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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불가능한 것을 행할 능력이 있다

크리스찬북뉴스 | 2016.03.27 15:52

씨앗을 심고 기적의 추수를 기대하는 오랄 로버츠의 성령행전 《씨를 심고 영으로 기도하고》(서로 사랑 출간)


저자 오랄 로버츠


1918년 출생. 오순절 성결교단의 목사로 헌신하고 있던 아버지 Elis와 인디언계 어머니인 Claudis 사이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눌증과 결핵으로 쓰러져 지내던 중 눈물로 자식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의 눈물 속에서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게 되었다. 그후 그는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였다. 부흥사로 15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신유의 능력으로 치료하고, 12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천막을 가지고 다니며 30여년이 넘도록 신유집회를 인도하였다  

그는 기도와 의학을 접목시키고, 오순절 운동을 기성 교단에 널리 파급시켰다. 미국 중부 오크라호마 털사시에 오랄 로버츠 대학을 설립하여 기독교 지도자를 양성하였으며, 90여권의 책을 집필하였다.


김정완 편집위원의 서평


당신에게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불가능한 것을 행할 능력이 있다


성령을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성령과 동행한 체험을 전하는 서적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성령과 신앙》, 《스미스 위글스워스의 성령의 은사》, 《성령님, 오늘은 어떤 넥타이를 맬까요?》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성령을 초자연적 능력의 담지자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던 전통에서 벗어나 일반 다중이 성령을 다채로운 성품을 지닌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데 기여했다. 성령을 불가해한 힘과 강력한 흐름 등의 비인격적인 백그라운드로 받아들인 예전의 경우와 비교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였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은 남았다. '과연 성령에 관한 인식변화가 근본적이고 총체적이었는가?'라는 것이다.

 

《씨를 심고 영으로 기도하고》가 처음 번역 출간된 2004년은 파송 선교사가 1,000여 명에 육박하면서 선교형식과 내용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던 때로 ‘선교한국 대회’를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선교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대표적인 문건으로 이태웅 목사의 〈한국교회 선교 25년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전망(CBS 50주년 기념 세미나 발제 문건)〉을 들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로잔 2004 포럼’(Lausanne 2004 Forum)이 열려 세계선교의 주요한 방향을 설정하고 전략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 해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벽을 넘어 열방으로(IVP)》와 《세계선교의 상황과 도전(선교한국)》 등이 출판되었고 《하늘에 속한 사람(홍성사)》 등 여러 권의 선교사 전기가 발간되었다.

 

그동안 교회와 선교단체는 선교를 두 가지 형식, 곧 보내는 선교와 가는 선교로 구분하는 지혜를 짜내 선교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러한 전략의 변화는 전까지만 해도 선교에 관심을 가지면 선교사로 파송되는 줄 알았던 교인들이 선교에도 다양한 형식이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했고, 실제 선교활동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교회와 선교단체에 단기선교 헌신자가 급격히 늘었다. 비례해서 현지의 반발 또한 거셌다. 악한 영들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러 나라와 민족에 준비되지 않는 선교사 또는 단기선교 헌신자들이 들어가 영적전투에서 패퇴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보고되었다. 더욱이 이슬람 세력이 빠르게 진영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몇몇 교회와 선교단체가 현지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고 종교이식과 같은 제국주의적 선교에 나섬으로써 당사국의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양상조차 없지 않았다. 이는 양적 확대를 질적 변화에 담아내지 못한 치명적인 결과였으며 근본적으로는 선교의 중심에 계신 성령의 인격성과 기름부으심, 권능에 대한 인식부재에서 비롯된 현주소였다.

