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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독특한 문체를 사용한 기독교소설
요셉의 회상/지유철/홍성사/[조영민]
이 책은 일인칭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문체를 사용한 소설이다. 근래에 소설을 읽지 않았던 나에게 소설이라는 장르자체가 생소했지만 이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저자의 과학적인 성경연구와 배경에 대한 철저한 고증으로 인해서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사실만큼 사실적으로 요셉을 재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셉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지막 마무리를 한 에브라임의 글을 읽으면 간만에 눈시울이 적셔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 저자 지유철
색을 또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려서 품었던 화가의 꿈을 접었다. 멋진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두 번째 꿈과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총신대에 들어가 음악을 공부했다. 교단장 금권선거에 연루되어 양심선언을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 NGO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기윤실에서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교회개혁운동에 한계를 느낀 뒤 함께했던 동지들과 교회개혁실천연대를 창립하는 일에 동참,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다. 산정현교회에 전도사로 봉사하면서 아내 김영신, 딸 정은과 함께 서초동에 살고 있다.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 지휘라면, 가장 못 견디는 일은 부당한 차별이다. 조그만 희망이 있다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머리와 수염을 길러 보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그런 날이 올까?
● 서평
이 책은 일인칭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문체를 사용한 소설이다. 근래에 소설을 읽지 않았던 나에게 소설이라는 장르자체가 생소했지만 이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저자의 과학적인 성경연구와 배경에 대한 철저한 고증으로 인해서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사실만큼 사실적으로 요셉을 재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셉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지막 마무리를 한 에브라임의 글을 읽으면 간만에 눈시울이 적셔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요셉이 110살이라는 나이를 먹고, 자신과 이스라엘의 가족들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회고의 형식을 쓰게 되는 이 글을 통해서, 요셉은 자신이 남기고 가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았고, 그 찾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요셉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되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책은 발견되어지고 이 책을 읽으므로 다시금 아브라함 패밀리는 부흥을 경험하게 된다.
요셉은 17살의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가고, 30세에 애굽의 2인자가 된다. 그 과정의 13년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 없이 이 모든 시험과 수난의 시기를 이겨내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견디어 내게 한 것인가 ? 그 궁금증에서 이 저자는 이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이 저자와 같은 고민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꿈이라는 단어와 죽음이라는 단어 , 그리고 이야기라는 단어를 가지고 그 상황들을 연결하고 있다.
먼저 꿈에 관해서 이다. 요셉은 수차래 아브라함의 꿈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였던 야곱의 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꾼 두 가지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꿈” 특별히 그가 꾼 꿈의 가치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기에 그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그 꿈의 성취를 향해 지향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는 죽음이라는 단어이다. 요셉의 나이가 110세에 이르는 나이인 것을 볼 때, 그에게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이 책에서는 의도적으로 많은 내용을 죽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가 볼 수 없었기에 항상 깊은 영적인 콤플렉스가 되었던 이삭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 부어졌던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야곱의 죽음 앞에서의 놀라운 신앙의 투영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패밀리의 강점인 죽음에 대한 요셉의 생각이 그를 고난가운데서 지켜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 번째로 첫째와 둘째마저 이어주는 위대한 능력이 “이야기”에 있다. 요셉의 모든 신앙, 즉 꿈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신앙과 그 능력이 아버지인 야곱의 무릎 아래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요셉은 그의 회고록에서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글이 없었던 시절, 아담과 하와의 인류 최초의 타락의 이야기도, 노아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다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의 그 이야기를 들음으로 인해 그 안에서 귀한 영적인 가르침들에 젖어들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감동적인 소설일 뿐 아니라 요셉이 하는 설교일 수 있다. 그 당시 성경이 없었기에 요셉이 자신의 아들을 가르칠 때도 동일한 어투를 가지고 말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나는 저자가 머리글에서 한 고민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청년들이 작은 교회를 떠나간다. 일명 크고, 잘되어 있는 교회, 청년중심의 교회를 향해서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그 청년들의 입에서 나왔던 말들은 “말씀”이 먹고 싶어서와 “봉사”가 부담되어서 였던 것 같다. 요셉의 17살부터 30살까지 그는 말씀은 없었고, 봉사(?)는 엄청나게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신앙적으로 더 성숙했고,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았으며, 더 깊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청년들에게 묻고 싶다. 말씀이 더 좋고(?), 교회서 부담 지우는 것이 없으면 더 영적으로 성숙할 자신이 있는지 ? 있다면 가도 좋다. 그러나 명확하게 그것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 이렇게 반응해 보면 어떨까 ? 환경의 탓을 하기 전에 그 환경 가운데 나를 두신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이며, 그 환경을 통해서 나를 가르치기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이뤄야 할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리고 “ 살자 ! ”
요셉은 살았던 사람이고, 그래서 요셉은 좋은 신앙의 선배가 될 수 있었다. “요셉의 회상”을 통해서 신앙의 사람의 “사는” 모습을 읽어보고, 우리의 몸을 움직여 그렇게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이 책은 일인칭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문체를 사용한 소설이다. 근래에 소설을 읽지 않았던 나에게 소설이라는 장르자체가 생소했지만 이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저자의 과학적인 성경연구와 배경에 대한 철저한 고증으로 인해서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사실만큼 사실적으로 요셉을 재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셉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지막 마무리를 한 에브라임의 글을 읽으면 간만에 눈시울이 적셔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 저자 지유철
색을 또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려서 품었던 화가의 꿈을 접었다. 멋진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두 번째 꿈과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총신대에 들어가 음악을 공부했다. 교단장 금권선거에 연루되어 양심선언을 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기독교 NGO 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기윤실에서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던 교회개혁운동에 한계를 느낀 뒤 함께했던 동지들과 교회개혁실천연대를 창립하는 일에 동참, 사무국장 일을 맡고 있다. 산정현교회에 전도사로 봉사하면서 아내 김영신, 딸 정은과 함께 서초동에 살고 있다.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 지휘라면, 가장 못 견디는 일은 부당한 차별이다. 조그만 희망이 있다면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머리와 수염을 길러 보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그런 날이 올까?
