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오백주년이 오백주년 되기 위해
앙리 베르누이가 감독한 영화 '25시'는 안소니 퀸이 루마니아의 어리숙한 농부를 연기한다. 평범한 농부였던 그가 이차대전 속에서 유태인, 독일인, 그리고 전쟁전범으로 재판까지 받다가 겨우 풀려난다. 그 기간 동안 가정은 파괴될 대로 파괴되어 아내는 소련군의 폭행에 의해 아이들까지 낳은 상태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느 기차역에선가 한 기자가 이 가족의 모습을 찍으며 안소니 퀸에게 웃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만 어그러진 모습일 뿐이다. 영화는 그 마지막 장면을 통해 안소니 퀸의 삶과 가정이 전쟁이라는 폭풍우 속에서 얼마나 비참하게 파괴되어졌는지를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웃는다고 다 웃음이 아니다.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50주년도 아니고 오백주년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파탄이 난 부부의 결혼기념일 같아 보인다.
어느 부부가 결혼 오십주년을 기념한다고 하면서도 이혼만 안했지 부부로서는 끝장난 것과 다름없고 자녀들도 자기 멋대로의 삶을 살아간다면, 그 기념일은 꽃과 맛있는 저녁식사, 선물, 그리고 이벤트가 아무리 기다린다고 하여도 그것은 외식이고 형식일 뿐이다.
공휴일을 보낼 때마다 날의 의미보다는 그저 쉰다는 것이 즐거운 이들이 많다. 기념일은 그 기념일에 부합된 삶을 살았거나 그 기념일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겨 우리들의 삶을 재조정하려 할 때에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 있는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는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할 것이다.
국가기념일 행사를 하러 전교생이 강당에 모일 때 공식적인 노래, 교장선생님의 훈시, 그리고 특별강연을 듣긴 들어도 발을 배배 꼬고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라는 것처럼, 교회나 성도나 종교개혁에 대해서 뜨뜻미지근한 듯싶다. 그것이 교회나 성도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듯하며 심지어 개혁을 부르짖는 이들마저도 그들이 말하는 개혁이 무엇인지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이상규 교수가 쓰고 영음사에서 낸 '교양으로 읽는 종교개혁이야기'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고신의 교수와, 합신과 깊은 관련이 있는 영음사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 책은 종교개혁 오백주년을 맞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 의미를 되새길 것이고, 또 오백년 전후로 종교개혁을 이루기 위해 어떤 길을 걸었는지 되새긴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전에도 종교개혁의 의미와 역사를 다루는 책들은 꽤 많았다. 그 역사를 방대한 분량으로 다루고 각 사건과 주요 인물들의 주장을 기술한 책들이 많았기에 어쩌면 이 책은 그 많은 연구의 산물에 아주 특별한 결과물을 내놓거나 특별한 시각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의 수식어로 삼은 '교양으로 읽는'이란 표현처럼 신학자나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나 목회자들이 편하고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돕는 책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가벼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전의 종교개혁을 다룬 책들이 방대한 분량으로 역사를 다루긴 했지만 그 속에서 각 사건과 인물이 갖는 의미를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 책들은 드물었고, 그 양으로 인해 선뜻 엄두를 못낸 이들이 많았다. 또한 그 사건과 주요인물 위주의 책들은 그 사건을 잘 설명하지만 그것이 전체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경우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상규교수의 책은 종교개혁 이전의 배경과 신학자들, 그리고 종교개혁의 전개 과정 속에서 갖는 각 인물의 위치와 사건, 그리고 그들의 동기와 배경을 잘 설명함으로써 역사와 사건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독자를 돕는다. 이것을 통해 개신교가 가톨릭과 당시 구별되어질 수밖에 없으며 각 개혁자가 주장하는 의미와 그 개혁자들이 속한 교파의 성격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그 배경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책의 앞부분에서 저자는 종교개혁보다는 교회개혁이라는 말이 타당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종교개혁이란 말에는 기독교는 많은 종교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교회와 성도가 방관자적 입장에서 종교개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교회개혁이 맞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기념일로서의 종교개혁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도려내고 병을 치유하며 잘못되게 벗어난 길을 인식하고 본래의 지점으로 돌아가 회복하는 진정한 교회개혁의 바람이 불어야 할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우리 자신을 점검하고 내가 기대고 있는 종교개혁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인식하게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개혁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한다.
기념일이 그냥 기념일이 되지 않고 기념일이 진정 기념일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책을 통해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기독교를 다시 돌아보고 점검해야 한다. 오백년 전에 있었던 당시 교회의 모습이 약간의 경우만 다를 뿐 지금의 교회 상태와 그리 다르지 않음도 우리가 읽으며 생각해보아야 할 내용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당부라면 당부, 부탁이라면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양'이 아니라 '실천으로 읽는 종교개혁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은 저자가 쓰는 이 책의 후속편이 아니라 각 교회나 성도 자신이 종교개혁을 종교개혁이 되기 위해, 아니 교회개혁을 신앙개혁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의 결단과 헌신으로 쓰여지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내 자신도 당연히 포함하고서 말이다.
추신: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는 공과교재에 종교개혁과 한국초기교회사도 다루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이 별로 없다. 장년층도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결국 내가 누군지를 잊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터디나 나눔이 되면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