 

이에 교회와 선교단체는 각각 과거를 돌아보고 동일한 실책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책 마련에 나서기 시작했고, 그 결실이 선교한국과 로잔 대회로 나타났던 것이다. 양 대회는 그간의 선교활동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미래비전을 위한 사도행전의 복원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성경적 근거로 사도행전 1장 8절을 들었다. 비로소 성령 자체에 대한 본질적 관심으로 돌아서기 시작한 것이다. 성령은 누구신지, 어떤 성품과 품격을 갖고 계신지, 성령은 우리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성령이 우리를 통해 행하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등등 중요한 물음임에도 간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런 배경 위에 이 책, 《씨를 심고 영으로 기도하고》가 번역 출간되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저자 오랄 로버츠는 이 책에서 거듭난 뒤의 변화와 그 변화의 중심에 선 성령, 그리고 이후의 동행을 체험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저자의 일대기와도 같은 이 책의 핵심주제는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임하신 성령이다. 바로 그 성령께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고 불가능한 것을 행하게 하셨다"고 저자는 말한다. 알려진 대로 오랄 로버츠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에 오랄 로버츠 대학을 설립하여 기도와 의술을 접목하는 데 기여했으며, 회심 후 30여 년 동안 1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등 오순절 성령운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사역 초기만 해도 이런 일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믿음으로 순종한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발자취이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임하신 성령의 행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밀한 여정을 속살 근처까지 이르러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더불어 앞서 든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 여정을 이제 시작해보자.

 

《씨를 심고 영으로 기도하고》의 ​전체적인 구성은 장절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각각의 장들이 다음 장을 여는 마중물이거나 다음 장이 앞 장의 서술인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글이 시계열을 따르지 않아 독립적으로 읽혀도 전혀 이물감이 없다. 그렇더라도 핵심적인 주제를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 첫 번째 키워드가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당신의 씨앗을 심으라’와 ‘기적의 추수를 기대하라’가 뒤를 잇는다. 이 세 키워드가 장절을 공교히 묶고 엮는다.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은 천지창조 과정에서 당신의 믿음을 드러내 보이셨다. 그분은 말씀하셨고 말한 대로 이뤄질 줄 아셨다. 성경은 "그대로 되니라"라고 기록함으로써 그분의 믿음을 실증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심으로 심으셨고 말씀에 담은 믿음으로 원하던 바를 얻으셨던 것이다. 이를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심고 거두는 법칙'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심고 거두는 법칙’이 마치 물적 차원에 한정된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법칙은 영적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 핵심적인 부분은 앞서 하나님의 태초사역에서 언급한 바와 같다.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우리가 거두었거나 거둘 열매가 우리 각자가 과거에 무엇을 심었느냐 또는 장차 무엇을 심느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견 열매를 바라면서 썩은 씨를 심는 이가 없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재론의 여지가 없는 진술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부분으로 넘겨보면 실제 상황은 사뭇 다르게 흘러간다. 아무렇지 않게 불평을 터뜨리거나 무의식적으로 저주하는 말을 퍼붓고도 그 말의 파국적 결과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 악한 것을 심으면 악한 것을 거두고 선한 것으로 심으면 선한 것을 거두는 법이다. 그 반대의 경우란 없다. 저자는 회심한 뒤 하나님나라의 법칙에 따라 하나님의 약속을 거듭 기억하고 자신의 감정과 처한 형편을 따르지 않았다고 했다.

 

하나님의 창고에 유한한 것은 없다. 아직 공중 권세 잡은 자의 잔존 영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까지 남은 상태에서 악한 영의 방해로 다소간 늦춰질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다니엘서 10:13)" 이미 믿음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본 뒤에는 전혀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과정, 곧 경작기간 중에는 때 이른 서리와 늦은 비로 곤욕을 치를 수 있다. 그렇다고 추수를 기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예기치 않은 상황으로 추수의 양적 수준을 어둡게 예상할 수 있지만 추수의 때는 반드시 온다. 물적 세계와 다른 면이 영적 세계의 추수에는 있다. 영적으로 뿌린 씨앗은 '바라던' 것이자 '보지 못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드러난 '실상'이자 보이는 '증거'다. 하나님이 이미 당신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으로 확증하셨고, 그 사실을 우리가 믿은 때문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믿음의 파종 후에 추수를 의심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의심이 믿음을 무효화시키는 점은 지적해 둘 필요가 있겠다.