● 서평
이 책은 일인칭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문체를 사용한 소설이다. 근래에 소설을 읽지 않았던 나에게 소설이라는 장르자체가 생소했지만 이 소설을 쓰려고 했던 저자의 과학적인 성경연구와 배경에 대한 철저한 고증으로 인해서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사실만큼 사실적으로 요셉을 재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요셉의 죽음을 애도하며 마지막 마무리를 한 에브라임의 글을 읽으면 간만에 눈시울이 적셔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요셉이 110살이라는 나이를 먹고, 자신과 이스라엘의 가족들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회고의 형식을 쓰게 되는 이 글을 통해서, 요셉은 자신이 남기고 가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찾았고, 그 찾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요셉의 장례식으로 마무리되는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책은 발견되어지고 이 책을 읽으므로 다시금 아브라함 패밀리는 부흥을 경험하게 된다.
요셉은 17살의 나이에 애굽으로 팔려가고, 30세에 애굽의 2인자가 된다. 그 과정의 13년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 없이 이 모든 시험과 수난의 시기를 이겨내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견디어 내게 한 것인가 ? 그 궁금증에서 이 저자는 이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 역시 이 저자와 같은 고민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꿈이라는 단어와 죽음이라는 단어 , 그리고 이야기라는 단어를 가지고 그 상황들을 연결하고 있다.
먼저 꿈에 관해서 이다. 요셉은 수차래 아브라함의 꿈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였던 야곱의 꿈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꾼 두 가지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꿈” 특별히 그가 꾼 꿈의 가치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기에 그는 모든 상황 가운데서 그 꿈의 성취를 향해 지향할 수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는 죽음이라는 단어이다. 요셉의 나이가 110세에 이르는 나이인 것을 볼 때, 그에게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이 책에서는 의도적으로 많은 내용을 죽음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가 볼 수 없었기에 항상 깊은 영적인 콤플렉스가 되었던 이삭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과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 부어졌던 야곱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계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야곱의 죽음 앞에서의 놀라운 신앙의 투영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패밀리의 강점인 죽음에 대한 요셉의 생각이 그를 고난가운데서 지켜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 번째로 첫째와 둘째마저 이어주는 위대한 능력이 “이야기”에 있다. 요셉의 모든 신앙, 즉 꿈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신앙과 그 능력이 아버지인 야곱의 무릎 아래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요셉은 그의 회고록에서 지속적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글이 없었던 시절, 아담과 하와의 인류 최초의 타락의 이야기도, 노아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도 다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의 그 이야기를 들음으로 인해 그 안에서 귀한 영적인 가르침들에 젖어들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감동적인 소설일 뿐 아니라 요셉이 하는 설교일 수 있다. 그 당시 성경이 없었기에 요셉이 자신의 아들을 가르칠 때도 동일한 어투를 가지고 말하지 않았을까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나는 저자가 머리글에서 한 고민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많은 청년들이 작은 교회를 떠나간다. 일명 크고, 잘되어 있는 교회, 청년중심의 교회를 향해서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그 청년들의 입에서 나왔던 말들은 “말씀”이 먹고 싶어서와 “봉사”가 부담되어서 였던 것 같다. 요셉의 17살부터 30살까지 그는 말씀은 없었고, 봉사(?)는 엄청나게 많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신앙적으로 더 성숙했고,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았으며, 더 깊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청년들에게 묻고 싶다. 말씀이 더 좋고(?), 교회서 부담 지우는 것이 없으면 더 영적으로 성숙할 자신이 있는지 ? 있다면 가도 좋다. 그러나 명확하게 그것에 대한 자신이 없다면 이렇게 반응해 보면 어떨까 ? 환경의 탓을 하기 전에 그 환경 가운데 나를 두신 하나님의 이유가 무엇이며, 그 환경을 통해서 나를 가르치기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내가 이뤄야 할 하나님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그리고 “ 살자 ! ”
요셉은 살았던 사람이고, 그래서 요셉은 좋은 신앙의 선배가 될 수 있었다. “요셉의 회상”을 통해서 신앙의 사람의 “사는” 모습을 읽어보고, 우리의 몸을 움직여 그렇게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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