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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대한 시대
부흥운동 이야기/헨리 존슨/솔로몬/[김재윤]
현 상태의 기독교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고, 형식적인 신앙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더우기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의 범위는 매우 미미하다. 이러한 우리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금 부흥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흥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시대를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목도하고, 우리의 시대에도 그처럼 놀라운 부흥들이 다시금 일어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18,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부흥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여러 예화들을 언급하며 부흥의 역사를 밀도있게 추적하고 있다. 이 곳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놀라운 부흥의 이야기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마른 나무 같은 우리들이 어떻게 소생될 수 있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부흥의 매개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부흥의 열매는 부흥의 역사 후에도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성도의 실천의 열매를 통해 입증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무디와 생키의 사역, 그리고 토리와 알렉산더의 사역, 그리고 챨스 피니의 사역과 죠지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를 통해 일어났던 부흥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부흥으로 언급되지만 18세기의 자연스런 부흥과 19세기의 조금은 작위적인 부흥 운동은 분명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무디의 사역은 인정했지만, 챨스 피니의 부흥 운동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훗날 피니는 고백하기를 자신의 회심자들은 나중에 자신의 부끄러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피니는 감정을 겨냥하고 회중들을 불안의 의자에 앉게 했다.
또 이 책은 조금 밋밋하게 씌어져 있어 부흥의 설레임을 이 책을 읽으며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충실하게 이 책은 부흥의 시대를 소개하고 있으며, 감추어진 개개의 사례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유익들을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부흥 이야기들에서 공통되는 요소는 바로 부흥을 위한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또한 참된 부흥에는 철저한 회개가 뒤따랐다.
조국 교회에도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있은 후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성장 일변도에 있던 교회의 모습은 이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바로 부흥을 위한 기도이며 하나님의 부흥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일깨워주고 있다. 조국 교회의 부흥을 소망하며 일독을 권한다.
현 상태의 기독교의 상황은 그리 밝지 못하다. 사람들의 기독교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고 있고, 형식적인 신앙인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더우기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에 끼치는 선한 영향력의 범위는 매우 미미하다. 이러한 우리의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우리에게 답을 주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금 부흥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부흥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시대를 통해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목도하고, 우리의 시대에도 그처럼 놀라운 부흥들이 다시금 일어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18,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났던 부흥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여러 예화들을 언급하며 부흥의 역사를 밀도있게 추적하고 있다. 이 곳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놀라운 부흥의 이야기는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마른 나무 같은 우리들이 어떻게 소생될 수 있는지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부흥의 매개체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부흥의 열매는 부흥의 역사 후에도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성도의 실천의 열매를 통해 입증된다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무디와 생키의 사역, 그리고 토리와 알렉산더의 사역, 그리고 챨스 피니의 사역과 죠지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를 통해 일어났던 부흥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부흥으로 언급되지만 18세기의 자연스런 부흥과 19세기의 조금은 작위적인 부흥 운동은 분명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무디의 사역은 인정했지만, 챨스 피니의 부흥 운동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훗날 피니는 고백하기를 자신의 회심자들은 나중에 자신의 부끄러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피니는 감정을 겨냥하고 회중들을 불안의 의자에 앉게 했다.
또 이 책은 조금 밋밋하게 씌어져 있어 부흥의 설레임을 이 책을 읽으며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러한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충실하게 이 책은 부흥의 시대를 소개하고 있으며, 감추어진 개개의 사례들은 우리들에게 많은 유익들을 주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부흥 이야기들에서 공통되는 요소는 바로 부흥을 위한 기도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만 한다. 또한 참된 부흥에는 철저한 회개가 뒤따랐다.
조국 교회에도 1907년 평양 대부흥이 있은 후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성장 일변도에 있던 교회의 모습은 이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바로 부흥을 위한 기도이며 하나님의 부흥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일깨워주고 있다. 조국 교회의 부흥을 소망하며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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