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소망없는 역사-군함도
아름다운 문체로 유명했던 한수산.
80, 90년대를 풍미했던 한수산 작가가 최근 몇 년 이슈가 된 군함도를 소재로 한 장편을 내놓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군함도가 이슈화된 최근 몇 년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오랜 산고를 겪었다는 것은 더더욱 뜻밖이다.
그 때문일까? 한수산의 ‘군함도’의 태동과 진화는 소설속의 주인공 지상과 상당히 닮은꼴처럼 비쳐진다.
『군함도』가 연재소설에서 시작해서 대하소설로 변모했다가 지금의 제목으로 한일 동시출간을 기획하다가 작년에야 우리 곁에 다가온 것은 주인공 지상이 겪은 험로와도 같아 보인다. 지상의 의지와 상관없이 최악의 징용 장소였던 하시마 탄광으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지만 몸을 숨긴 장소도 험악함에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원폭이란 또 하나의 지옥을 경험하였다는 측면에서 소설『군함도』도 일종의 평행이론을 겪는 듯 해 보인다.
아마도 이런 과정을 겪은 이유 중 하나는 군함도가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데서 연유되었을지 모른다. 그 촉발점은 하시마섬이 007 스카이폴에서 데드시티라는 이름으로 등장해서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나 싶다. 꽤 높은 건물들이 그로테스크하게 둘러써 있는 장면들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도 상당히 강렬했다. 종종 세계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나기도 했지만 기괴스럽고 기이하다라는 정도로 느꼈지 그 섬이 왜 그런 모습을 갖추었는지, 역사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는 못했었던 같다. 그러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라는 문제로 본격적으로 대두되었고, 이년 전 무한도전에서 그 참상과 아픔을 다룸으로써 대중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 근현대사의 숨겨진 아픔, 아니 외면했던 아픔의 역사들을 목도한다.
사실 이 책은 85년 대학교 입학당시 범생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내가 거창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 표성흠의 ‘토우’를 읽고서 교과서에서 멈췄던 6.25전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일본강점기에 대한 또 다른 부분과 몇 가지로 쪼개져 있던 역사적 사건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종종 우리는 역사의 하나하나 사건들에 주목은 하지만 그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고 각각의 사건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놓치기 쉬운데 이 소설은 내게 그런 연관성과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인상적인 퍼즐 조각들이 여러 개 모였을 때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줄 때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군함도』이긴 하지만 이 책은 군함도만을 보이고 있지 않다. 군함도로 등장인물들이 가기까지의 과정들을 그려내기도 하지만 군함도와 더불어 미쯔비시 및 일본 병참의 중점 거점이었던 나가사끼의 군수기지와 지하기지 건설, 그리고 그곳을 교토와 함께 지옥으로 만든 원폭투하 사건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작가는 보여준다. 군함도의 처절한 현실과 더불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원폭투하의 묘사는 핵의 참혹성과 그 위험을 읽는 독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각각의 사건들은 처참하고 군함도의 또 다른 명칭이 지옥도인 것처럼 당시의 사건들과 현장들이 얼마나 지옥 같은 현실과 상황들이었는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사건들이 특히나 징용되어온 한인들에게는 더욱 극심한 지옥으로 다가왔고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지옥화(地獄畵)를 이루는 듯하다. 작가는 그러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담아낸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사건들만이 중심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지옥 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군함도에 던져진 지상과 우석, 명국, 금화, 그리고 숱하게 사그러져 간 징용한인들이다. 그들 일부는 군함도에서 죽어가기도 하고 지옥 같은 군함도를 못 견뎌 가족을 향해 탈출하다가 상당수는 실패하고, 또 일부는 탈출하긴 하지만 안식이 아니라 군함도와 버금 없는 또 하나의 지옥, 또 다른 나가사끼의 처참한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들이 또 한 번 그 상황을 이기고자 하지만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원폭 앞에서 대부분은 무력하게 죽어간다. 그들 나름의 대항도 하고 항거도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무기력하고 또 다른 거대한 지옥 앞에서 불타 없어지고 상처입어 무력하게 죽어갈 뿐이다. 인간 이하의 대접을 일본인들에게 당하던 이들이 심지어는 원폭 투하 후 거기서 겨우 생존하여도 구조와 치료 앞에서 또다시 조선인이라는 이름으로 버림을 당하기까지 한다. 결국 이들은 해방 후에도 지금까지 잊혀진 존재로 지내왔고-징용되었던 이들이나 원폭피해자-지금에야 조금 주목을 받지만 이전 정권에서 무시당하고 숨김 당하는 조국의 버림을 또다시 당하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은 탈출구가 없는 글자 그대로 희망 없는 막장의 삶이었다.
