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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크리스찬북뉴스 | 2017.12.03 17:40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예수는 반신화다/정일권/새물결플러스/방영민 편집위원

르네 지라르, 그는 구원자가 될 것인가?

 

성경에서는 말한다.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가장 선명한 것은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더 이상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가 이 땅에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진실된 인격과 풍성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기독교에도 그러한 자연스런 원칙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기독교는 이제 무능한 진리가 되어 역사의 뒷길로 사라져가는 것인가?

 

모든 종교는 자신의 교리와 가르침이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되길 원한다. 사회에서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교도 그들의 교훈이 최고의 진리라는 것을 힘써 외치고 전한다. 여기서 우리는 고등종교와 하등종교를 상식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사랑과 정의와 평등과 세계 평화를 지향하며 인류 정신사적으로도 유익한 역할을 할 것이고, 후자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독교는 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가? 사회의 성숙과 번영 그리고 인간의 복지와 생명의 존엄성과 생태계 유지를 포함하는 공공선의 활성화를 위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기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위하여 살아가고 사회와는 고립되어져 있는 외딴섬으로 존재하는가? 모든 사회가 환영하고 존경하고 찾아가는 종교인가? 아니면 사회가 거부하고 외면하며 부정하는 진리인가?

 

어쩌면 기독교를 포함한 고등종교의 하락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행복을 위하여 살게 만든 원인이 될 것이다. 이에 더하여 학계와 종교와 문화에서 예수님을 부정하고 그분을 하나의 신화로 만드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는 기독교의 기원에 대하여 쓴 책 예수는 신화다에서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메시아가 아니라 그분의 추종자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라고 정의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이 로마시대 이교도 신화에 나오는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아티스, 미트라 등과 같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인물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져 온 신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문화가 만들어내는 폭력물인데 예수님이 그들과 같은 신화라는 것이다. 물론 신화가 모두 사기와 거짓은 아니다. 실존의 인물이고 그 사회와 집단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그 사회의 불행을 짊어진 죄의 원흉이다.

 

이 책은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반박하며 예수가 반신화이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라는 것을 증명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신화와 문화와 그 시대의 영지주의와 이교주의와 비교하여 기독교의 유일성을 비교한다. 이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니체와 하이데거에 걸쳐서 나타나는 영지주의와 전체주의와 희생양과 이교적인 현상이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철학과 신학과 문학에 걸쳐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필자는 이미 르네 지라르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라는 책을 통해 인류문화사적으로 기독교가 어떻게 진리가 될 수 있는지 합리적인 논증과 해석을 보았다. 그동안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이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로만 생겨나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였는데 지라르는 그 전제를 편견으로 만들었다. 기독교가 억지와 강요와 세뇌가 아니라 회의와 탐구와 학문이 되었다.

 

실제 유럽에서는 지라르는 신의 죽음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종교의 무효성이 더 짙어지는 세계에서 기독교를 구원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세계대전 후 하나님의 말씀이 숨을 쉴 수 없고 전쟁의 잿더미로 덮혀 있던 시절에 칼 바르트가 폐허가 된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원했듯, 신이 무덤에 있다고 여겨지던 시절에 그 신을 살려냈다 말하고 심지어 21세기의 교부라고 칭하니 대단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책은 저자가 지라르에 관해서 쓴 것이 아니라 지라르의 가르침을 사용하여 예수님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예수님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은 지금까지도 뜨거운 주제인데 복음서를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은 한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을 공동으로 소유한 집단의 역사이고 소유라는 것을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존재가 역사적이고 신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로마 시대의 전기라는 장르를 통해서도 그분의 실제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러한 사회적 기억과 장르가 아니라 신화와 성경의 대조를 통해 예수님의 역사성을 드러낸다. 우선 신화의 거짓과 성경의 진실을 드러낸다. 신화가 생성되는 배경을 보면 공동체 안에 갈등이 심화되고 사회적 무질서가 절정에 이를 때 그 사회는 희생양을 찾게 되고 선택된 자는 집단 폭력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분노와 폭력의 화신이 되어 신격화 된다.

 

이렇게 사회는 거짓과 음모를 통해 신화가 발생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폭력을 노출한다. 모두가 숨기고 은폐하여 희생양을 만들고 거짓 신화를 창조하여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을 이어가는데 성경은 유일한 희생양이 되신 예수님으로 그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이 끊어진다고 한다. 어느 사회에나 은폐된 집단 폭력과 군중 살인은 숨겨져 있는데 성경은 그 폭력과 살인을 폭로하고 모두가 죄인임을 밝힌다.

