 감성 중심의 표현법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일반 성도들이 히브리어까지 공부하기에는 벅차다. 그렇지만 다양한 번역본들은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든 다양한 번역본이든 읽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성경에 천착하지 않으면 우리의 편견이나 경험들로 인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적 성경 읽기

 

저자는 2부에서 예수님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문자가 아닌 이미지로 읽을 필요가 있으며,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 성경 읽기를 추천한다. 필자는 6장을 읽으면서 섬뜩한 생각을 했다. 서구적 개인주의는 분주하고 경쟁 체제의 현대인들에게 매우 적합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가? 기이하게 현대는 개인주의적 성경 읽기와 묵상에 빠져있다. 특히 개인 묵상의 경우는 성경을 왜곡할 위험성이 다분히 많다. 성경이 무엇인가?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다. 심지어 개인에게 보낸 신약의 많은 편지도 개인용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돌려보는 회람서신(回覽書信)’이다. 즉 개인에게 준 편지가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경은 개인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러한 개인 성경 읽기 방식을 개인주의의 사이렌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말을 직접 들어보자.

 

상사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다. 난 나만의 유쾌한 작은 세상의 여왕이다. 게다가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개인주의의 사이렌 소리에 미혹된 경험도 많다. 어찌 보면 내가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성경을 공부하며 여러 경로를 발견하는 바는, 이런 개인주의적인 접근으로는 본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119)

 

개인이 아닌 우리로 생각하기’(123), ‘공동체적 계명들’(129)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즉 공동체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 원래 성경이 말하는 방식이며, 하나님께서 그동안 계시해왔던 전통적인 방법이다. 8장에서 구술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구술이란 무엇인가? 혼자가 아닌 것이다. 함께 말하고, 여럿이 듣는 것이다.

 

구약이 저술된 시대는 구술 중심의 사회였고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반복법을 쓰며 후대의 사건을 선대의 사건에 비추어 묘사함으로써 상호 연결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구술 문화에서 의미를 암호화하는 방식이었다.”(161)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혹자 책을 읽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낭독이 아니라 묵독(默讀)으로 말이다. 성경은 눈으로 읽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귀로 듣는 것이었다.

 

밥상머리 성경 공부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을 부활한 예수님은 찾아가셨다. 가만히 듣기만 하시다 어느 순간 함께 이야기했다. 그러다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가슴을 뜨겁게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이유는 바로 그 뜨거움때문이다.(25:32)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2:28-34)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사용된 디아노이고(διανοίγω)’완전히 열다란 뜻이다. 숨겨진 것을 밝히 드러내 보인다는 말이며, 실제로 계시라는 말과 뜻이 정확하게 동일하다. 그런데 누가복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제자들이 눈이 뜨일 때는 다른 때가 아니라 떡을 떼실 때이다. 저자는 10장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대인들이 교육 방식은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은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함께 대화함으로 부모의 언어와 사유 방식이 자녀들에게 교육되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며 안식을 준비한다. 이 때 무슨 이야기를 할까? 물론 유대교에 대한 이야기다.

 

유대인의 공부법에 조금이라도 호기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떠드는 도서관 예시바(Yeshiva)를 알 것이다.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면서 그들은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토론 한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말이다. 그들은 모임을 통해 끊임없이 성경을 토론하고 성경을 주제로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나가면서

 

이 책은 성경이 말하는 시대와 방식 안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한다. 유대인을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성경의 시대에서 사용된 언어와 문화, 삶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결코 이천 년 전의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알고자 한다면 그 시대를 알기 위한 몸부림은 필요하다. 랍비 예수와 함께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성경의 원의(原意)를 찾아가려는 결심이 아닐까?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원 청중의 관점을 파악해 더 많은 통찰과 영감을 구비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다. ... 유대인이 삶에 접근하는 방식을 이해하고자 시간 여행을 떠날 것이고, 그리하여 대체로 가려져 왔던 지혜를 재발견하며,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읽어 오늘날 우리 삶을 위한 통찰을 건져 올릴 것이다.”(25)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라는 책에서 케네스 E. 베일리는 예수님이 태어난 마구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간 다음 성탄절 연극을 다시 써야한다고 말한다. 마구간은 소외가 아니라 환대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태어난 구유는 차갑고 쓸쓸한 가축우리가 아니라 따뜻하고 살가운 집안에’(58) 있었다는 것이다. 현대인의 눈으로 바라본 마구간과 성경 시대의 마구간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 이제 삶의 맥락을 놓쳐버린 교리적 성경해석을 잠깐 내려놓고, 성경의 시대 속으로 되돌아가 천천히 그리고 깊이 다시 성경을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보다 훨씬 흥미로운 경이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을까?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2,646개(1/133페이지)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하는가? 우리에게 '희망'은 존재하는가?
희망의 신학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이신건/대한기독교서회/모중현 편집위원