 

이를 확실히 안 저자는 믿음 위에 견고히 서기 위해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기 전에는 강단에 서기를 거절한다. 종전까지 그 또한 교단의 가르침대로 교단의 방침에 부합하는 서적과 설교집에서 좋은 글귀나 내용을 인용해 설교를 해오던 터였다. 저자는 자신의 행위가 단지 메아리에 불과할 뿐임을 깨닫고 거기서 돌이켜 비로소 하나님의 목소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결과는 앞서 언급한 대로 수많은 회심자를 얻고 당시로선 짐작조차 어려운 일을 성취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의 평생의 열매는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고 믿은 데서 출발했고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의 1장과 2장이 그 여정에 환한 빛이 되신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믿음 위에 터 잡고 하나님만 바라본 그리스도인의 순종이 빚은 합작품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울러 그와 같은 여정이 특정 개인에게 국한한 일이 아니라 지금도 역시 부르심에 순종하기로 결단한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임할 하나님의 선한 계획임을 단정적으로 보여준다.

 

선교한국 2012 대회 모습. 한국교회와 선교단체는 꾸준히 선교사를 파송함으로써 세계선교에

이바지해왔다. 양적 팽창에 걸맞는 질적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에 도달한 지 벌써 오래다.

특정국가에 선교사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현상 등 여전히 재고할 문제들은 많다(국민일보).


당신의 씨앗을 심으라

 

이 책의 부제는 ‘불가능한 당신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라’다. 불가능한 꿈이 실현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면 이제 두 번째 조건은 그 꿈에 첫발을 내딛는 실천에 있을 것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겨자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연약하기 그지없어 토양을 뚫고 나올 것 같지 않다. 싹을 틔운 뒤라도 그 행색으로 치면 언제 클지 장담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심지 않으면 그 땅 위에선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다. 우선 심고 보는 것, 그것이 믿음으로 거두는 두 번째 법칙의 핵심요소다. 보잘 것 없어 보이던 그 겨자씨가 장차 새가 깃들 만큼 크고 멋지게 자라는 마당에야 더할 나위 없다. 심고 거두는 세상 이치가 영적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고 앞서 말했다. 현명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법칙을 따라 가장 좋은 씨앗을 뿌리려 할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셨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가족(아담과 하와)’을 찾기 위해 씨를 심었다. 그 씨는 일찍이 여자의 씨, 아브라함의 씨, 다윗의 씨로 불리던 씨였다. 하나님은 바로 그 최고의 씨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심었다. 그런 후 하나님은 수 십, 수백억의 잃어버린 가족을 되찾았다. 하나님이 최고의 씨를 뿌려 최상의 결과를 얻으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 또한 그렇게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저자는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한다.

 

사역 초기 저자에게는 집이 없었다. 교인 가정의 집에 무료로 세 들어 살던 그 시절, 그나마 있던 보금자리마저 주인이 이사를 앞두고 내놓아야 할 형편이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월급 전부를 드리라는 음성을 주었고 그 월급이 집을 얻는 계약금의 씨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돈은 그와 가족 전부의 생계비였다. 고민이 이만저만 아닌 상황에서 저자는 믿음으로 그 돈 전부를 드렸다. 이어 그날 함께한 교인들에게 목사관 건립을 위한 참여를 호소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계약금에 쓰일 헌금이 마련됐다. 그렇다고 가족의 생계비에 충당할 정도의 돈은 되지 못했다. 아내의 불평은 일리가 있었다. 교인의 방문을 받은 그날 저녁, 저자는 교인에게서 자신이 드린 월급의 7배나 되는 금액을 건네받았다. 교인이 건넨 돈은 경색 국면에 있던 그의 사업에 믿음대로 씨를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그가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저자 역시 자기가 드린 ‘전부(최고의 것)’에서 그것의 수배가 되는 열매를 거뒀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씨앗 믿음'의 실체다. 부디 일화에 등장하는 음성과 헌금 등의 용어에 민감해지지 말기를 바란다. 맥락을 놓치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일화의 요점은 추수하기 위해서는 뿌려야 할 씨앗이 반드시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것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최고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하나님은 독생자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심었고 언급한 바와 같이 그 수십, 수 억 배에 달하는 영혼들을 되찾았다.