 

신화는 희생양을 죄인으로 만들고 모든 악의 근원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나오는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희생양이다. 신화의 나오는 희생양의 죽음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고 광란과 축제의 장을 마련해주는 죽음이다. 그 공동체에 있던 어둠이 물러갔다는 거짓 희망을 불러 일으켜준다. 그 피는 사람들을 마취시키고 흥분시키고 열광시킨다.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가 죽어가듯 그 피는 흥분제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유일한 희생양의 죽음은 신화와는 다른 카타르시스와 만족을 준다.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이고 심적인 만족이다. 그분의 피는 우리의 폭력을 유발하고 살인을 자극하지 않으며 오히려 집었던 돌을 내려놓게 만든다. 그분의 피는 죄를 지으려는 우리의 손을 깨끗하게 하고 죄가 자리 잡으려는 마음에 십자가를 먼저 세우게 한다. 그분의 희생은 모든 이에게 영원한 평화를 주는 것이다.

 

신화를 보면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들이다. 여러 종류의 불구자와 육체적인 부정함을 지닌자, 사회적인 결함을 지닌 자들이 희생양으로 몰려 죄인이 된다. 그러나 희생양 되신 예수님은 모든 약자들을 대신하여 죽으신다. 모든 차별과 냉소와 비난과 서러움과 배제와 혐오를 짊어지신 어린양이 되신다. 신화의 희생양은 이런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지만 유일한 희생양은 해결하신다.

 

이러한 희생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니체와 하이데거가 히틀러를 지지하고 나치와 파지즘의 선두 주자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들에게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를 인식시켜 나치라는 권력을 적극 후원한다. 성경은 말하길 모든 권력이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권력과 권세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우리는 보고 해석해야한다. 신화에 등장하는 희생양을 통해 얻어진 권력은 사탄의 속임수이다. 세상에 존재했던 왕들과 로마의 황제만 보아도 사탄의 지배체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서는 불교에 대해서도 많은 양을 서술한다. 평화와 자비의 종교라고 알려진 불교인데 저자는 불교 연구를 통해 폭력과 억압과 음란의 기원을 가진 종교임을 파헤친다. 또한 불교의 근본개념인 무아, 무상, 무념, 공 사상이 허무주의가 아니라 세계포기의 희생제의와 세계를 포기하고 출가하는 요기와 붓다의 특정한 개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희생양과 비교하며 불교 신화성을 드러낸다.

 

저자는 지라르를 통해 분명히 말한다. 예수님은 비신화적인 인물이고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저자는 이런 예수님을 신앙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문화와 종교와 학제와 학자 간의 비교와 연구를 통해 그 객관성와 진리됨을 설명한다. 기독교는 폭력과 혐오와 배제의 종교가 아니라 비폭력과 화해와 평화의 종교이며 예수님은 그 중심에 계신 유일하신 희생양과 십자가와 부활의 주인공이라고!

 

