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도 중독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는 중독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의미가 긍정적인 의미인지, 부정적인 의미인지 조차도 모호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독’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중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단어이기도 하다.
‘DSM’ 시리즈를 보면, 한국적 상황과 가장 맞지 않는 부분이 어쩌면 ‘중독’이다. 다섯 번의 개정판을 내었지만, 여전히 ‘중독’의 영역은 이질적이다. 그 이유는 ‘약물(마약) 중독’에 그 비중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알콜도 약물의 범주에 속하기는 하지만, 사실 한국적 상황에서와 미국이 보는 기준에 엄연한 차이가 있기에 그 또한 한국적 상황에서 재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 어느 심리학 척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척도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소시오패스’(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의미하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가 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척도는 많이 연구되고 개발되어 왔지만, 정작 사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소시오패스’는 척도가 없다. 사실 이 사회는 소시오패스로 인한 피해가 사이코패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와 ‘종교중독’이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심리학계에서는 ‘종교중독’이라는 현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척도를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소시오패스 만큼이나 모호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나의 신앙은 건강한 신앙일까?
한국의 그리스도교 성도들은 세계 그 어느 그리스도인들보다 열정과 열심히 뛰어나다. 그래서 단 기간에 한국은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 났고,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를 기점으로 그리스도교는 과도한 성장의 피로감과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이 한국개신교회의 주변부와 가장자리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핵심부에서부터 문제가 곪아 있음을 이제 더 이상 감출수도 없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선교와 복음전파라는 명목하에 외적 확장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들의 믿음과 신앙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자화자찬(수많은 전도집회의 간증들), 그리고 외적인 은혜(물질과 성공)에 대한 과장된 신앙적 포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자기 교회로 흡수하는데 혈안이 되어 왔다. 그리고 얼마나 세뇌가 잘 되었는지 대부분 성도들을 만나보면 “우리 목사님 설교”가 절대 진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도전을 던진다. “과연 내 신앙이 얼마나 건강한지 정기적으로 점검하는가?” 일 년이나 이 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 하듯이 자신의 신앙검진을 하고 있는가? 여기에는 목회자도 예외가 아니다.
현실도피
저자가 밝히듯이 중독은 고통스럽거나 수치스러운 현실을 회피하거나 또는 그 느낌을 느끼지 않게 하는 대안의 방법이나 대상물이다. 사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상담해온 결과 이들은 설교나 방송을 통해 말장난에 가까운 위로와 희망에 중독되어 있었음이 종종 발견된다. “하나님을 믿어라”, “믿으면 응답된다”, “광야의 한 복판에서도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메시지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환경가운데에서 끔찍하도록 위험한 ‘현실 도피’가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들은 정말 위로를 바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란다. 왜? 자신의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를 해도, 아무리 봉사와 전도를 해도 현실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된다. 자신들이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기도와 봉사로 도피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을 믿는 것이다.’
기초 연구서
10여년 만에 아터번의 글을 읽었다. 그러면서 10여년 전에 느꼈던 아터번의 글투를 다시 진하게 느끼면서 미소를 지었다. 아터번의 글은 내가 느끼기에 ‘투박’하다. 즉, 세심하게 다듬어 글을 쓰지 않고, 또한 핵심적 명제를 날카롭게 찾아내고 분석하면서 그 의미를 각인시키지만, 반면으로 그 반대의 이면을 생략해 버린다. 그래서 아터번의 글은 명료하지만 반대의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본서가 한국교회에 널리 읽혀지기를 촉구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신앙의 해로운 면을 보여준다. 또한 기독교지도자들의 목회적 활동과 방향에 대해 재점검의 요소를 지적해 주고 있다. 또한 앞서 말씀드린대로 투박하지만 건강한 신앙과 해로운 신앙의 명제와 척도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지금 자신의 신앙이 건강한지를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본서가 성도들에게는 좋은 척도의 기준이 되고, 목회자들에게는 중요한 기초 연구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