 

그해 거둔 벼 중에서 종자로 가려 뽑은 씨는 아무리 배고파도 먹지 않는 법이다. 이듬해에 그 종자 씨는 땅에 뿌려져 실한 열매로 돌아올 것이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은 우리가 무엇을 내놓든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을 내어 주신 은혜에 비견될 길이 없다는 점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일종의 빚을 갚는 행위로 비칠지 모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내준 뒤에 얻었듯이 우리 또한 드린 뒤에 얻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강조점이다. 일면 씨앗이 수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 즉 대가로 보이기도 한다. 대가라면 소멸되어야 맞다. 하지만 천국 법칙은 '주고 (드리고) 받는' 데 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누가복음 6:38)." 성경에서 말하는 30배, 60배, 100배의 원리가 그와 같은 법칙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말라기서 3장 10절은 그 점을 보다 명확히 보여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드리고 받는 법칙을 십일조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서도 씨앗을 심으라고 말한다. "당신이 겪는 실패나 손해, 패배가 당신에 대한 부르심을 멈추게 하지도, 방해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당신에게는 심어야 할 씨앗이 있다. 믿음으로 나아가서 그 씨앗을 심도록 하라.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당신의 근원이신 그분을 바라보고, 기적의 추수를 기대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기적의 추수를 기대하라

 

플로리다의 마이애미 부흥회를 앞두고 무신론자들의 거센 저항과 방해가 예견됐다.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을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기적을 기대하라." "매일 새로운 기적을 기대하라." 믿음으로 씨앗을 심었다면 다음 차례로 추수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비록 중간에 예상되었거나 불가측의 불리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다. 이미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그 터 위에 믿음의 씨앗을 심었기 때문이다. 이제 결실은 하나님의 몫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이루실 결실에 한계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무한에 답할 동일한 성질의 기대감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떠나 일하지 않기로 작정하신 마당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8:18)."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처럼 악한 영의 준동이 강고해지는 것에 비례해 그 몇 배로 은혜의 크기가 확장되는 법임을 하나님은 마이애미 집회에서 입증해 보이셨다. 그 집회에서 영적 대폭발이 일어나 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회심했고, 그 이상의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다. 예견된 상황에 비할 때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지만 기적과 같은 일이 끝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저자는 “기적을 기대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동역자와 세상을 향해 선포함으로써 담대히 현실과 대면했다. 설교를 들은 동역자와 세상은 기대감에 고무되었고 기적을 기대하는 심령으로 충만해졌다. 이듬해 11월까지 백만 명이 회심했다. 초유의 구령의 역사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리라는 것을 성경은 누누이 말하고 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2:12)." 하나님의 기적은 반드시 우리를 향해 흘러온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그 기적이 언제 올지 아는 것이다. 그래야 손을 뻗을 수 있지 않겠는가. 최적의 열쇠는 기적을 기대하는 데 있다. 저자의 간증처럼 기적을 기대하면 그 기적이 우리를 향해 오는 징조를 알게 된다. 그때 비로소 우리가 기적을 받아들일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볼 수 없는 것을 보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을 행할 수 없다. 저자는 이 기적의 의미를 이렇게 갈무리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적으로 일을 하셨고, 성경은 어떻게 기적들이 문제를 해결했고 승리를 안겨주었는지에 대한 수많은 예들로 가득 차 있다."