군함도에 징용되어진 것은 남자들만이 아니다. 그의 뜻과 상관없이 유곽에 놓이게 된 여러 여인들, 그중 금화는 자기 몸을 술로 파괴시켜나가는 나날을 보내다가 그 안에서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만 그 사랑도 희망 없음을 안다.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뻔히 후폭풍이 예상되는 일에 위험을 감수하지만 그녀의 희생이 최소한 사랑하는 이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 되고 만다. 게다가 사랑하는 이가 살아있음에도 결국 자기 목숨을 던져 죽는 허무함을 보여준다-그녀의 희망이었던 우석, 그리고 금화에 대한 미안함과 사랑으로 인생을 다시 결단했던 우석이었지만 예상할 수도 없었던 원폭 앞에서 그도 세상을 마감하는 소망 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만다. 유일하게 지상만이 원폭에서 살아남는 듯함을 통해 이 소망 없는 세상에서의 조그마한 상징성과 이후 어떤 증거자로서 살아갈지를 암시할 뿐이다.
군함도에서 이렇게 약탈당하고 핍박당하는 한국인 앞에서 그들을 대하는 일본인들은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조선을 침탈하고 착취함에도 오히려 조선인들을 혐오하고 어떤 커다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인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극단의 악함을 보이지만 일본인도 결국 원폭 앞에서 무기력하게 죽어가고, 일부 일본인들 중 나름 객관성을 가지거나 친한 적 모습을 보이는 이들마저도 원폭 앞에서 죽어갈 뿐이다. 오히려 작가는 기상이 야끼꼬를 구함으로써 현재의 일본의 역사인식의 혼란의 구원 가능성의 도움을 한국에게서 찾을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기도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의 인물은 서형이다. 지상의 아내인 서형은 직접적인 일본의 징용이나 핍박을 겪는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릴 뿐 아니라 직접 하시마 섬까지 찾아가는 한국의 강한 여성을 보여준다. 오히려 하시마의 남자들은 무기력하여도 서형은 당당하게 맞서며 자신의 아이를 붙들고 소망을 놓지 않는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 역사가 그런 현실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고 생존할 수 있었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 군함도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역사, 회피하였던 역사를 다시 세상에 꺼내 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지금 영화와 매체들을 통해 군함도에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긴 했지만 거기서만 멈추지 않고 시선을 더 넓혀야 함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군함도 그 이후를 내놓아야 할 책임이 있는지 모른다. 군함도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과 원폭의 피해를 받고도 전쟁가해자인 일본인들보다도 치료나 배상에서 제외됐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이들의 죽어간 지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 살아있지만 살아있다 말할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또 다른 책임이 그에게 있다. 먼저 이야기한 이로서의 의무 말이다. 설혹 그가 들려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회피하고 방치했던 역사들을 이제는 다시 꺼내야 할 때가 된 듯싶다. 결국 그러한 무책임과 방기가 지난번 국정교과서 파동과 한일 위안부 합의라는 말도 안 되는 일들 속에서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군함도의 소망이 보이지 않는 무기력과 지금 우리의 소망을 스스로 포기한 듯한 무기력은 그 본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우리의 무기력은 커다란 문제일 것이다.
군함도 이후 지금 한국의 현실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싶다. 일본이 징용하고도 그들을 지키지 않는다는 서형의 당당한 항의마냥 국민을 지키지 않는 정부의 모습을 우리는 거의 십년 가까이 보아왔고 아직도 꺼져가는 권력을 살리려는 무리들을 보고 있기에 우리는 또 다른 소망 없음이란 현실이 오지 않도록 우리의 무기력을 깨쳐 나가야 할 것이다.
군함도, 나가사끼, 원폭이란 소망 없는 현실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민초들을 기억한다면, 우리에게 아직도 소망자체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기에 이제 그 소망을 살리는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지상이 원폭에서 살아남은 이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소망을 품고 또 서형이 자신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힘썼던 것처럼 우리의 소망살림은 우리의 자녀와 후대가 살아갈 이 땅이 지옥도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