희생양 메커니즘과 비교신화학을 통해 예수님이 신화라는 것을 반증하고 그분의 역사성을 다양하게 증명하는 이 책을 통해 예수님과 십자가와 희생양이 온전해질 것인가? 인문학에서 하얀 십자가를 세웠다고 하는 그를 통해 붉은 십자가로 나올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것인가? 신화와 문학을 연구하다 기독교로 회심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르네 지라르, 그는 과연 포스트모던 후기 사회, 해체주의 시대, 종교 다원주의 시대에서 기독교의 구원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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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청교도는 괴짜로 손가락질받았다. 기독교인이 은혜 안에 누리는 자유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검은색 복장에 즐겁고 유쾌한 모든 것을 금지하면서 따분한(?) 성경 공부나 종교활동만을 일 년 내내 강요하는 광신도(?) 집단처럼 여겼다. 극소수의 청교도가 실제로 그런 삶을 추구했을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 곧 일반적인 청교도의 삶과 신앙, 신학과 실천을 재발견하게 해준 여러 고마운 영적 지도자들이 있었는데, 대표적 인물로는 마틴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커 그리고 현재 가장 활발하게 저술 활동과 강연을 통해 청교도를 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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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회의 지성과 교회의 지성은 “프랑크푸르트 학파(The Frankfurt School)”에 대해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겨레 신문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마르크스주의자들 모인 노아의 방주였다”(2013.3.27.)라는 제목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해서 소개했다. 신문에서 보된 인물들은 막스 호르크하이머(1895~1973), 테오도어 아도르노(1903~1969), 헤르베르트 마르쿠제(1898~1979), 에리히 프롬(1900~1980), 레오 뢰벤탈(1900~1993), 프란츠 노이만(1900~1954), 오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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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도널드밀러의 ‘오색 사막 순례 이야기’는 무언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그의 책들은 꽤 유명했고 특히 미국에서는 상당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지만 왠지 그 정체성이 무엇인지 확 와닿지 않아 책 장을 처음부터 넘기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다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마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한 흥미로움 속에서 조금씩 빠져들기 시작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한 듯한 이야기는 상당히 읽는 이를 즐겁게 한다. 그런데 그의 책의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자꾸 내게는 어릴 적 교회생활과 교회친구들이 떠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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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오후 3시, 생각을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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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기독교출판에는 한두 컷 정도의 그림에 한두 문장의 묵상글이 담긴 책이 유행했었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의 웹툰 형식의 기독교만화들이 등장했었다. 기독교내의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고 성경의 몇몇 책들의 주제들을 다루거나 신학적 주제를 다루는 등 다양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그러한 시도들은 두껍거나 무거운 주제를 기피하는 시대적 풍조에 젖어있는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교회의 어두움에 대해 불만과 분노하는 세대들의 관심을 끌었고, 실제로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책...
안식의 날을 폐하지 말라 안식의 날을 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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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성수”라는 말이 있다.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일”이란 뜻이다. 많은 교회에서 주일성수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이를 어기면 마치 유대인이 안식일을 어기면 안 됐던 것처럼 정죄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막 2:27). 바리새인처럼 주일을 지키는 일 자체만 강조하다 보면 주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으로 사람이 주 안에서 얻는 행복과 유익을 되려 막을 수 있다. 주님께서 “주의 날”을 주신 목적을 상실하는 것이다.한편 오늘날 율법주의적인 주일 ...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예수님이 약속하신 진짜 복은 무엇인가?
칼빈의 팔복 강해
존 칼빈/김광남/비전북/조정의 편집위원


로버트 화이트는 이 책의 서론에서 주석과 설교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설교들은 주해와 관련하여 이 주석과 거의 동일한 해석 방향을 따른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대한 더 정교하고 미묘한 해석과 메시지를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의 그리스도인 청중에게도 지속적으로 적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주석과 다르다”(11쪽). 이 한마디로 <칼빈의 팔복 강해>를 읽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독자에게 칼빈을 통해 성경 본문을 풀어 설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특별한 유익 때문이다. 모든 설교가 당시 청중...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과 믿음, 철학과 신학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
안영혁/목양/고경태 편집위원


“철학으로 세계를 묻고 믿음으로 다시 보다”, 마치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틸리히는 '실존의 물음'과 '신학의 대답'을 추구했다. 그러나 안영혁 박사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는 그런 관계성 유지보다는, 한 그리스도인이 세상 속에 살면서, 신학을 하면서 겪은 철학에 대한 좌충우돌 사고(思考)를 고대철학에서 현대철학까지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안영혁의 <철학, 믿음과 함께 걷다>를 읽으면서, 불현듯 존 프레임의 <서양 철학과 신학의 역사>이...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한약 같이 달여 먹어야 하는 책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
송인규/비아토르/문양호 편집위원


송인규 교수님의 책을 그래도 상당히 관심가졌다고 생각했고 꽤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못읽은 것은 그럴수 있다 치더라도 제목도 몰랐던 책이 있었다는 것은 좀 자존심(?)에 금이 간다. 이번에 비아토르에서 개정증보판으로 낸 ‘아는 만큼 깊어지는 신앙’은 시리즈로 기획된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의 다음을 잇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십여년 전에 나왔을 때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보다는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좀 그런 면이 있는 듯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를 인상적으로 읽기도 했지만 주...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당신의 교회는 건강하십니까?
건강한 교회: 교회 건강의 개혁된 실천
도널드 J. 맥네어, 에스더 L. 미크/유정희/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참석자가 혜택을 얻어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은사를 가진 사람이 모여 자기 은사로 서로를 섬기는 유기적인 조직이다. 그래서 교회에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말이 굉장히 모순처럼 느껴진다. 가령 교회가 성경적으로 건전한 교리를 매주 강단을 통해 가르치고 있는지 혹은 배우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구체적인 사항으로 가면 더 복잡하다. 성도의 교제가 충분히 친밀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까? 성도의 영적 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 보통 컨설팅...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위드코로나 시대에서 교회가 선택할 유일한 가치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리더십, 정의로운 교회
박윤성/글과길/고경태 편집위원


