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변증적 조직신학
변증적 조직신학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나면서 중요한 한 가지를 배운 것은 ‘하나님, 성경, 설교’에 대해 절대 의심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청소년 시기에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진화론’으로 ‘창조론’과 같은 것들에 의문이나 의심을 품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배웠다. 이것은 신학대학원을 가서도 여전히 불문율처럼 지켜졌다.
그렇게 믿음으로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되었다. 그리고 소위 성공한 목사가 되는 꿈을 꾸며 부목사 시절까지 아무런 탈 없이 지낼 수 있었고, 절대 성경, 하나님, 기존의 교리 등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고, 또한 굳이 의문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의문을 가지다
맹목적 믿음이 좋은 것은 굳이 골치 아픈 생각을 할 필요가 없고, 오직 내가 믿고 있는 신념만을 고수하면 된다는 편리함이 있다. 그러나 개척교회를 하면서 믿는 자들만의 세상이 아닌, 세상의 온갖 고통과 소외와 어떻게 손도 써 볼 수 없고, 기존의 신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도 이해도, 위로도, 믿음도 줄 수 없는 진짜 세상의 현장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동안의 신학적 지식과 목회적 성경해석들과 목회적 방식들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개척 후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공손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과연 성경에 대해, 지금 내가 확신하고 있는 신학이나 신앙관에 대해 의문과 질문을 가지게 되면 ‘믿음이 없는 자’, ‘시험에 든 자’, ‘불신자’가 되는 것인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본서와 같은 책들이 지금에 와서라도 번역이 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나온 기존의 개신교회의 조직신학의 책들과는 달리, 우리의 정통성을 강조하거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교리의 우월적 관점의 반복적 주장에서 벗어나, 모든 계급장을 떼어버린, 그래서 다른 종교나 신학들과의 평등한 위치에서 개신교회 신학을 바라보고 정리해 간다. 그리고 최대한 객관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신교회의 신학적 관점들에 대하여 수많은 공격들과 질문을 받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믿는 믿음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더욱 진지하고 정직한 신앙으로 성장하게 한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자연신학
사실 한국의 저자들이 쏟아내는 신앙서적과 신학서적들 다수를 보면, 매우 이성적이다. 물론 일부 신사도주의자들이 쓰는 소위 은사(오늘날 이들은 ‘영성’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와 능력, 체험주의자들의 글들도 다수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에서 정통이라고 불려지는 신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자들은 본서의 2장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2장은 ‘하나님의 개념과 그 진리성’에 대하여 다루고 있는데, 현재 다수의 한국교회 신학적 태도와 겹쳐져 있다. 즉, ‘자연신학’이다. 이성적 토대 위에서만 신학이 다루어지는 현상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기능과 능력을 잃어버린 신학으로 비판하고 있다. 즉, 사변(이론)적 신학 일변도에 우리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현실성
저자 판넨베르크가 강조하는 것은 ‘현실성’이다(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판넨베르크 신학을 ‘역사성’이라고 부른다). 즉, 그는 종교경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현실성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다. 즉, 그가 2장에서 ‘자연신학’과 4장의 ‘계시’ 부분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신학의 사변성’에 대한 고발과 경고이다. 현실성이 없는 하나님, 현실성이 없는 하나님에 대한 신학은 아무리 논리적이라 할지라도 아무런 능력도 의미도 없는 사변에 불과하다는 것이 판넨베르크의 신념인 것 같다(이로 인해 그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저자는 3장에서 종교 개념과 신학적 기능과 본질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절대성을 증명하기 위해 5장에서 ‘삼위일체’를 다룬다. 마지막 6장에서는 삼위일체 신학을 통한 하나님의 본질과 그 속성의 개념들을 통해 하나님의 현실성과 신학적 현실성을 설명해 간다.
변증적 조직신학
현재 한국사회와 교회의 성도들은 이미 어느 정도 계몽이 일어났고, 점점 그 계몽의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칸트에 의하면 계몽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의 상태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즉, 우리 목사님의 설교가 다 맞는 것은 아니며,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들에도 부분적으론 일리가 있으며, 현재의 신앙적 지식에 보충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신앙을 버릴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동안의 신앙지식과 성경지식에 질문과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이 매우 중요한 골든타임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한국의 교회가 쇠락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회복과 부흥의 발판을 마련할 것인지가 결정이 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상대를 해야 하고, 또한 양육하고 길러야할 성도들은 말 잘 듣는 착한 성도가 아니라, 수많은 의문과 질문들을 쏟아내는 이 현실 안에서 하나님과 신앙에 대하여 진지한 열정과 열심을 품고, 세상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하여 바른 해답을 찾기 위하여 우리 목회자들과 성경과 신학을 향하여 질문들을 쏟아내고, 바른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 즉 하나님의 현실성을 믿는 자들을 양육해 내어야 한다(여기서 현실성이란 수많은 도전과 질문들 앞에 자신의 신앙을 변증해 내고, 자신의 믿음과 신앙 안에 하나님의 현실성이 증명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었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의문과 질문을 가지게 해주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의 근원을 찾아가도록 안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 접하는 자들은 어색하고(본서는 기독교적이라기보다는 종교학적 관점을 부분적으로 취하고 있다), 약간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두세 번 반복해서 읽는 인내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과 신학의 인식지평을 분명히 확장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