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교회의 회심이 필요하다
교회가 그리스로 가서는 철학이 되고 로마로 가서는 제도가 되고 유럽에 가서는 문화가 되고 미국에 가서는 기업이 되고 한국에 와서는 대기업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필자는 이 글을 보았을 때 현대교회를 정확히 진단하였다고 평가하였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마음과 삶에 주인으로 모시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했던 교회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런 교회가 과연 성경적인 교회이고 예수님이 피를 흘리며 세우셨던 교회일까?
더구나 우리는 얼마 전 명성교회의 세습 앞에 한국교회의 결과물을 보았다. 한국의 근대화와 기독교는 불가분리의 관계인데 현대교회를 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실제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종말론적인 공동체이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셨던 사역을 이어가는 사명 공동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곳이고 하늘을 향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사를 볼 때 교회는 지배신학이 점령하였던 곳이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성공할 수 있는 통로였던 것 같다. 더구나 교회가 국가와 권력과 손을 잡고 파워집단이 되었을 때는 지상왕국을 이루는 것이 교회의 목표와 사명처럼 여겨졌다. 교회가 할 일은 분명히 정해져 있는데 교회의 정체성과 본질을 잃어버리니 땅에서의 행복과 꿈을 이루어주는 세속적인 집단이 된 것 같다.
이 책은 크리스텐덤 이후를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에게 교회가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잘 보여준다. 저자는 교회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지배적인 곳이 아니고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만 보아도 근대사에 기독교는 주류를 차지했다. 국가의 경제성장은 교회의 성장이었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하고 외쳤던 구호는 ‘우리 교회도 한 번 크게 부흥해보세’라는 구호와 성장제일주의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라의 발전과 흐름 속에서 교회가 했던 역할은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할수록 교회의 복음은 왜곡되어 사회의 구원과 회복을 위해 제 역할을 못하였다. 또한 사회구조가 계층화 되고 극심한 빈부차이가 발생하고 사회의 불균형이 이루어져도 교회는 침묵하였다. 오히려 교회는 이런 양극화를 막지는 못할망정 자극제가 되었고 인권과 복지와 정치와 경제에 예수님의 정신을 발휘하지 못했다.
즉 근대사에서 교회가 주류였고 지배적인 위치였지만 복음의 오해와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목표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쇠락하고 쇠퇴하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현대교회가 사회에서 주류와 기득권이 되려고 했던 것이 필자는 잘못된 설정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저자는 책을 통해 교회는 더 이상 사회에서 지배하고 지휘하는 곳이 아니라 지적하고 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성경에서 “유배”라는 개념을 가지고 온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을 빼앗기고 바벨론에서 살았고 더 앞으로 가면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부터 추방당하여 유배의 삶을 살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에스더와 다니엘과 요나와 예수님과 초기 교회와 베드로전서를 통해 유배신학을 이끌어 낸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이 유배라고 정의한다. 교회가 본질적으로 종말을 향해 살아가고 성도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성경해석과 주해는 우리로 하여금 유배신학을 세우고 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필자는 각 장을 요약하고 정리하기보다 책을 통해 깨달은 바를 세 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는 유배된 교회는 기회이다. 성경을 보면 예레미야의 예언과 탄식과 눈물을 보듯이 성전이 무너지고 왕권이 사라지며 주권을 상실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이라는 세속국가 밑에서 자신의 신앙을 이어가고 메시아를 대망해야한다.
다니엘은 바벨론과 페르시아를 거치며 왕이 바뀌는 세속국가 속에서도 나라는 잃었지만 하나님의 예언을 선언하고 메시아 나라를 꿈꾸며 자신의 존재를 이어간다.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은 주권은 상실하였지만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 밑에서 나그네의 삶을 방주가 마른 땅에 설 때까지 달려간다. 즉 성경은 이스라엘과 교회가 세속국가 밑에서 끊임없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그 거대한 바벨론과 제국 밑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끝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유배된 상황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회라고 가르쳐준다. 수많은 선지자가 유배 속에서의 변화와 회복과 비전을 노래하였다. 이미 무너졌고 상실하였지만 그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이 씨앗이 되어 열매 맺는 기회가 되었다. 다 빼앗긴 것 같고 모두 망가진 것 같아도 거기서부터 새로운 싹이 솟아나는 기회가 되었다.
즉 유배된 교회는 기회이다. 현대교회도 마찬가지다. 주류에서 밀려나고 이제는 손가락질 당하고 지탄의 대상이 되었지만 오히려 이렇게라도 나그네요 거류민으로의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 같다. 명예와 권력과 부를 잃어버리고 소외된 교회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게 유배에 가까운 우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그래서 성경에서 다시 회복을 향해 걸을 수 있는 유배처럼 오늘날 다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를 바래본다.
