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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었으나 잊힌 권리, 그리스도인의 권세 - 권세의 깊이와 너비에 관하여

크리스찬북뉴스 | 2016.04.11 09:11

믿는 자의 권세 : 스터디 가이드/케네스 E. 해긴/베다니(이든북스)/김정완 편집위원



국채는 국가가 지불을 보증한다는 점에서 권위를 인정받는다. 반면 회사가 지불을 약속한 회사채는 국채에 비해 위험도 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다. 누가 뒷받침 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그만큼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증한 권세로 믿는 자에게 주신 권세임에랴! 하지만 믿는 자의 권세는 국채나 회사채 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사용하려 들지 않는 것이 극명한 예다(PIXABAY).


김정완 편집위원의 서평


C.S. 루이스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독특한 작품을 남겼다. 루이스는 그 책에서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관한 31통의 편지를 재기 넘치게 그렸다. 편지를 읽은 독자라면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웜우드에게 사사한 내용에 혀를 내둘렀을 것이다. 스크루테이프의 기술이 워낙 교묘한데다가 유혹의 내용 역시 쉬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공교로웠기 때문이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세 치의 혀(?)로 하나님의 사람 둘을 패퇴시킨 바 있는, 이 분야의 실력자였다. 에덴 이후 인류사에서 사탄은 끊임없이 믿는 자들을 유혹하고 그들이 앉은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유혹의 기술은 사탄의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이 책, 《믿는 자의 권세: 스터디 가이드》는 사탄의 또 다른 기술 하나를 드러낸다. 그 기술은 믿는 자에게 주어진 가장 강력한 무기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무기란 믿는 자의 권세로 사탄은 그 권세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갖가지 수를 쓴다. 권세의 크기와 영향력을 가늠해 줄 장면이 예수의 광야 시험에 등장한다. 사탄은 익히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해 그 권세를 빼앗았다. 권세의 핵심은 세상을 다스리는 데 있었다. 그 뒤로 사탄은 세상의 신이 되었다. 덧붙이면 다스리는 권세가 신적 권세였던 때문이다.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아담의 양도와 사탄의 양수라는 모양을 갖춰 합법적으로 권세를 획득한 만큼 사탄 편에선 공들여 빼앗은 권세를 예수께 내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내주는 순간 하늘에서 이미 패퇴한 사탄이 땅에서 마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 자명했다. 이윽고 사탄은 예수를 유혹하는 도구로 권세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그 장면이 누가복음 4장 6절~7절에 나온다.

사탄이 권세가 예수를 유혹하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건 예수 편에서 보면 그걸 되찾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고통스러운 수고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유혹을 받아들이는 순간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약속과 달리 정반대의 결과만을 받아들 것이었다. 예수는 사탄의 음흉한 미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응수했다.

-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아담이)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은 우리가 '믿는 자의 권세'를 사용하기를 원치 않는다

사탄이 예수를 유혹하는 도구로 사용한 권세이자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기원하는 권세를 마침내 예수께서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되찾았다. 죽음을 담보로 되찾은 권세라면 그 권세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만하고,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그 권세를 건네주신 데서 보듯이 그 엄중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음에도 믿는 자의 권세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앞서 인용한 사탄의 말에 열쇠가 있다고 보고, 그 구체적인 사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탄은 우리가 그를 제어할 권세를 가진 것에 대해 배우는 것을 원치 않으며, 이 진리를 우리가 모르도록 감추려고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어떤 진리보다도 더욱 이 진리에 관하여 신자들과 싸우려 할 것이다. 만일 그가 우리의 권세에 대하여 우리의 눈을 가릴 수 있다면, 그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를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예수께서 되찾아 믿는 자에게 주신 권세는 일거에 '사탄을 제압(야고보서 4:7)'할 뿐 아니라 '선포하고 가르치며 고치는 사역에 필수불가결한 권능(마태복음 28:18~20, 마가복음 16:15~18)'을 담고 있다. 이런 권능이라면 당연히 스크루테이프와 웜우드 또는 그 이상의 악한 영 누구라도 그것이 믿는 자에게 알려지는 걸 극도로 꺼리지 않겠는가.

