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의 소중한 일상
우리의 소중한 일상
보혈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일상에 강같이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주님의 죽으심과 십자가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십자가의 의미가 선명하게 가슴에 새겨지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설교도 아닌데 소망과 확신에 찬 믿음이 생긴다. 중생의 경험을 하면 보는 눈이 달라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데 중생에 대한 메시지도 아닌데 만물과 사람과 세계가 새롭게 보이게 한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간증과 신앙으로 풀어낸 글은 거의 읽지 않는데 이 책은 보면서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되었다.
책을 덮으며 나에게 가장 가슴에 남겨진 장면이 있다. 바로 저자가 인생의 실패와 갈등과 험난한 시간을 보낼 때 예수님께서 자신의 등 뒤에서 안고 계시며 책찍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장면이었다. 저자는 부정과 정직의 갈림길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대신해 채찍을 맞으시는 고난과 뜨거운 액체를 보며 한없이 흐느낀다. 그리고 나에게도 주님은 이렇게 등 뒤에서 넓은 품으로 안아주고 계신다. 그리고 이 모든 고통을 짊어지는 한없는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놀라운 자비이다.
‘오늘도 그날처럼’이라는 제목은 종말론적 신앙을 현실로 고백하며 오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책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주님 오늘도 나에게는 당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는 고백으로 다가온다. 이천년 전의 보혈이 지금도 가슴에서 샘 솟아야하고 내 삶에서 강같이 흘러야한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파도가 있어서 그것에 부딪히면 다치고 상하지만 주님의 보혈이 그를 고치고 온전케 한다. 일상에 주님이 보혈이 흘러가야한다. 내 가슴에 여전히 주님의 생명의 피가 순환되어야한다.
신뢰
또한 이 책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쓰였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만큼 중요한게 어디 있을까? 사람의 음성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크게 들어야하고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소리를 크게 들어야한다. 내 귀에 대고 늘 떠드는 전파수보다 내 양심에 대고 두드리는 성령님의 확성기가 들려야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믿음이 통로이고 생명과 사랑의 연결선이다. 이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은 신뢰하는 자만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 신뢰가 견고하다.
그러나 일대일의 관계로 끝나지 않는다. 병원에서의 직장 동료와의 연대와 협력 그리고 환자와도 친밀함으로 중요한 관계를 맺는다. 하나님의 신뢰를 바탕으로 동료와의 신뢰를 구축한다. 사람은 눈에서 멀리 있는 자들을 향해 얼마든지 좋아보일 수 있고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나의 가족과 동료들에게 하나님과의 신뢰가 사랑과 용서와 배려로 나타나지 않고 시기와 질투와 거짓으로 나타나면 안된다. 하나님과 나의 신뢰는 지금 내 옆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직장에서 이윤을 목적으로 사람을 이용하거나 속이지 않아야하고 의료윤리에서 물질을 위해 생명을 노략하지 않아야하며 치과윤리에서도 불필요한 거품을 빼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과의 나의 회복은 이웃과의 사랑으로 나타나야하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무너져 있는 부분까지 수축되어야한다.
종말
저자는 치과 의사이지만 요한계시록 전공자답게 아름다운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신앙이 추상적이고 사변적이지 않고 오늘을 믿음으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그 오늘의 열심은 단지 현실에만 관심 갖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신앙이 아니다. 종말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빛으로 오늘을 조명하는 것이다. 지금도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종말의 빛으로 오늘을 해석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신앙이다.
이 땅은 우리에게 탁월함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실함을 원하신다. 이 땅은 우리에게 일등을 요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선을 요구한다. 이 땅은 우리에게 여기에서 많은 것을 얻으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기에서 많은 것을 주라고 하신다. 이 땅은 우리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하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수단과 방법 하나까지도 주님의 방법대로 가라고 하신다. 이러한 삶은 마치 팔복의 연상케 한다. 가치전복적이고 혁명적이다. 이땅은 현실적 물질적 현실구복적이지만 하나님은 영적이고 내세적이고 인격적이다.
바로 종말론적 신앙이 있을 때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또한 주님은 어린양의 죽음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를 이루신 분이다. 죽음으로 사망을 이겼다는 것은 이 또한 종말론적 신앙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세상은 서로를 향해 네가 잘못이다 네가 죽어야한다고 소리치며 남 탓만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내가 죽겠다고 하신다. 모든 죄와 어둠과 폭력과 전쟁을 그치게 하기 위해 죄의 원흉을 색출하여 죽이는게 아니라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방법으로 승리를 거두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걸음을 요구하신다.
일상
우리의 삶의 현장은 불의가 있고 가난이 있고 나의 부족함도 있다. 그러나 믿음으로 나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해한다. 어려움 가운데도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아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대하여 확신하고 하나님이 나를 건지실 것이라 당당히 외칠 수 있다. 늘 우리에게 완벽한 조건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일상을 허락하고 만나게 하시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의 복음이 체험있는 복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신앙이 종말론적인 신앙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삶의 한계와 모순과 아픔 속에서도 믿음으로 종말의 빛을 보아야한다. 불의와 악함과 부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무림치고 고난까지도 받아내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상은 완벽해서 소중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기에 소중한 것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흔적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일상은 우연이기에 아무 의미 없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필연이기에 풍성한 의미이다. 우리의 일상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함정이 아니라 어떤 골리앗 앞에서도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의 포장된 신비이다.
결론: 다윗
사울이 악신이 들려서 괴로워 할 때 수금을 잘 켜는 다윗을 데리고 오라 했는데 사람들이 그를 보자마자 하는 말이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이고 무엇보다 여호와께서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윗이 궁전에서 이런 칭찬과 명성을 얻은게 아니라 보잘 것 없는 목동으로 일할 때 아무도 관심 없고 쳐다보지 않는 들판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했던 사람이었다.
반면에 사울은 궁전에서 왕으로 살고 있지만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은 하나님의 왕이 아니다. 악령이 들리고 자기 생각 하나 제대로 조절할줄 모르는 미치광이다. 그러나 다윗은 아직 궁전에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을 섬기지 않았지만 이미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살고 있다. 즉 내가 어디에 있든지 환경이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은혜가 있어야한다.
우리는 골리앗도 만나기 전에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무너지는지 모른다. 죄와 음란과 악과 부정과 부폐와 이런 것들을 이기고 승리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감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너무 쉽게 이런 부정과 부패와 죄들과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무너져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양치는 삶의 현장을 포기한다면 골리앗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영적싸움을 감당하지 않고 그냥 포기한다면 우리는 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요 영적군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치과의사 선생님의 책, 우리의 일상의 거룩함과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