두 번째는 유배된 교회는 거룩해야한다. 이것은 저자도 끊임없이 유배지에서 교회와 성도가 살아갈 목표이고 자세라고 한다. 거대한 바벨론 밑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거룩을 유지했던 이스라엘처럼 교회는 성전을 향하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관계적인 거룩을 꾸준히 유지해야한다. 여러 가지 모함과 위기 앞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켰던 다니엘처럼 교회는 사상적 압박과 여러 미혹이 있어도 올곧은 믿음을 품고 있어야한다.
황제숭배가 지배하는 로마 밑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도 인간 횃불이 되어도 죽음으로 승리하며 어린양을 따라갔던 거룩한 성도처럼 교회는 세상의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하고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신앙의 성공을 선택해야한다. 거룩은 교회의 특징이고 성도가 나태내야 할 표지이다. 거룩함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고 다른 방식과 다른 기준과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즉 유배된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현대교회는 자신이 유배지에 살고 있고 성도는 거류하고 있다는 정체성을 기억하며 거룩함을 나타내야한다. 세상의 방식과 가치관과는 다른 방법과 가치관으로 살아가야한다. 주님의 십자가와 죽음과 가르침과 주님이 지시하신 손가락을 기억한다면 교회의 거룩은 드러날 것이다. 무엇보다 어린양의 죽음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하시니 주님의 모습은 가장 귀한 거룩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유배된 교회는 낮은 곳을 향하고 신분이 변하는 곳이다. 유배된 삶을 사는 이스라엘에게 선지자가 하는 말씀을 보면 공평한 추를 사용하고 차별하지 말고 약한 자와 소외된 자와 가난한 자를 돌봐주라고 한다. 거기서 더 나아가 단순히 돕는 것을 넘어 형제요 자매요 한 공동체로 회복시켜주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무너진 자를 유배된 교회는 받아들이고 다시 살려내야 한다. 유배된 교회에 주어진 고귀한 사명이다.
특별히 베드로는 유배된 교회에게 편지하기를 주인보다 재산과 노동력으로 여겨졌던 노예에게 더 많은 권면을 하고 또한 남편보다 열등하고 종속적으로 여겨졌던 아내에게 더 많은 권면을 한다. 이는 단순히 노예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여성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이것은 바로 당시의 가치관을 뒤엎는 혁명적인 말씀인데,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내가 속한 곳에 도덕적 영적 변화를 이루어 구원을 회복해가는 주체가 그러한 사람들, 지위에 상관없이 썩지 않는 말씀의 씨앗을 받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자라도 그에게 심겨진 말씀을 통해 영혼의 구원을 허락하신다. 또한 그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라도 순결한 꽃을 피우는 말씀의 씨앗을 가진 자들을 통해 회복을 이루어 가신다. 그 영원한 말씀을 가진 자가 믿음 위에 거룩한 인생을 지을 수 있고 제사장적 삶을 살 수 있으며 고난의 길도 영광을 보며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다. 그 생명의 말씀을 품은 자가 어둠속에서도 여호와의 빛과 구원을 볼 수 있다. 교회는 바로 그런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는 소망의 장소이다.
끝으로 오늘날 현대교회는 우리의 위치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의 교회가 지난 근대사와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더 이상 소망은 없을 것이다. 계속적으로 교회가 사회의 주류가 되려하고 지배신학으로 운영해 간다면 세상은 교회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목표는 자신의 세력과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이 땅에서 제국과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비전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셨던 모습은 높은 위치에 올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낙수효과도 아니고 고지론도 아니며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를 만나는 영혼들에게 말씀과 치유를 통한 존재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 가셨다. 그들의 눈물과 아픔과 고난에 직접 뛰어 들어가셔서 그들의 상처를 만지시고 마음을 얻으셨고 영혼을 새롭게 해주셨다. 이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자신의 아들을 보내셨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님의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다. 오순절이 이르기 전에 이 영광의 영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였고 오순절 후에는 이 거룩한 영이 교회 위에 임하였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가 보내시는 일을 하였고 아들 또한 보내는 일을 하였는데, 교회 위에 임한 영은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여 세상 가운데 보내는 역할을 한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공동체이다. 또한 교회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공동체이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대사이고 예수님의 사역을 펼쳐가야 한다. 삼위 하나님께서 세상에 들어오시고 사회에 침투하시며 인간과 관계 맺으셔서 구원을 펼쳐 가시는 것처럼 교회 또한 그런 역사성과 사회성을 가져야한다. 따라서 현대교회는 유배적인 상황에서 참된 정체성과 선교적 소명을 회복을 위해 회심이 반드시 필요하다. 책을 통해 교회의 모습을 그려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