세상이나 현실을 바라볼 때 좌절하게 됩니다. 언제 세상이 옳은 방향, 좋은 방향으로 변화될지에 대한 기대까지 사라지게 만듭니다. 여전히 세상은 잔혹하고, 전쟁은 끊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각자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는 크게 부각시키며,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합니다.​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회는 새로운 계급이 형성됩니다. 사회적 제도로 인한 계층 구조는 아니지만, 부자와 가난한 자의 위치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가진 자는 현대 사회에서 더 많은 힘을 얻고,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없는...
칠십인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칠십인역에 대한 새로운 이해
칠십인역 입문
윌리엄 A. 로스(William A. Ross), 그레고리 R. 래니어(Gregory R. Lanier/이민희/북오븐/모중현 편집위원


목회자들이나 신학생들에게 칠십인역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칠십인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천차만별입니다. 70명의 번역자가 아닌 72명의 유대 학자들이 번역했다는 정도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지적 만족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실제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은 시기와 장소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칠십인역에 대한 우리의 정보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의 설명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의 요청으로, 72명의 번역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파견되어 프톨레마이오스 궁궐에서 72일만에 과업을...
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참 존재와 대면하는 시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강주헌/포이에마/모중현 편집위원


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과정입니다. 저마다 자신의 참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상황에 휩쓸려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더하여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도 하고, 특정 부분만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 각자 저마다의 가면을 쓴 채 살아갑니다.이러한 삶은 타인과 적절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괜찮은 듯합니다. 문제는 진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역할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는 능수능란하지만, 참 존재에 대한 인식은 흐릿해집니다.스위스의 ...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하나님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헬렌 손/신하영/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제목이 독특하다. <당신은 불안을 안고 잘 지내는 사람>. 원제는 “Hope in an Anxious World”으로, 직역하면 ‘불안한 세상 가운데 소망’ 정도가 될 것이다. 무난한 책 제목을 독특한 제목으로 바꾼 이유는 이 책의 저자인 헬렌 손(한국 발음 ‘손’이 아니라 ‘Thorne, ‘톤’에 가까운 ‘쏜’)이 이 책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 가운데 우리가 불안을 안고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말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불안을 감쪽...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믿음이 주는 선물, 자유 그리고 순종
그리스도인의 자유
마르틴 루터/조계광/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칼 트루먼은 마르틴 루터가 쓴 <교회의 바벨론 유수>, <독일 귀족에게 고함>,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종합하면 “종교개혁의 완벽한 선언문이 완성된다”라고 말했다(10p). 각각의 책은 세례와 성찬이 어떻게 말씀과 연관되어 재구성되어야 하는지, 교회와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새롭게 정립되어야 하는지, 기독교 윤리가 어떻게 바르게 개정되어야 하는지를 다룬다. 트루먼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루터의 “신학 체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 말했다(11p). 루터가 선행을 어떤 관점으...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기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읽기
레이몬드 딜라드/박성호/좋은씨앗/조정의 편집인


레이몬드 딜라드는 WBC 성경 주석 시리즈 중 <역대하>를 집필한 성경학자이고(솔로몬, 2005), 이번에 좋은씨앗에서 출간된 <열왕기, 그리스도 중심 성경 읽기>와 함께 단 두 권의 책이 국내 보급되었다. 출판사는 딜라드에 관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데 정평이 난 학자로 알려졌다”고 소개했는데, 그의 책을 추천한 사람 중에서 싱클레어 퍼거슨과 D. A. 카슨, 모세스 실바 등 건전하고 성경적인 교리를 가르치는 데 헌신하고 있는 유명한 학자들이 있어서, 다소 생소한 딜라드 역시 신뢰할...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은 영원을 준비하는 절호의 기회다
시간 관리도 영성이다: 목적과 의미가 충만한 시간을 사는 예수의 원칙
조던 레이너/정성묵/두란노/조정의 편집인