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교회가 입은 심각한 충격은 성도 숫자 감소보다도 교회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를 넘어서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러한 평가를 받은 요인은 교회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 있다고 우리는 평가해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 방안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윤성 목사(익산기쁨의교회 담임)도 코로나 시대의 리더십을 제언하는데, “정의로운 교회”를 테마로 설정하면서 대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한국 교회에 있는 불공정한 모습을 제시했다...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목회적 관점으로 읽는 에베소서
맥아더 신약 주석 에베소서
존 맥아더/전의우/아바서원/정현욱 편집인


기다렸던 책이 출간되었다. 언젠가는 누가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지만 막상 손에 넣고 읽어보니 감개무량하다. 존 맥아더 목사는 한국 내에서도 워낙 유명한 저자이기에 필자의 설명이 굳이 필요 없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먼저는 상당히 보수적 성경관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학자다움을 갖춘 목회자라는 점이다. 두 가지의 특징은 존 맥아더의 전부라고 말해도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매일 성경을 주해하고 설교해야 되는 설교자라면 그 어떤 주석보다 가장 먼저 구입해야 할 책...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살고 있는 교회에게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칼 트루먼/윤석인/부흥과개혁사/조정의 편집위원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을까?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만 같다. 사적인 미디어 방송에서 동성연애, 트랜스젠더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고 공영방송에서도 이제 쉽게 성 혁명의 결과물을 발견한다. 사회 저명한 학자, 강사나 지도자, 정치인들이 하나같이 지금의 시대 정신이 옳고 바른 길로 가는 중이라고 외친다. 대중의 다수가 이 흐름에 동조한다. 군대에서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은 행위는 무죄, 이를 조사한 행위는 조사받는다. 자기 스스로 여성이라 느끼는 남성 수영선수가 여성 수영대회 상을 휩쓸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탈 기독교 시대 전도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서상진 편집위원


전도..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전도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80-90년대만 하더라도 전도가 참 잘되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하는 총동원전도주일이라고 하는 이름하에 그동안 기도하며 사랑을 베풀었던 대상자를 교회로 모시고 와서 복음을 듣게 함으로 결단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코로나 펜데믹 이후에는 교회에 관한 말을 세상 속에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많은 고민이 있다. 펜데믹 이후에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또한 그 방법은 무엇인지에...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반성
설교자의 인생
임종구/다함/서상진 편집위원


“설교자의 인생” 책 제목이 참 좋다. 이 책의 저자인 임종구 목사는 10여년 전 경산의 한 교회의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 모임에서 자신의 개척 시절의 처절하고 힘들었던 삶을 가감없이 전해주었고, 그런 삶이 자신의 목회의 뿌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됨을 강조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들지만, 그런 삶이 쉽지 않다. 이 세상에 설교에 관한 수많은 세미나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세미나 속에서 방법을 찾고, 강의를 하는 그 사람을 찾지 않는다. 세미나를 하기까지 그가 어떤 삶을 ...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세상이 교회를 비필수적이라고 말할 때,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교회의 재발견: 왜 그리스도의 몸은 필수적인가
콜린 핸슨, 조너선 리먼/개혁된실천사/조정의 편집위원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미국은 락다운(이동금지명령)과 셧다운(폐쇄 명령)으로 모든 비필수적 모임과 행사, 심지어 사업장 운영 등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건강 외적인 영역의 위험성을 고려하면서 “필수적”(essential)인 일들에 한하여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정책의 전환은 대한민국에서도 유사하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국가가 교회를 ‘필수적’이지 않다고 규정하고 모이기를 폐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참 교회는 스스로 ‘필수적’이지 않다고 인정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하나님...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성경이 말하는 영적 전쟁,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싸워라
일상의 영적 전쟁: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
데이비드 폴리슨/권명지/토기장이/조정의 편집위원


<일상의 영적 전쟁: Standing Firm in Spiritual Battles>이란 제목을 봤을 때, 그리스도인의 성화, 영적 전쟁을 다룬 책이라고 생각했다. 죄인이 거듭나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과정, 육체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육체와 세상과 마귀와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 책이라 생각했다. 부제인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굳건히 설 것인가”도 저자인 데이비드 폴리슨이 발전시킨 성경적 상담학의 주요 주제인 신자의 영적 성장과 관련된 책이란 걸 말해준다. 추천인...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변한 세상, 변함 없는 복음, 어떻게 전파할까?
탈기독교 시대 전도: 세상에 닿는 복음 전략
팀 켈러/장성우/두란노/조정의 편집위원


지금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시대는 없었다.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세상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세상이 아니다. 교회가 기다리는 세상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온전히 실현되고 악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상(새 하늘과 새 땅)이다. 어떤 사람은 중세 시대 교회와 정부가 결탁했을 때 기독교인이 세상을 지배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기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다). 참된 기독교의 특징은 회심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성령의 능력을 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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