케네스 해긴은 이 책의 원전인 《믿는 자의 권세》에서 이 권세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정당한 소유물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믿는 자가 마땅히 알아야 할 권세의 실체와 기원, 능력을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실제 저자 자신이 회심 후 권세를 사용해 얻은 유익과 영향력을 그 책에 두루 담고 있어 대단히 실제적이라는 점도 공감의 폭을 넓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실재를 찾아 신구약 성경을 넘나드는 부단한 영성으로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점에서 이 책 뿐 아니라 그의 저작 전부를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해긴은 평생에 걸쳐 하나님께 헌신했으며 죽는 날까지 하나님과 동행한 대표적인 목사로 그가 세운 미니스트리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고 있다. 그런 그가 필생의 역작으로 《믿는 자의 권세》를 남겼으리라는 가정을 억측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특히 그 안에 담긴 영적 깨달음이 성경이라는 텍스트의 일부분을 과대포장하거나 텍스트를 배제한 채 체험 일변도로 일관하는 등의 흠결 없이 성경에 뿌리박고 그 해석을 성령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일임한 데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은 누누이 상찬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해긴의 견해를 교파의 관점에서 침소봉대하는 등의 태도는, 한발 물러서 거듭 이해하려고 해도, 정당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성령께서 조명해 주시도록 마음을 여는 자세가 보다 신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세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가 전부 헤아릴 수 없다는 것과 교단의 해석이 신적 권위를 갖춘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는 데서 출발한다. 이 경우 교단이든 특정 교단에서 자란 신자든 그 누구라도 서로 배우는 게 마땅하고 자연스럽다.

그렇지 않고 제 교단의 교리가 불가침의 영역인 양 뻐기는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본류와 가지를 지극히 호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린 수많은 가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많은 가지 중에서 단 하나, 우리 가지만 뻗어 나가기만 바라는 한 새들이 깃드는 무성한 나무는 요원하다. 아마도 제 잘 낫다고 나서는 가지는 예수 편에서 빨리 솎아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낯설다고 가지 않는다면 그 길은 여전히 낯선 길로 남는다. 더구나 그 길이 이미 권위 있는 기관에서 공인한 길이라면 굳이 그 길을 제쳐두고 돌아갈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다스리는 권세와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든 믿는 자들에게 되찾아주신 그 권세를 믿는 우리가 깨닫고 기꺼이 사용하는 데 까지 이르는 것, 그것이 저자가 줄곧 추동하는 이 책의 핵심내용이자 백미다.

믿는 자의 권세는 하나님이 보증하신 우리의 소유물

국채는 국가가 지불을 보증하기 때문에 권위를 인정받는다. 하물며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믿는 자의 권세임에랴! 권세의 연원은 언급한 바와 같이 창세기에서 신설된 후 예수의 십자가로 되찾아지기까지 궤적이 우리의 이해로는 상상하기 힘든 기간에 걸쳐 있지만 어느 한 번 그 권세의 크기가 달라진 적이 없다. 그 권세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맺은 언약은 상황에 따라 변개되지 않았다. 아담의 배신과 이후 인류의 배척에 불구하고 하나님은 처음 약속을 지켰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증하신 권세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안 사탄이 집요하게 그 권세를 노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사탄은 ‘머리가 상했(창세기 3:15)’다. 달리 말하면 사탄은 결정적으로 패퇴했다. 주의할 건 머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남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의 맥락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고는 해도 위의 내용을 토대로 유추해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권세에는 여느 계약과 마찬가지로 기간이 명시되어 있었을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에 불구하고 사탄이 머리 외에 나머지 부분에 대한 심판이 예수의 재림 때까지 유보된 사실에서 당초 권세의 종기가 특정 시기, 곧 예수의 재림 시에 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 가능하다.

이에 따라 사탄은 자신의 마지막 때인 예수의 재림 시까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을(베드로전서 5:8)’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부여한 권세의 실체가 그만큼 막중하고 상상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담이 벌인 짓의 실체가 그런 것이다. 아담의 죄로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이 땅에서 살아남는 결정적인 단서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예수의 재림 시까지 존립을 보장받는 데까지 이른 것. 그럼에도 머리를 상한 사탄은 그 실체가 말뚝에 묶인 사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게 성경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사자의 운동반경 안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아무리 사자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허락하면, 즉 그 반경 안으로 들어가면 사자, 곧 사탄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그 경계 주변을 오고가거나 경계를 넘나드는 등의 방관 또는 묵시적 의사표시로도 분명히 성경이 말하는 ‘마귀에게 틈을 주는(에베소서 4:27)’ 것이 된다. 반대로 우리가 허락하지 않으면 사탄은 우리를 결코 지배할 수 없다. 우리가 믿는 자의 권세 안에서 대적할 때 사탄은 혼비백산해서 우리를 ‘피해 달아난(야고보서 4:7)’다. 사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망설임을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미 이긴 싸움을 다시 벌일 이유 또한 없다. 이 권세의 배후에 사탄을 패퇴시킨 예수와 사탄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거듭 말한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요한1서 4:4)."