솔직히 시간 관리에 관한 신앙 서적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케빈 드영의 <미친 듯이 바쁜>(부흥과개혁사, 2013)이다. 생산성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삶을 오히려 규모 없게, 목적을 상실한 채 살지 않도록 경고하고, 단순한 목표를 세우고 충성스럽게 살라고(왜 바쁜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항상 기억하라고) 권면하는 좋은 책이었다. 2019년에는 팀 챌리스가 쓴 <Do More Better: A Practical Guide to Productivity>를 번역해서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실천해 ...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의 모범 사례
로마서 강해1: 로마서 1-2장
김병훈/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인


나그네 교회 담임목사이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인 김병훈이 쓴 책 중에서 처음 읽어본 것은 개혁된실천사에서 출간된 <슬픈 인생과 그리스도의 위로>였다(2021). 책 제목만 보고 가졌던 선입견이 금세 무너졌다. 저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여러 신앙 서적이 그렇듯 몇 구절의 성경 본문을 가볍게 훑고 나서 숯한 예화와 쉴 새 없는 권면으로 독자를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주해가 풍성한 책이었다. 그 말은 저자가 성경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연구하고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는 걸 의미한다. 어쩌면 그런 저자의 열심...
개혁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심을 원료로 한다 개혁은 언제나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심을 원료로 한다
종교개혁 신학: 조직신학 관점의 개요
매튜 바렛 외/스데반 황/생명의말씀사/조정의 편집인


'개혁'은 언제나 현재의 문제점을 전제하고, 기독교 개혁은 언제나 현재지향적이기보다 과거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종교개혁은 루터와 칼빈, 루터교회와 개혁주의 교회로 단순하게 정리할 수 없는 역사적 신학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의 역사와 그 가운데 선포된 종교개혁자들의 통일성 있는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계속해서 유익을 끼치는 이유가 있다. 종교개혁은 온건한 모양이든지 급진적인 방식이든지 일반적으로 '오직 성경'의 정신을 갖는다. 사람이 만든 전통과 사람이 세운 권위가 아니라 성경에게 모든...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에 대한 균형 감각 익히기
돈: 탐욕의 대상에서 사랑의 도구로
손성찬/죠이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현대인들에게 있어 '돈'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본주의라는 구조 속에서 돈은 필수적입니다.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인 셈이죠.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표현하지는 않더라도, 마음 한구석에 이미 제일 우선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돈입니다.돈에 대한 많은 책들은 세상의 관점을 따릅니다. 부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서는 부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적극적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그것을 통해 돈이 일하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소득에 비해 자본소득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기까지 합...
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되는 길
마침내, 교회가 희망이다
박영호/복있는사람/모중현 편집위원


교회는 참으로 독특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위로를 받습니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영광과 위엄을 느낍니다. 우리의 어떠함보다 존재 자체를 받아주고 귀하게 여깁니다. 그 안에서 한없는 평안과 사랑을 누립니다.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로 인해 진정한 하나 됨을 경험합니다.반면 교회에서 우리는 좌절과 실패, 억울함의 기억도 있습니다. 세상보다 더하다고 생각들 때가 있습니다. 배제와 혐오, 편견과 차별이 만연합니다. 그것이 거룩함이라고 포장됩니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 보입니다. 탐욕으로 눈...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이제야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
따름, 그 회복의 여정
오지영/Ivp/모중현 편집위원


'만남'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누구를 만나는지와 그 만남의 깊이와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 변화의 폭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더 이상 나의 방법으로 헤어 나올 수 없을 때, 누군가의 만남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음을 기억합니다.'복음'은 교리의 모음이 아닙니다. 해야 할 것들의 목록도 아니지요. '복된 소식'은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되셔서 친히 우리에게 만나자고 말씀하시며, 손을 내밀어 주시고, 함께해 주시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그 ...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우리의 춤은 변하여 슬픔이 되고
전원희/지우/모중현 편집위원