 

1935년 결핵과 말더듬이 병을 고치러 치유예배에 가는 도중에 저자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동시대에 전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성령 위에 세워진 대학을 설립하게 될" 거라는 비전을 받았다. 그건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당시로선 전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사실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비전을 향해가는 각각의 단계에서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였다. 몰이해의 문턱에 가로막혀 있을 때조차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했다. 그 하나하나가 쌓여 그는 충실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모해갔다. 작은 일에 충성한 그에게 더 큰 일이 맡겨졌음은 물론이다. 대학설립의 큰 그림 또한 처음부터 완벽히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믿음 위에 믿음을 더한 그를 미쁘게 보신 하나님의 은혜로 청사진이 구체화됐던 것이다. 마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한 단순한 명령에 순종한 아브람이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창대케 되리라"는 또 다른 비전을 받아들었듯이 저자 역시 테스트와 단계를 거쳐 불가능한 일을 하는 층위의 믿음으로 나아간 뒤 복 위에 복을 더했다. 기적의 추수를 기대하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디딘 저자에게 하나님이 기적을 흘러 보내셨고, 준비된 저자는 그 기적을 향해 손을 뻗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나 꿈과 비전은 원대히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비용도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 일종의 대가와 같은 그 비용은 장차 얻을 결과에 비하면 편익이 워낙 크다. 문제는 우리가 그 비용 또는 대가를 지나치게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구석조차 없지 않다. 마치 전 인격과 전 재산을 다 드려야 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모양을 보는 건 피곤하다. 창조주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피조물인 우리에게 달라고 하실지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올 문제이기에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비용은 우리의 순종뿐이다. 우리가 대가로 치를 그 순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본을 보이신 그 순종으로 우리가 드릴 순종의 힘마저 예수님이 그 십자가에서 부어주셨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린 우리가 순종을 드릴 때 우리의 것으로 드리는 줄 알지만 실상은 다 이루신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이 보증하신 순종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로소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순종이 되는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우리가 잃고 말 우리 안의 어떤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글의 도입부에서 성령에 관한 인식에 꾸준한 변화가 있어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변화가 근본적이고 총체적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씨앗 믿음'이 진단과 처방에 충분히 답이 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심고 거두는 법칙의 중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과 그 법칙에 유일무이한 자원이 되신 예수님에 더불어 우리의 순종을 동력으로 사용하시는 성령의 합력은 한 치의 오차가 없다. 감사한 일은 세 분 중 어느 분도 우리를 떠나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을 내어주셨으며,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찢고 십자가에 달리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길과 등불이 되셨다. 이제 그분들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협력만이 남았다. 어떻게 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믿음으로 씨를 심고 기적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의 놀라운 함의를 일깨운 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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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수도원으로 보내는 편지(삶의 단순함을 위하여!) 사진 첨부파일 크리스찬북뉴스 2018.01.07 18:40
177 사소하고 허무한 일상을 넘어 더 크고 의미 있는 삶 추구하기(신간소개) 사진 첨부파일 크리스찬북뉴스 2018.01.04 13:30
176 신약 시대의 헬라어를 이해하는 최고의 사전 사진 첨부파일 크리스찬북뉴스 2017.12.27 11:05
175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리는 《큐티인》 잡지 사진 첨부파일 크리스찬북뉴스 2017.12.22 11:40
174 생계를 넘어 소명―크리스찬북뉴스 선정 올해의 책(국내부문) 사진 첨부파일 크리스찬북뉴스 2017.12.20 20:53
173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크리스찬북뉴스 선정 올해의 책(해외부문) 사진 첨부파일 크리스찬북뉴스 2017.12.20 20:17
172 '선교는 교회 세움이다' 저자 신동식 목사 인터뷰 사진 첨부파일 고경태 2017.12.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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