그런 점에서 저자가 이 책 전체를 행함이 있는 믿음에 할애한 건 적절하다. 그건 바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믿지 않으면 결과 자체를 기대할 수 없고 믿었다 해도 믿음대로 행하지 않으면 믿음의 효력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세 역시 자동적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권세를 알고도 사용하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믿는 자는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선포하고 가르치며 고친다

부언하면 믿는 자의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그 중에서 이 땅을 다스리는 권세가 아담에게 부어졌다. 이후 아담이 사탄에게 양도한 권세를 예수께서 되찾아 우리에게 건네주셨다. 하나님은 그 예수의 이름을 어떤 이름보다 위에 두셨고, 땅 위와 아래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 이름의 권위에 복종케 하셨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기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이름의 권위를 인정하셨다는 것.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는 데는 믿는 자의 현상태가 간여할 여지가 조금도 없다. 예수의 이름에서 비롯하는 능력은 그 이름의 실체를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렸다. 따라서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라도 그 이름의 실체를 믿지 못하면 그 이름을 따라 선포할 수 없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빌립보서 2:9-10)"

저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현상태를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되 그분께서 인정하신 권세 안에 뿌리박으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믿음이 실재로 드러나게 하는 확실한 통로라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믿는 자는 예수의 통로다. 예수의 영이 흘러들어 뭇 사람들을 구원하는 통로로 기능하려면 무엇보다 믿음이 앞서야 한다. 믿음 외에 다른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방법은 없다. 믿는 자의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줄 믿지 못하는 데 그걸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건 당연하다. 마치 권능이 임하기 전에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려하는 것과 같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데서 시작한다고 했다. 밀씀이 말하는 바를 듣고도 믿지 않으면 그건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들은 대로 실천하는 건 전적으로 믿는 자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누구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 예수께서 믿는 자의 권세가 마귀를 쫓고 가르치고 고친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믿는 자의 권세를 떠나 마귀를 쫓고 가르치고 고치는 방법을 찾는다면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거기서부터 눌림과 두려움과 잦은 불안이 상시적으로 찾아든다. 성경이 말하는 틈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마귀는 대적해야 피한다. 대적하지 않는데 우리를 피할 마귀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믿는 자가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가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이유는 마귀보다 하나님이 더 크시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의 기초 위에 믿는 자가 하나님이 보증하신 권세를 주장하는 것이다.

믿는 자는 본래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존재다. 비자유는 진리와 양립하지 않는다. 믿는 자의 권세를 사용한다면 신앙생활이 전과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믿음대로 되라는 예수의 밀씀이 실재가 되는 영적 체험 역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믿는 자라도 눌림과 불안이 없을 수 없다는 가르침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다. 그런 분이 믿는 자를 그런 비자유 가운데 두셨다고 하는 건 그분을 모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분은 우리를 죄와 죽음과 거기서 비롯된 불안 등에서 자유롭게 하기 위해 당신의 하나 뿐인 아들을 내어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하는 마음을 주신 일이 없다. 그분은 우리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와 같은 선한 것을 주셨을 뿐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니(디모데후서 1:7)."

믿는 자의 권세는 예수의 말씀에서 보듯이 믿는 자가 누릴 권리이자 예수의 명령이다. 믿는 자라면 누구라도 그것에 예외가 없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믿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천지창조 때의 수준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관계 안에서 권세는 능력으로 작동한다. 다만, 그 권세는 사용하지 않으면 흘러나가지 않는다. 앎에서 실천으로 나아가는 신앙, 살아있는 믿음의 실체로 다가서는 영적 진보는 믿는 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 깨닫는 데서 출발한다. 해긴의 《믿는 자의 권세: 스터디 기이드》가 강조하는 지점이다. 끝으로 마태복음 28장 18~20절과 마가복음 16장 15~18절을 상고하는 마음으로 싣는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저자 케네스 해긴

 

레마바이블 신학교와 케네스 해긴 미니스트리(Kenneth Hagin Ministries)의 설립자이다. 그는 17세 때 기형적 심장병과 불치의 혈액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치유받은 이후, 거의 70년을 사역하는 동안 건강하고 왕성하게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내 백성에게 믿음을 가르치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명령에 순종하여 레마바이블 신학교(RBTC)를 세웠으며, 오늘날 11만 평에 이르도록 성장시켰다. 4만 명의 제자들을 배출하였으며, 그들이 미국과 캐나다,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로 흩어져서 사역하고 있다.

그는 2003년에 하늘나라에 갔지만, 그가 설립한 레마바이블 신학교와 케네스 해긴 미니스트리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양육하고 훈련시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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