기쁨과 행복이 강요받는 시대입니다. 힘들어도 기뻐하라 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하라고 합니다. 눈물을 빨리 닦고 다시 일어서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충분하게 울어보지도 못한 채, 경쟁의 틈바구니 속으로 재차 들어갑니다. 소리 내어 크게 충분하게 울고 싶었는데 말입니다.우리에게 어쩌면 슬픔에 오롯하게 잠기어 있는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시간은 고요하게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이 됩니다. 아픔을 부둥켜안고 오랫동안 울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통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성경에도 기쁘고...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온전함을 위한 발걸음
역설
파커J.파머(Parker J. Palmer)/김종훈 /템북/모중현 편집위원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세상과 같지 않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자체로 역설입니다. 강렬하게 통합된 삶을 원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은 우리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현실의 문제 앞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존재의 연약함으로 좌절하곤 합니다.개인적인 모순과 역설로도 벅찬데, 세상으로 나가면 더 큰 혼돈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겸손은 나약함으로 보이기도 하고, 진취적인 모습은 교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작가이자 교사, 활동가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예수 그리스도의 여정에 동참하는 일상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김기현/두란노/모중현 편집위원


해마다 사순절이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평소보다 더 많이 묵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시간이 갈수록 십자가가 보다 분명하게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우리 삶에서 십자가가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는 말입니다.사순절의 기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고난을 마음 깊숙이 새길 수 있는 유익한 절기입니다.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선명하게 우리의 일상과 맞닿을 수 있는 고난과 십자가에 대한 묵상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말씀 자체의 묵상도 ...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
버텨 줘서 고마워
한미연/세움북스/모중현 편집위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치유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공개적으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밀하게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은사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는 열린 마음이겠지요.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때로는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하게 지혜롭게 살아가도 괜찮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은 다양하고, 하나님께서는 각자의 성향과 은사에 맞게 필요한 것들로 채워주십니다. 인내와 순종의 삶에 하나님은 세밀...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그림을 통해 꿈꾸는 세상
교회 옆 미술관
구미정/비아토르/모중현 편집위원


예술에 관심은 많지만, 듣고 보는 것을 잘 이해하고 누리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중학생 때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피카소 작품전이 생각납니다. 처음으로 접하는 그림이 하필 피카소라니요. 뭔가 모를 꿈틀거림이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여러모로 어렸습니다.작품을 대할 때는 사전 지식과 더불어 직관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 두 가지가 공명할 때 제대로 작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깊은 감동을 경험합니다.특별히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성화...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하늘과 땅을 잇대는 교회
우리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지 묻는다
이재학/샘솟는기쁨/모중현 편집위원


개인적으로 신학의 각론 중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교회론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과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적 교회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실재로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슬프고 암담하기까지 합니다.물론 성경에서 나오는 초대 교회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 갈등을 중재하고 새로운 해법을 모색하고자 바울은 편지를 적었습니다. 바울은 완벽하게 정리된 교리 모음집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에 대처하고자 그 상황에 가장 걸맞은 처방전을 제...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장벽을 넘으시는 예수님
비트 주세요, 주님
지푸, 최재욱, 이창수/이야기가 있는 집/모중현 편집위원


참 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에 더 많은 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좀 더 정제되고 점잖은 표현이나 태도를 뜻하게 된 듯합니다. 기존의 문화와 다르면 재빨리 선을 그으며, 세속적이라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그 틈을 메우려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성속의 이분법을 완전하게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령 힙합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언어는 부드러워야 하며, 내용은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힙합이나 랩이라는 도구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죄인과 소외된 사람들이 환대 받는 교회
어쩌다 거룩하게
나디아 볼즈웨버(Nadia Bolz-Weber)/윤종석/바람이불어오는곳/모중현 편집위원


교회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정답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다양한 이론만큼이나, 실재하는 교회는 저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를 누리기도 하지만,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겠지만, 교회에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죄인을 환대할 수 있는 은혜의 능력일 것입니다. 소외된 이웃,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너끈하게 감당하며 포용할 수 있는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교회조차도 깨어진 죄인들의 모임이니까요.결국 죄인이 죄인을 수용하고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